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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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사냥
  • 남해타임즈
  • 승인 2021.03.11 11:22
  • 호수 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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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의 남해일기

 내가 고래를 처음 본 것은 바다동물도감을 통해서였다. 알에서 부화하는 물고기와는 달리 사람처럼 새끼를 낳는 포유류라 친근하게 느껴졌다. 1984년에 개봉한 `고래사냥`이라는 영화는 중학교 시절 겨울방학 때 텔레비전에선 단골로 방영해주었는데, 고래사냥 노래를 부르면 나도 그 주인공들처럼 고래잡으러 떠나는 자유로움과 방랑미를 간접적으로 좇아 질풍노도의 시기를 잘 견디게도 했다. 어른이 되고는 아이들을 데리고 아주 큰 수족관인 아쿠아리움에서 고래 종류를 여럿 보여주었다. 고래들이 부드럽게 유영하는 모습에선 좁은 데 갇힌 것을 안쓰럽게 생각할 틈을 잊게 했다.

 기후변화, 미세플라스틱, 해양쓰레기 등 환경문제로 그물에 걸린 바다거북이나 페트병을 한가득 물고 있는 고래의 모습을 매스컴을 통해 보았다. 페트나 비닐로 된 일회용품이 없었던 내 중학교 시절로 돌아간다면 행복한 고래를 만날 수 있을까.

 남동생 둘은 중학교 입학을 앞둔 겨울방학에 부모님의 도움 없이 고래를 잡았다. 그 시절에는 신문 보는 사람들도 많고, 읍내에 신문보급소도 여러 군데 있었다. 따끈따끈한 신문이 보급소로 나오면 신문을 집집마다 배달해주었는데, 대부분 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집 담장넘어로 던져넣었다.

 남동생도 `신문보이` 중 하나였다. 새벽에 자전거도 아이도 없어 부모님은 속도 썩이지 않던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아들 걱정만 하고 있는데, 동생은 아침 밥상이 차려지기 전에 돌아왔다. 가출인 줄 알고 아직 어린 아들에게 번개가 번쩍이는 으름장을 놓은 사람은 엄마였고, 자초지종을 들은 이는 아빠였다. 동네 골목을 휩쓸 준비를 하던 언니와 나는 기둥을 안고 구경했다. 먼저 신문배달을 시작한 친구이야기를 들으니 한 달을 하고 나면 4만원의 배달 수고비가 생기고, 포경수술비가 4만원이어서 방학이 끝나기 전 병원에 갈 것과 신문지국에서 보호자동의서를 줘서 가져왔노라 내밀었다.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즐거울 때인 언니와 나는 까르르 난리가 나고, 남동생은 동의서 서명이 급했고, 아빠는 엄마를 설득하고 결국, 남동생은 아침잠을 아껴가며 정확한 시간에 배달을 끝내고 왔다. 어떤 날은 평소보다 늦어 식구들의 애간장을 녹이기도 했는데, 브랜드매장 개업이나 할인행사 홍보, 주점 오픈이나 상점 신장개업 홍보유인물을 신문에 끼워넣고 배달까지 하느라 늦는 거였다.  남동생은 중도에 그만두지 않고 포경에 대한 신념으로 자전거 페달을 저었다. 아빠와 병원에 가서 간단하게 수술을 끝내고 스스로 병원비를 치르고, 종이컵을 방패삼아 아빠가 운전하는 덜덜거리는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아 마취가 풀리기 전에 돌아왔다.

 아빠는 진료비를 내준다고 하니 제 돈으로 수납하겠다고 나서는 아들에게서 남자 대열에 들어섰음을 느꼈다고 하셨다.

 상괭이가 해안가로 떠밀려왔다거나 어부들에게 바다의 로또라고 불리는 밍크고래가 잡혔다거나 하는 소식이 들리면 나는 혼자 웃는다.

 우리 남매들에겐 시켜도 못했을 그런 기억과 추억들이 함께 자란다. 어린아이 같았던 남동생도 가정을 이루고, 덩치 큰 고래가 되었다. 다이어트를 시작한 남동생이 날렵한 감성돔으로 거듭나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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