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백리 남해바래길에 부는 바람 - 4코스 고사리밭길(남파랑3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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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백리 남해바래길에 부는 바람 - 4코스 고사리밭길(남파랑37) 2
  • 남해타임즈
  • 승인 2021.08.30 11:09
  • 호수 7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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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부경의 남해바래길 이야기 ⑧

  제방 2곳을 건너고 오용마을 좌측을 돌아 신축한 개인집으로 들어간다. 사생활에 방해되지 않을까 염려스러워 발소리를 죽여가며 살금살금 계단을 오르는데 주인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걱정하지 말고 통과해도 좋다고 먼저 말한다. 우리는 안도의 숨을 고르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네고 통과했다. 바래길 담당자의 말을 들어보니 코스 변경을 하기 전까지 당분간 통과 승낙을 받았다고 한다. 철새도래지 철래섬과 오용마을은 앞산 정신난끝 등이 다섯 마리의 용이 꿈틀거리는 형국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바래길 안내 표지판.
바래길 안내 표지판.

본격적인 큰 도로를 우회전하여 100m가량 가다가 좌회전하여 시멘트 포장도로를 오르기 시작한다. 가파른 1차 오용언덕을 10분 넘게 오르면 고사리밭길이 시작된다. 여기서부터 가속하거나 고개를 겁내면 어려운 고비를 맞는다. 평소대로 보폭을 줄이고 스틱을 잘 사용하면서 오르면 1차 고개는 무난하다. 고개에서 물 한 모금 적시고 앞뒤 사람 간격을 조율하면서 고사리밭 중간을 통과한다. 고사리가 다칠세라 발 들고 조심하면서 한 200m를 지그재그로 가로질러 내려가는데 여기서 사진을 촬영하려는 사람은 50m 먼저 내려가서 공제선상으로 큰 소나무 사이를 지나가는 일행 3~4명을 줄로 세워 담으면 명작이 될 것이다. 남해바래길 앱이 설치돼 있으니 1㎞마다 시간과 거리를 안내하는 멘트가 나오는데 1시간이 넘어서 4㎞를 통과하고 잠시 휴식을 취하면 이내 식포마을이다. 넓은 바다와 문전옥답으로 부자마을로 정평이 나 있고 지나가는 나그네도 굶지 않는다 하여 식포마을이라 불린다 한다.
잠시 숨고르기를 한 후 마의 식포고개, 허리를 감아 도는 깔딱고개를 오른다. 중국의 스촨의 원난 지역에서 시작하여 티벳으로 차와 말을 교역하던 4~5천m 고도와 5천㎞ 거리의 `차마고도` 외길 언덕길을 연상케 하는 식포 아홉굽이 고개다. 바라보면 그 위엄에 압도당하기 쉬우니 앞 사람 발자국만 보고 고사리 향을 맡으면서 걷는다. 농막 3곳을 지나 등짝의 송골송골한 진땀을 훔치면 어느새 정상 소나무 그늘이 우리를 쉼터로 안내한다. 제일 높은 곳을 통과했다는 성취감을 만끽하며 점점이 떠 있는 섬들과 고사리밭 능선과 창선 삼천포 대교와 어우러진 명품 풍경을 보노라니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배낭의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달달한 아메리카노 커피를 휴대용 텀블러에 받아 동료들과 나누며 행복감과 성취감에 젖어드는 시간은 꿀맛이다.

언포마을 아래 고사리밭.
언포마을 아래 고사리밭.
고사리밭 너머 삼천포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고사리밭 너머 삼천포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삼천포는 왜 삼천포인가요?" 갑자기 서울 고수 한 분이 물어온다. 삼천포(三千浦)의 유래는 이렇다. 고려 성종시대 이 지역에 수세미 수취를 위한 통양창이 설치됐는데 개성에서부터 통양창까지 거리가 물길로 무려 3천리였다는 것이다. 개성에서 삼천포까지 남해안 일대와 서해안을 타고 가야 하는 조운로는 3천리(1200㎞)였다. 즉 물리적 거리가 삼천포의 유래가 됐는데 현대에 와서 일부 와전되어 부정적 어감이 생겼다.
오늘 동행자는 남파랑 정방향 60대 서울 이우신, 이명희 님, 경기 유덕창 님, 제주 유하재 님 등 4명이다. 이분들은 산티아고 800㎞를 무려 7번이나 다녀온 걷기의 달인이다. 이 길은 프랑스 작은 마을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출발, 스페인 북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800㎞, 여정은 38일이나 걸리며 1993년 유네스코에 등재되었고 연간 수십만명의 순례자들이 이 길을 따라 고뇌를 답습한다. 성 야곱은 복음을 더 넓은 지역으로 전파한다는 사명을 띠고 스페인 북부 갈리시아 지방으로 전도여행을 떠났다가 7년여 만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뒤 헤롯왕에게 죽임을 당하여 예수의 12사도 중 첫 번째 순교자가 되었다. 제자들은 그의 유골을 생전에 그가 전도하던 스페인 북부지방으로 가져와서 묻었고 그가 걸었던 이 길은 순례자의 길의 대명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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