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도 못하고 죽을 것들에 대한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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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도 못하고 죽을 것들에 대한 응답
  • 남해타임즈
  • 승인 2021.03.18 11:12
  • 호수 7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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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향, 나의 삶 80
碧松 감충효 │ 시인ㆍ칼럼니스트
碧松 감 충 효 시인 / 칼럼니스트
碧松 감 충 효
시인 / 칼럼니스트

운명을 따진다면 초목도 마찬가지
초가을 내린 씨앗 참으로 가엽구나
새싹을 밀어 보지만 찬 서리에 견딜까?
 
싹틔운 토마토며 금송화 어린 줄기
찬 서리 한 번이면 모두 죽고 말 텐데
덧없이 던져진 모습 보는 마음 편찮네.
 
좋은 일 한 번 하자 모든 것 제쳐놓고
꽃삽 떠 어린 줄기 베란다에 심었더니
꽃피고 열매 맺으니 그도 보기 좋더라. 
 
 아침마다 만보도 할 겸 야산의 텃밭에 나가 한적하고 공기 좋은 대자연 속에서 내가 즐겨하는 운동을 하며 봄부터 가을까지 많은 걸 배우고 느낀다.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평소의 생각이 조금씩 달라진다. 흔히 말하는 거두어들임에 대한 고마움과 그 보답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텃밭의 채소들은 많은 즐거움을 나에게 제공했다. 텃밭이 거기에 있기에 아침 일찍 달려갔고 거기서 만보 중 5천보를 확보할 수 있었으며 상추, 방울토마토, 가지, 쑥갓, 열무, 파, 부추, 오이, 호박, 완두콩, 강낭콩 등은 식탁을 풍성하게 하였고 주변의 야산에서 품어져 나오는 소나무와 참나무의 피톤치드는 태극권 운동으로 받아들이는 기(氣)와 혈(血)의 원활한 흐름에 큰 보탬을 주어 양생(養生)의 효과를 증대시키기도 하였다.
 만추의 계절을 지나 초겨울을 넘어 찬 서리가 내리던 어느 날 운동하는 먼발치에 그냥 넘기기엔 애잔한 자연현상이 눈에 밟힌다. 여름철에 농익어 떨어진 방울토마토가 씨앗을 내리니 그것들이 발아해 손가락만치 커져 있었다.

 그뿐이 아니다. 어느 분이 텃밭 주위에 메리골드(금송화)를 줄지어 심었는데 그것도 씨앗이 떨어져 자라나고 있었다. 그러나 곧 찬 서리 내리면 꽃도 못 피우고 얼어 죽을 것이 뻔하여 꽃삽으로 정성들여 떠서 집으로 가져와 베란다의 화분에 심었다. 햇볕이 잘 드는 데다 거름도 적당히 넣어 주었더니 방울토마토와 메리골드가 꽃을 피웠다. 추위에 헤매던 꿀벌 한 마리가 들어와 이 꽃 저 꽃을 돌아다니며 꽃가루와 꿀을 딴다. 아마 화분 수정이 되었으니 토마토 열매도 열릴 수 있을 것을 예상해봤다.

 바깥에는 눈이 내리는데 베란다에서는 금송화 꽃과 방울토마토의 꽃을 보는 것도 퍽 재미있는 일이다. 토마토가 열리지 않더라도 노란 꽃만 보아도 참 예쁘다. 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보며 이제 열매를 맺을 때까지 물 주고 거름 주리라.

 봄부터 가을까지 인간에게 미각과 시각과 후각을 즐겁게 해주며 원기를 제공해 준 채소와 꽃들에 대한 보답이라면 보답이다. 

 꽃을 피웠으니 그 씨앗 고이 받아 따뜻한 봄날 다시 텃밭으로 돌려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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