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의 비극에서 벗어날 보물섬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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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의 비극에서 벗어날 보물섬 남해
  • 남해타임즈
  • 승인 2021.09.23 11:49
  • 호수 76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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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백시종 소설가
백시종 작가 약력- 남면 출생- 동아일보 신춘문예 단편 `비둘기` 당선- 제1회 한국소설문학 상 수상 `망망대해`- 제7회 서포문학상 수상 `논개`- 제2회 채만식문학상 수상  `서랍속의 반란`- 2020년 동리목월문학상 `누란의 미녀`- 2020년 황순원소나기마을문학상  `호 아저씨를 기다리며`
백시종 작가 약력
- 남면 출생
- 동아일보 신춘문예 단편 `비둘기` 당선
- 제1회 한국소설문학 상 수상 `망망대해`
- 제7회 서포문학상 수상 `논개`
- 제2회 채만식문학상 수상 `서랍속의 반란`
- 2020년 동리목월문학상 `누란의 미녀`
- 2020년 황순원소나기마을문학상 `호 아저씨를 기다리며`

 "남해 갈고지, 사람 살기 조쿠마!"


 내 어린 시절 늘 듣던 말이다. 그러나 바다 건너 여수는 금강석을 뿌려 놓은 듯 야경으로 번쩍였지만, 내 고향 남해는 캄캄 암흑 속이었다.


 그때까지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수는 불야성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여수 서쪽해안 종포 마을에는 남해 사람이 많이 살았다. 어쩌면 느릿느릿한 여수말보다 특유의 남해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이 더 많았는지도 몰랐다.


 당시 남해 여수를 잇는 교통편은 여객선이 유일했다. 이름이 `경전호`였다. 외모는 그럴싸했지만, 여수 부산을 왕복하는 `금양호`, `태안호`에 비하면 속력이 지나치게 느려 굼벵이로 불렸던 배였다.


 그럼에도 50년 가깝게 남해 섬과 여수를 왕래, 사랑과 이별을 실어 날랐고, 풍요과 번영도 실어 날랐다. 하루 두 차례 운항했다. 오후 2시 여수를 출발, 남면 선구리에서 평산포를 거쳐 서면 서상까지 갔다가 다음 날 아침 반대로 포구들을 지나 여수 객선 머리에 닿았다.


 남해와 여수는 뱃길로 고작 30리였다. 두 곳을 잇는 바다는 대체로 호수처럼 잔잔했으나, 풍랑이 일면 `경전호`는 그냥 발이 묶였다. 


 한밤 중 전기라도 나간 듯이 갑자기 캄캄해지고 암담해지는 것이다. 일상이 바쁜 사람들에게는 난감, 그 자체였다. 


 방학을 끝내고 개학을 코앞에 둔 학생들이 그랬고, 휴가를 마치고 귀대할 병사들이 그러했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발은 동동 구르며, 성난 바다를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모세의 기적처럼 바다를 반으로 갈라 버릴 수는 없을까, 금문교 같은 긴 다리를 건설하면 어떨까, 그것도 아니라면 예수님처럼 물 위를 걸을 수 있다면….
 
 거짓말처럼 남해~여수 해저터널이 뚫린다. 경제 타당성 조사에서 경제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16년간 네 차례나 탈락의 고배를 마신 남해~여수 해저터널 건설 사업이 드디어 통과 되는 쾌거를 이룬 것이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이 인구 절벽에 이른 우리나라 대부분 지방처럼 상주한 주민이 줄어들어, 마침내 소멸되고 마는 비극적인 현상을 뛰어넘어 남해는 사람이 넘치는 지속 가능한 생태 관광도시로 우뚝 서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남해 서면에서 여수 상암동을 잇는 해저 터널 7.3km가 완성되면 연간 관광객만 7천만 명이 모여들게 될 것이고, 남해 여수만 아니라 순천, 광양, 더 멀리 진주 권역까지 그 위력이 발휘 되리라는 것이 기계 전문가들의 산술적인 전망이다.


 우리는 오늘의 이 쾌거가 20년을 하루같이 서명 운동으로 캠페인으로 일관한 5만여 남해 군민들의 힘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더불어 `뜻을 모으고, 힘을 합하면 무엇이든 성사되지 못할 것이 없다.`고 말한 장충남 군수에게도 격려와 박수를 보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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