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한18번가의 기적, 마을이 호텔이 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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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한18번가의 기적, 마을이 호텔이 될 수 있다고?
  • 김수연 기자
  • 승인 2021.07.09 09:49
  • 호수 7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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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재생 프로젝트 | 빈집에 생기를, 지역에 활기를 ①
주민들이 세운 마을호텔18번가. 이 호텔 이용객은 지난해만 1천명이 넘는다.
주민들이 세운 마을호텔18번가. 이 호텔 이용객은 지난해만 1천명이 넘는다.
마을호텔 매니저 유영자 이장.
마을호텔 매니저 유영자 이장.

빈집은 일종의 `징후`다. 빈집에는 해당도시의 인구구성 문제, 일자리와 복지 문제, 고령화 문제가 담겨 있다. 남해군은 현재 인구 4만3천명이 안 되는 인구소멸 고위험지역이자, 전체 인구 중 65세이상 고령인구가 35%가 넘는 초고령사회다. 마을마다 젊은이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고 어르신이 돌아가신 빈집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이에 군은 청장년층 인구유입을 위한 귀농귀촌 지원, 청년정책, 작은학교 살리기, 도시재생 등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으나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를 주민주도형 빈집재생 및 활용과 마을 커뮤니티 활성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지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정선 폐광촌의 기적, 국내 최초 마을호텔 18번가)과 전북 군산시 월명동(우체통거리)의 사례를 살펴보고 그 가능성을 타진해봤다. <편집자 주>

 

호텔 안 유 이장이 직접 만든 LED야생화가 눈에 띈다.
호텔 안 유 이장이 직접 만든 LED야생화가 눈에 띈다.

탄광개발과 마을의 형성
 고한읍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해발 700미터 고산지대다. 1950년대엔 화전민 100가구 정도의 작은 산촌마을이었다. 1960년대 고한읍과 사북읍에 탄광 개발이 시작되자 전국에서 일꾼이 몰려들며 지역경제는 호황을 누렸다. 1980년대 들어 석유와 도시가스가 보급되면서 석탄산업은 쇠락했고 1989년 정부 정책에 따라 대부분의 탄광이 폐광되며 광부들은 마을을 떠났다.


 정부는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1998년 고한읍에 내국인 카지노 운영 공기업인 강원랜드를 설립했다. 하이원리조트도 건설했다. 폐광 이후 20여 년간 수조원의 예산이 투입됐지만, 마을엔 갈수록 빈집이 늘어나고 인구는 줄어들었다. 관광객도 대형 리조트에만 몰릴 뿐 마을은 점점 썰렁해졌다.


 여러 마을 중에서도 고한18리가 가장 열악했다. 빈집이 즐비한 골목길은 해가 지면 사람들이 통행을 망설일 만큼 어둡고 무서웠다.
 
 

마을호텔 세미나룸이자 커뮤니티 공간. 야생화 씨앗이나 공예품을 판매한다.
마을호텔 세미나룸이자 커뮤니티 공간. 야생화 씨앗이나 공예품을 판매한다.

마을 만들기, 할 수 있는 일부터
 고한시장에서 광고기획사 `하늘기획`을 운영하던 김진용 씨는 점점 쇠락해가는 고향마을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고한 18리 골목의 빈 건물을 매입해 고치고 사무실을 이전했다. 2017년 10월 `마을 만들기`를 기획하고 `하늘기획` 건물을 첫 사례로 삼은 셈이다. 이어 강원도 공간재생사업에 선정된 공유 오피스 공간 `이음플랫폼`이 맞은편 폐가에 들어섰다. 빈집 두 곳이 번듯하게 바뀌자 주민들의 시선도 변하고 기대와 희망이 부풀었다.


 유영자 이장과 김진용 마을총무가 주축이 되어 `마을만들기위원회`를 발족했다. 주민들을 자주 만나 설득해 마을만들기에 대한 공감대를 쌓아갔다. 주민들은 스스로 골목을 가꾸기 시작했다. 담장을 헐고, 골목 안 쓰레기와 폐전선을 치우고, 화단을 가꾸어 집 앞을 단장했다.
 마을 명칭도 `18리`에서 `18번가`로 바꿨다.


 이후 국토교통부와 강원도에서 시행하는 각종 폐·공간 재생사업에 응모해 관의 인적·경제적 지원을 받아냈다. 우선 칙칙한 건물 외벽을 산뜻한 색으로 칠했다. 지역 예술가는 담벼락에 소녀, 고양이, 꽃 등 동화 같은 그림을 그렸다. 부녀회에서는 리스, 편지꽂이, 화분대, 벽걸이 등 아기자기한 공예품을 만들어 골목을 장식했다.


 골목 안 상가와 집집마다 벽화, 조형물, 화분이 즐비해 방문한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여기서 열리는 고한골목길정원박람회는 올해로 3회째를 맞는다. 올해는 `일상으로의 초대`라는 슬로건으로 8월 초에 열릴 예정이다.   


 김진용 마을호텔18번가 협동조합 상임이사는 "18번가는 관이 아닌 주민들이 주도한 사업"임을 강조하면서 "지난 3년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했다. 마을이 변하고 환경이 변하니 더불어 사람이 변했다. 사람이 성장했다"고 말한다. 
 
 

주민 모두가 마을 호텔리어
 그리고 지난해 4월 주민과 골목 상점 11곳이 합심해 `고한18번가 협동조합`을 구성했다. 고한18번가 협동조합은 한우식당을 개조해 숙박시설 `마을호텔 18번가`를 개장했다. 숙박시설 `마을호텔 18번가`의 관리자는 유영자 이장이다. 그의 명함에는 `지배인 유영자`라고 씌어 있다.


 유영자 이장은 "호텔 안팎을 장식한 야생화 작품들은 주민들이 공예 작가에게 배워서 직접 만든 LED공예품"이라며 호텔 구석구석 정성들여 꾸민 공간을 소개한다. 


 마을호텔 18번가는 호텔과 게스트하우스를 절충해놓은 분위기다. 2인실인 별방(한실), 빛방(양실)과 3인실 꽃방(양실) 등 총 3실로 구성돼 있고 시리얼과 샌드위치, 우유 등을 조식으로 제공한다. 숙박료는 8만~12만 원이다. 숙박객에게는 식당, 카페, 사진관 등 회원사 5~10% 할인쿠폰을 준다. 


 골목은 호텔 로비, 골목 입구 마을회관은 호텔 세미나룸, 카페 수작은 호텔 라운지, 국일반점·구공탄구이·누리한우촌은 호텔 레스토랑 역할을 한다. 젊은 사진작가가 주인장인 들꽃사진관도 여행객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데 한몫을 한다. 18번가 주민이 모두 호텔리어인 셈이다. 기존 골목 상점을 활용해 하나의 호텔처럼 운영한다는 점이 눈여겨볼 만하다.


 `마을호텔 18번가`가 입소문과 미디어를 통해 제법 알려지자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빈 객실이 별로 없을 정도다. 18번가 협동조합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마을호텔 1호점 투숙객이 1천여명, 마을 방문객은 5만명을 상회한다고 한다.

 


 `마을호텔 18번가`는 국내 최초의 공동체 비즈니스 모델사업으로 인정받아 사업에 탄력을 받게 됐다. 18번가 협동조합은 강원도의 2021년도 폐광지역 주민창업기업 공모사업에 선정돼 마을호텔 2호점 개장을 준비하고 있다. 새롭게 조성될 객실은 18번가 골목길 내에 위치한 해오름민박을 리모델링해 운영할 계획이라고 한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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