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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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을 기다리며
  • 남해타임즈
  • 승인 2021.09.03 16:08
  • 호수 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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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향, 나의 삶 103 │ 碧松 감충효
碧松  감  충  효시인 / 칼럼니스트
碧松 감 충 효
시인 / 칼럼니스트

자연의 섭리 따라 변하는 것 중에도
하늘이 중생에게 내리는 명약 있어
은근과 끈기에서만 그를 만나 보리라.

10년 묵은 은행 과즙 발효액을 우연히 찾아내고는 상당히 주목했던 일이 있었다. 오랠수록 신비스런 효능을 지닌다는 그 방면 전문가들의 이론들이 즐비하던 때였다.
필자가 16년 전 2005년도에 어느 곳을 관리하고 있을 때 그 지역의 유명한 의사 한 분이 노랗게 익은 마당의 수십 그루 은행나무열매를 채취하게 허락해주면 은행 알은 나에게 주고 과육만 가져가겠다는 제안을 해왔다. 바람불면 지천으로 떨어져 밟혀 깨지고 그 냄새가 고약해 코를 막아야 했는데 그걸 고가사다리 장비로 털어 말끔히 청소해주고 며칠 후에 은행알도 보내준다니 당연히 그러라고 했다.
그 은행 열매 과육을 어디다 쓰느냐고 물었더니 예부터 내려온 비방을 살짝 가르쳐 주셨다. 은행열매를 세척하여 삼베주머니에 넣어 무거운 물체를 얹어 놓으면 사흘까지 노란 즙이 빠져나오는데 그 냄새가 고약하여 혐오감을 느낄 정도이고 알레르기에 민감한 사람은 만지면 피부에 가려움증이 생길 수도 있다고 했다. 이 과즙을 발효시켜서 3개월 정도 지나면 식초가 되고 연륜이 쌓일수록 몸에 좋은 성분들이 생성되어 그 가치가 높아지며 10년이 넘으면 신비한 향기와 독특한 약효로 그 가치가 극에 달한다고 했다.

은행 알의 즙을 낸 다음 용기에 담아 베란다 세탁기 뒤의 어두운 공간에 놓고 깜박 잊고 있다가 세탁기를 교체하다가 발견한 것이다. 겉에 싼 비닐은 10년의 세월에 너덜너덜 삭아 있었고 병속의 발효액은 황금색으로 찬란했다.
그동안 아무도 모르게 10년의 세월 동안 이 은행과즙은 환골탈태하여 신비를 머금은 명약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으니 뚜껑을 여는 손이 다 떨렸다.
빛깔도 형언할 수 없이 고운 데다 이 세상에서 처음 맡아보는 향기는 필자를 황홀경으로 몰고 갔다. 맛을 볼 차례, 한 스푼을 입 속에서 굴린다. 이 세상의 어떤 맛도 비유할 수 없는 신비스런 맛 앞에 오묘한 자연의 섭리를 느껴 본다. 10년의 발효를 거쳐 이렇게 신비스런 곱고 고운 빛깔과 향기와 맛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지….
얼마간 시식하고 다시 새 냉장고 더 깊숙이 넣어 두었고 다시 5년이 경과하였으니 이 발효액의 연수는 16년이 되는 셈이다. 지금 조금 멀리 나와서 여름을 보내고 있는데 초가을쯤 다시 이 발효액의 상태를 점검해 보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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