백양 선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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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 선배님
  • 남해타임즈
  • 승인 2021.01.15 10:35
  • 호수 7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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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 │ 본지 칼럼니스트
이현숙 │ 본지 칼럼니스트
이현숙 │ 본지 칼럼니스트

최근 트로트 신곡 하나가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한동안 팬들의 시야 밖에 머물던 주인공은 `테스 형`으로 단숨에 존재감을 과시하면서 화려하게 복귀했다. 세상 떠난 동네 형에게 삶의 고단함을 푸념하는 듯한 노랫말을 보면 여하튼 발상 자체는 신선하다.
소크라테스(기원전 470?-399)는 세계 4대 성인의 반열에 오른 서양의 대표적인 철학자이다. 자신의 출생지인 아테네의 젊은이들에게 특유의 문답법으로 진리를 설파했고, 그의 문하에서 플라톤을 비롯한 많은 제자가 배출되었다. 아폴론 신전의 비문(碑文)인 `너를 알라`는 문장을 즐겨 읊조렸다고 하며, `내가 아는 것은 오직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가히 철학적 사유의 포문을 여는 절대 불변의 화두라 평가할 만하다.
`결혼과 비혼 중 어떤 선택이 나은가`라는 제자의 질문에 `결혼하라, 온순한 아내를 얻으면 행복할 것이고 사나운 아내를 얻으면 철학자가 될 것이다`라고 답했다. 아닌 게 아니라 악처의 대명사로 이름난 그의 젊은 아내 크산티페의 심한 바가지가 소크라테스를 위대한 철학자로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자신을 시기하던 세력에 의해 사형이 선고되자, 피할 수도 있었던 독배를 들어 기꺼이 최후를 맞이했다. 그러나 진리와 도덕을 향한 그의 순수한 이상과 열정만큼은 그 누구도 그 무엇으로도 무너뜨릴 수 없었다.

영혼의 허기를 몹시 느끼던 청춘 시절 도덕경과의 첫 만남에서는 상대의 진가를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렇더라도 깨물면 빨리 닳아 없어질세라 혀끝으로만 살살 녹여 먹던

추억의 십리사탕이나 츄파춥스 그 이상의 의미였음은 분명하다.

그러다가 한 해 두 해 나이테를 보태면서 도덕경의 웅숭깊은 구절구절은

어느덧 삶의 좌우명이 되었다. 이따금 행간까지 곱씹고 나면 가슴과 머리가 온통 서늘해진다.

국내 트로트 노장 가수가 뜬금없이 시공간을 초월해 그리스 출신의 철학자를 소환함으로써 코로나19 사태와 정치권의 이전투구 양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웃음을 선사했다. 그걸 보며 세상천지에 내게도 그런 인생 선배 하나쯤 없으랴 싶은 순간 누군가 퍼뜩 뇌리를 스쳐지나간다. 동서고금의 기나긴 역사 속에 숱한 성현 군자들이 명멸하지만, 그중 서양의 소크라테스에 필적할 만한 동양의 지성으로 노자를 천거한다.
이분의 함자는 이 이(李 耳), 자는 백양(伯陽) 또는 담(聃)이다. 오얏나무(자두나무) 아래에서 탄생한 연유로 성씨가 오얏 이(李)가 되었다. 그가 생애 마지막 흔적을 남긴 장소는 주(周)를 떠나 진(秦)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함곡관이다.
그때 관문지기 윤희의 간곡한 청을 받고 5295자의 아름다운 문장으로 화답하니, 이것이 바로 도와 덕에 관한 그의 심오하고도 간결한 사상이 담긴 `도덕경`이다. 한 마디로 도법자연(道法自然), 도의 본모습인 자연을 거울삼아 행함이 없는 도를 행하라는 가르침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쉬운 점은 생애를 보낸 시기가 기원전 6세기경이라고만 추정될 뿐이다. 생몰 연대에 관한 정확한 정보가 없다 보니 역사가들 사이에서는 그가 과연 역사적 실존인물인가 하는 논란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천고불후의 역작인 `도덕경`에 대한 평가를 뒤엎을 정도의 유의미한 논쟁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인류 곁에 홀연히 나타났다 꿈처럼 사라지니 한층 신비스러움을 더하는 존재이다.
영혼의 허기를 몹시 느끼던 청춘 시절 도덕경과의 첫 만남에서는 상대의 진가를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렇더라도 깨물면 빨리 닳아 없어질세라 혀끝으로만 살살 녹여 먹던 추억의 십리사탕이나 츄파춥스 그 이상의 의미였음은 분명하다. 그러다가 한 해 두 해 나이테를 보태면서 도덕경의 웅숭깊은 구절구절은 어느덧 삶의 좌우명이 되었다. 이따금 행간까지 곱씹고 나면 가슴과 머리가 온통 서늘해진다.
도덕경에 따르면 `청정위천하정(淸靜爲天下正)`이라 했으니, 맑고 고요함이 세상의 기준이 되어야 마땅하다. 또한 `표풍부종조 취우부종일(飄風不終朝 驟雨不終日)`이니, 회오리바람이 사납다 한들 아침내 휘몰아칠 리 없고 소나기가 세차다 한들 온종일 퍼부을 리 없다. 실로 인생은 유한하되 인류의 스승이 남긴 고매한 사상은 영원하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 선각자의 가르침을 삶 속에 용융하여 그 어떤 시련 앞에서도 좀 더 의연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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