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락장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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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락장송
  • 남해타임즈
  • 승인 2021.09.23 11:58
  • 호수 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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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향, 나의 삶 105
碧松 감 충 효 시인 / 칼럼니스트
碧松 감 충 효
시인 / 칼럼니스트

어느 날 번개 따라 승천한 낙락장송
고승의 사리마냥 가지 복령 두고 가니
불자가 고이 거두는 염주 알의 천년 향

 
 산을 오르는데 엄청나게 큰 노송이 부러져 길을 막고 있었다. 벼락을 맞은 듯했다. 밑둥을 안아보니 세 아름을 조금 넘었다. 양지바른 좋은 곳에 우뚝 솟아 모양새도 뛰어났을 이 노송은 어느 날 번개를 맞이하여 벼락 치는 소리를 산천에 남기고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으리라. 부러진 부분의 나이테를 세어보니 대충 3백 개가 넘는다. 정식 등산코스가 아닌 개인 사유의 산길이니 이것의 처리는 산주의 마음에 달렸다.


 그날 등산을 마치고 산주를 찾았다. 산주는 동네 반장님이셨는데 노송이 넘어진 까닭을 물으니 벼락을 맞은 것 같다고 했다. 필자의 추측과 일치하였다. 밑둥이 세 아름이 넘는 이 노송은 지상 5미터쯤에서 3가지를 펼쳤는데 남쪽으로 향한 가지가 벼락을 맞고 옆으로 찢어지니 나머지 두 가지도 균형이 무너져 떨어져 나간 듯했다. 이 적막한 산중에 천둥번개가 이 노송을 때리는 것을 누가 본 것은 아니지만 떨어져 나간 큰 가지 중에 어느 한 가지가 새까맣게 타있으니 이러한 추측이 가능한 것이다. 필자가 산주에게 이 나무의 일부를 좀 달라고 했더니 산주는 그냥 다 가지라고 했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땔감이 귀했던 필자의 어린 시절 60년대를 생각해본다. 할머님께서 읍내 5일장이나 새벽시장에서 장작이나 솔가지 묶음의 땔감을 사 오시던 모습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뿐이 아니다. 필자는 학교를 파하거나 공휴일이면 동네 아이들과 이산 저산 오르내리며 소나무 낙엽을 갈퀴로 긁는 다거나 나무 그루터기를 파와서 땔감에 보탰다. 먹는 것, 입는 것도 귀했지만 산이 헐벗어 땔감도 귀하던 시절이었다.


 반장님께 노송의 필요한 부분만 좀 쓰겠다고 허락을 받고 뒷날 산에 올랐다. 적송의 향기는 탁월하다. 이 적송의 송진이 흘러나와 굳어 있는 곳은 솔 향이 더욱 진하게 발산된다. 특이하게 생긴 부분을 정성들여 잘라와 조각도로 모양을 다듬고 사포로 말끔히 닦으면 그 긴 세월 농축되어 굳어진 송진 덩어리는 그대로 살려두니 진한 솔향기가 품어져 나온다. 송진 덩어리 달린 목침을 베어보니 솔향기에 머리가 맑아진다. 나선형으로 휘어 올라간 긴 줄기와 곁가지를 곱게 다듬으니 무엇을 걸어두기에 안성맞춤인 공예품이 된다. 옹이가 있는 부분을 세로로 깎아보니 원줄기에 나타나는 옹이의 곡선 또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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