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무게와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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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무게와 품격
  • 남해타임즈
  • 승인 2021.09.23 11:56
  • 호수 76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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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칼럼 | 이현숙 본지 칼럼니스트
이 현 숙본지 칼럼니스트
이 현 숙
본지 칼럼니스트

 독선적 사고에 빠져 인종·국적·직업·외모·학력·성별·성소수자·장애인 등에 대한 혐오 발언을 거침없이 토파하는 이들이 있다. 타인의 정치적·종교적 견해를 묵살하고 폭력성·선정성이 담긴 말들을 내뱉는 데도 주저함이 없다. 그러면서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민주 국가에서 개인의 권리를 행사하는 게 무슨 문제냐는 듯 당당하다. 


 그러나 언론의 자유를 빌미로 하여 근거 불충분의 논리로써 상대방에게 상처나 모욕감을 준다면 이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폭언과 막말을 더하는 것은 천박성을 스스로 드러내는 자폭 행위나 다름없다. 


 거친 언어 습관은 결코 민주 시민의 덕목이 아니다. 생각은 말을 낳고 말은 행동을 낳고 행동은 습관을 낳는다. 한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함에 있어 가장 먼저 말씨나 말본새를 살피는 데는 까닭이 있다. 그것은 바로 말의 중요성 때문이다. 말로써 행동을 유추할 수 있고, 언어 수준을 통해 인격을 가늠할 수 있다. 


 만약 자신도 모르게 부정적인 언어 습관에 익숙해졌다면 말에 대한 기초예절부터 새로 습득해야 한다. 말하고 듣기 가운데 특히 듣기 능력이 부족한 경우, 대인관계에서 오해와 불신을 초래하기 쉽고 원만한 소통을 기대하기 어렵다. 입이 하나에 귀가 둘인 까닭은 말을 아끼되 말을 더 많이 새겨들으라는 뜻이다. 상대편이 이야기할 때 말끝을 무지르지 않고 끝까지 경청하는 태도만 갖추어도 갈등 해소에 큰 도움이 될 듯하다.


 말은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을 수도 있지만 혹독한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 절망의 나락에 빠진 사람의 처진 어깨를 토닥이며 `힘내라`는 진심어린 위로의 말을 건넸을 때 상대방에게는 크나큰 삶의 용기가 된다. 반면에 누군가 무심코 던진 말에 감정이 폭발하여 그 자리에서 흉측한 범죄자로 전락하거나, SNS에 달린 비난 댓글에 괴로워하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돌이킬 수 없는 갈등과 불화도 결국 엇나간 말 한 마디에서 비롯된다.  


 뇌사한 딸의 장기를 생면부지의 꺼져 가는 생명에게 기증한 어머니가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딸이 세상에 남긴 흔적을 확인할 길이 없다. 장기기증자 유가족과 장기이식인과의 교류를 원천봉쇄한 관련법 때문이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잘했다`라는 세상의 동의가 담긴 격려의 한 마디다. `수고했다`는 가족의 위로에 그간의 고생이 한순간에 눈 녹듯 사라졌다며 눈물짓는 주부도 있다. `사랑한다, 미안하다, 괜찮다, 고맙다, 애썼다`, 얼핏 보면 단순하고 평범한 말이지만 그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온라인상에서 불특정 다수와 소통을 즐기는 일부 무매너 네티즌들이 칭찬과 격려의 `선플`보다 `악플`에 매달려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익명성을 과신한 나머지 부적절한 내용물을 게시했다가 뒤늦게 후회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 모두 말의 전파력이나 영향력을 과소평가한 결과라 여겨진다. 이런 고객으로부터 의뢰를 받고 글과 사진 등 디지털 게시물을 찾아내어 삭제해 주는 `디지털 장의사`라는 신종 직업이 등장한 지 오래다. 웹상에 남겨진 `디지털 발자국(digital footprint)`을 추적하는 일종의 사냥꾼이다.


 말은 곧 인격이다. 개인의 인격 수양은 물론 건전한 사회 기풍을 조성하기 위해 언어폭력을 삼가고 곱고 바른 말을 습관화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을 들여다보면 답답하기 짝이 없다. 언어 순화를 위한 노력은커녕 말이나 문자를 매개로 하는 `보이스 피싱`, `스미싱`과 같은 범죄가 기승을 부리면서 우리 사회에 불신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문득 머릿속에 선조의 지혜가 담긴 옛 시조 한 수가 떠오른다. 세상을 탓할 수도 없고 차라리 침묵하는 편이 낫겠다 싶은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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