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조미료와 인공감미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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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조미료와 인공감미료
  • 남해타임즈
  • 승인 2021.07.16 10:18
  • 호수 7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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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의 남해일기

 유례없는 코로나의 위기가 길어지고 있다. 코로나 전에는 주말맞이 기념을 아이들에게 우뚝 솟은 건물 속에 있는 동물원, 서점, 레스토랑을 거쳐 전시관이나 액티비티 체험으로 몸을 아끼지 않은 결과, 월요병을 경험했었다. 예를 들자면, 도시아이들이 아이스링크에서 스케이트를 타면 내 아이들은 콘크리트바닥에서 인라인스케이트라도 타봐야 한다는 생각, 도시아이들이 박물관에서 도슨트를 따라 역사를 알아갈 때 내 아이들은 박물관에서 발행한 간행물이라도 읽어봐야 한다는 생각들이 깊어져서다. 나의 어리석은 판단으로 집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를 찾아가느라 달리는 차 속에서 조금 있으면 도착한다는 말로 아이의 기울어진 고개를 몇 번이고 바로 세우며 차멀미 심한 아이들을 괴롭혔었다. 
 
 섬 안에 살아 기차 탈 기회가 없으니 억지로 하동까지 가서 기차를 태웠다. 아이는 탁 트인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기차를 신기해 했으나 기차 안에서는 정작 창밖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 구경에 심취했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울창하고, 화초류가 아기자기한 식물원에서 안내팻말을 보며 아이에게 설명해 주기 바쁜 나는 무늬만 생태해설사였다. 아이는 내 기대와는 달리 나무와 꽃들보다 길바닥에 떼를 지어 가는 개미관찰을 더 중요시 해 한숨이 나오게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무식한 엄마였다.
 
 그날도 운전대를 바쁘게 몰아 다른 지역에서 경쟁하듯 조성해 놓아 한창 핫하다는 크리스털 케이블카를 탈 때였다.
 "엄마, 엄마는 이런 게 재밌어?"
 "재미? 엄마는 억수로 무서븐데, 너그들 태아줄라꼬 왔다 아이가. 요~가 억수로 사람들한테 인기가 많단다. 아까 우리 들어올 때 줄 서 있는거 봤제?"
 "엄마, 사실 나는 이런 거 타는 거 보다 그냥 바다에 가는 게 더 좋아요."
 "하모, 엄마도 바다 구경 하는기 더 좋다. 그래도 이런 케이블카는 남해에 없응께 이래 한번 타 보모 좋다 아이가. 남해에도 이런 거 있으면 좋겠제?"
 "이런 거 다 있으면 서울인지, 남해인지 잘 모르는 거 아니에요?"
 
 딸아이가 커가면서 하는 말들이 머리에 큰 망치를 두드린 듯 큰 울림을 주다가,  마음에 다시 환한 불을 켜주다가 하였다. 아이가 학교에서 사회과목을 접하면서 내가 사는 지역의 주변 알아보기에서 남해를 다시 학습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 남해도 나무와 꽃이 자연적으로 아름다운 곳이고, 멀리 찾아가지 않아도 휴양림이나 예술촌, 정원이 있고, 역사적으로 남해에 남을 인물들은 이순신 호국공원이나 유배문학관에서 얼마든지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을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를 겪고서야 곳곳에 있는 자원들이 보였다. 그리 비싸지도 않은 입장료를 본전으로 생각해 아이의 느긋함을 견디지 못한 부끄러운 시절은 남해에서 벼슬까지 받은 소나무를 보고, 가까운 근린공원에서 천천히 땅의 기운까지 받을 정도로 마음의 여유를 찾아 회복되었다.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자원들과 코로나의 위기 속에서 우리의 활동공간은 외부도시 중심에서 지역 중심으로 남해의 일상을 재발견 하기에 이르렀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일어나는 여러 활동들이 궁금해 남해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미술전시가 이뤄지는 `바래길작은미술관`을 들르고 덤으로 평산항 앞의 작은 섬을 바라보고, 인근에 있는 `섬이정원`에 다녀오는 식이었다. 이순신 순국공원의 호국광장에서는 도자기 벽화를 따라 임진왜란 이야기를 하고, 첨망대까지 가는 오솔길을 걸으며 몇 갈래로 갈라져 자라는 소나무를 관찰했다. 고현까지 나온 김에 남해각으로 가서 재생한 공간을 보고 경관이 탁 트인 옥상에서 남해대교가 생기기 전에 고생한 섬사람들 이야기와 남해대교로 인한 남해의 변화, 우리나라 사람들의 추억이 깃든 관광지가 되었던 시절을 이야기 나누는 것으로 주말을 향유했다.
 
 아이와 지역을 함께 알아가고, 내가 밥벌이 하는 업무 중에도 아주 생소한 것들은 책으로 간접경험을 하고, 섬 밖에서 일어나는 트랜드와 남해일상의 조화를 생각했다. 내가 중학교 다니던 때에 아직 교복이 도입되지 않아 각자 사복을 입고 다녔다. 그때는 스스로가 패션 디자이너가 되어 단추를 2개 풀기도 하고, 청바지의 바짓단을 마름질 없이 가위로 싹뚝 잘라 실을 너풀거리며 다니거나 아예 바짓단을 길게 하여 도로 청소를 하고 다닐 정도로 쓸고 다니며 개성을 표현하고, 각자의 취향에 따라 머리를 묶거나 아예 짧게 자르거나 핀을 꽂거나 하면서 자기애가 넘치던 시절이었다.
 
 관광이나 문화, 전시, 조경도 마찬가지다. 외부도시의 도회미와 세련미가 넘치는 시설들이 사람들을 환호하게끔 만든 인공감미료를 듬뿍 넣은 맛이라면, 우리 남해에서 새롭게 일어나는 활동들은 천연조미료로 오래 공들인 우리의 멋이라고 생각한다. 백화점의 인위적으로 맞춰 둔 쇼케이스에 조명을 받아 걸린 꽃무늬 셔츠에 환호하는 것보다, 남해 색을 입힌 옷을 오래 기념했으면 좋겠다. 트롯노래로 유명해진 우리나라의 `신토불이`나 얼마 전에 읽은 `마을의 진화-산골마을 가미야마에서 만난 미래`에 나오는 `지산지소`는 모두 지역성을 강조한 말이다. 남해에서 시도되고, 이루어지고 있는 재생문화나 전시예술을 천연조미료를 정성껏 넣은 남해를 그대로 바라보는 일상의 예술이 넘쳐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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