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남해대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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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남해대교다"
  • 남해타임즈
  • 승인 2021.10.22 10:05
  • 호수 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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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의 남해일기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는 고향이 어딘지, 몇 년생인지, 출신학교가 어딘지를 묻는 것부터 시작된다. "고향이 어디세요?"라면 "남해입니다." 그러면, "남해 어디. 여수? 통영?", "아니예. 경상남도 남해군예. 남해대교 모르십니까?"라고 반문의 대화가 시작된다. 
 
 내가 태어나 줄곧 40년이 넘도록 살고 있는 남해군은 남해대교 개통 전에는 외딴섬이었다. 섬사람들의 오랜 염원을 담아 1973년 6월 22일 동양 최대의 현수교인 `남해대교`가 개통되어 남해군의 경제발전의 전환점이 되었다. 남해사람들에게는 어머니의 다리, 문명의 다리가 되었고, 남해대교가 놓이며 남해섬은 새로 열렸고, 남해섬의 관문으로 그 시작점이 되었다. 
 
 설천면 노량마을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육지에 오르던 섬사람들은 차를 타고 청운의 꿈을 안고 다리를 건넜으며, 섬 속으로 외부의 물자들도 많이 들여왔다. 국가기록원에서 보유하고 있는 남해대교 개통식 영상에는 우리나라 최초의`하늘에 매달린 신기한 다리`를 구경하기 위해 10만 인파가 몰리고, 당시의 대통령과 당대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대거 다녀갔으니 남해사람들이 남해대교에 대해 느끼는 자부심 또한 대단하다. 남해로 들어오는 관문에 `빨강문`처럼 우뚝 솟아 있는 남해대교는 제2의 인생을 출발하는 신혼여행, 학생들의 추억을 가득 담은 수학여행, 현대자동차 포니의 광고촬영지, 가족들의 소풍지로 각광받았다. 
 
 남해대교는 남해사람들에게 `문`으로 통한다. 객지로 나가는 문, 남해로 돌아오는 문. 객지에 병원진료를 가거나 친구를 만나러 가거나, 남해로 돌아가는 버스에 앉아 출발시간을 기다리는 동안은 긴장한 표정과 따분한 시간이 흐른다. 버스가 고속도로를 쉼 없이 달려 진교를 지나 남해로 가는 길로 들어서면 노량해협이 슬쩍슬쩍 보인다. 그때부터는 사람들의 표정에 생기가 돌았다. "나 남해대교다"라는 말은 `이제 우리집에 다 왔구나` `엄마품으로 돌아가는구나` `여기서는 걸어서 가도 집에는 간다`라는 안도감이 든다는 뜻이다. 몇 시간이 걸려 달리던 고속도로에서의 시간보다 20분 남짓 걸리는 남해읍으로 가는 시간이 더 길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남해대교에 가 봤니? 차량통행이 많지 않았던 그 시절에 남해대교를 걸어보고, 남해대교위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남해각에서 말을 타고 사진을 찍던 시절. 남해대교까지 가던 노량벚꽃터널은 또 얼마나 예뻤게요. 남해대교 아래의 잔디광장에는 소풍을 나온 사람들이 문전성시를 이뤘고, MT나온 대학생들의 기타소리에 함께 귀 기울여지고, 자동박수가 나오던 시간. 남해대교는 남해가 가장 화려했던 시절, 남해가 다시 열린 사건을 증명해 주는 물적 증거물이다. 바야흐로 2021년. 우리는 일상에 쫓겨 남해대교를 잊었을지 몰라도 남해대교는 우리를 기억한다. 
 
 남해대교는 나보다 몇 년 선배님이시다. 너무나도 빨리, 너무나 쉽게 변하는 관광과 문화 트렌드, 유행가 속에서도 한자리에서 꿋꿋하게 남해군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 2018년 노량대교의 개통으로, 건설된 지 오래된 남해대교의 가치로운 재생을 위해 `남해대교 관광자원화사업`이 실시설계 용역에 착수하여 신호탄을 올렸다. 계획단계에서부터 주민이 함께 참여하는 `남해대교 매력연구단`과 청년리빙랩 사업으로 추진하는 `남해대교 친구들`이 활동중이다. 남해대교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주제로 `나는 남해대교를 기억한다` 추억 수기공모전을 접수중이며, 남해대교의 아름다운 곡선인 주케이블을 걸어 주탑꼭대기까지 올라가는 문화이벤트를 10월 15일 시행했다. 
 
 사람이 가장 고소공포증을 느낀다는 12m를 넘어선 50m 높이의 남해대교 주탑을 올라갈 수 있을까? 걱정에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자라나던 걱정은 전날 밤늦게까지 잠을 이룰수 없게 했다. 어느새 아래로 내려간 온도계는 잔잔한 가을바람을 불러오고, 바다는 옥빛에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였다. 다행히 날씨는 너무나 맑아 남해대교 교량안전을 관리하는 안전요원에게 안전교육을 듣고, 하네스를 착용하고, 안전화를 신고, 안전모를 쓰고 브릿지클라이밍의 안전장비 착용을 마쳤다. 영상을 보존하기 위해 영상장비인 고프로를 하나씩 들고 클라이밍이 시작되었다. 상상 속에서 불어나던 고소공포증은 주케이블에 발을 디딜 때마다 높이에 따라 나타나는 새로운 경관에 눈 녹듯이 사라졌다. 주탑 꼭대기에서는 하늘에 뭉게뭉게 있는 구름도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주탑 꼭대기에서는 준비해 간 현수막을 펼쳐 브릿지 클라이밍의 성공적인 세러머니를 했다. 이순신장군의 마지막전투 격전지였던 노량해협과 산성산, 노량마을까지 한눈에 넣었다. 남해가 고향이라는 큰 자산, 남해군의 랜드마크인 남해대교를 보유하고 있다는 자부심. 남해대교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다시 남해에서 시작된다. 남해군, 남해대교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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