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모든 잎이 꽃이 되는 두 번째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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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모든 잎이 꽃이 되는 두 번째 봄
  • 남해타임즈
  • 승인 2021.11.05 10:27
  • 호수 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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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의 남해일기

축구클럽 아이들과 시월의 대표적인 가곡인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들으면서 해주고 싶거나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함께 했다. 아이들은 놀랍게도 친구에게 화를 내거나, 부모님 말씀을 안 듣고 게임을 많이 한 것에 대한 미안함을 글로 쓰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화를 내지 않고, 게임도 많이 하지 않는다고 스스로에게 약속을 하는 모습이 어른인 나에게도 자기반성의 본보기가 되었다. 아빠엄마의 잔소리가 듣기 싫다는 아이도 있었다. 그때는 `잔소리`였고, 지금은 `교훈`이라는 걸 알게 되는 날에는 아이들도 어른이 되어 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축구클럽인데 자기소개를 하고, 글쓰기와 발표를 시키고, 동시낭송에 노래까지 부르게 하는 활동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 `모든 잎이 꽃이 되는 가을은 두 번째 봄이다`라고 알베르 까뮈가 말했다. 봄의 새싹 같은 아이들은 목소리가 우렁차졌고, 생각도 커지면서 단풍 같은 가을로 자라나고 있다. 아이들의 시간은 언제나 연노란 새싹같은 봄이길 바란다.
 
외부로 나가야 할 일이 잦았던 시월의 마지막 주였다. 외부라고 해도 다리를 건너는 거창한 일은 아니다. 남해읍에 주거지와 직장 근거지를 두고 있으니 읍을 벗어나면 때로는 여행지로 떠나는 기분이 들곤 했다. 계절 따라 변하는 가로수와 길섶에서 빼꼼히 눈 내미는 풀꽃, 날씨에 따라 바뀌어 있는 물색이 마음을 다독여준다. 특히, 가을들녘의 벼를 베어낸 자리를 지날 때가 좋았다. 가지런한 짚단에서 나오는 고향같은 냄새는 고급 영양제보다 더 힘을 주는 것 같다. 간혹 남해에서 받은 상처를 가장 빠르게 회복하는 것도, 남해에서 살고 있어서 위안을 얻고 힘을 얻는 이유일 것이다.
 
예전에는 억지로 활력을 얻기 위해 새벽시장에 자주 나갔다. 활어차가 그득히 내려놓는 고기보다 일찍 시장에 나와 고기전에서 생선비늘을 긁는 할머니나 여러 종류의 채소를 난전에 펼쳐놓고 파는 도배기꾼들에게서 에너지를 얻곤 했다. 침침한  눈을 하고도 잡티 하나 없이 가려내는 가느다란 정구지, 손가락 마디가 굵어지고 굳은살이 박혀 이물감도 잘 못 느끼면서 쪽파의 하얀 장딴지를 내어 놓는 섬세함과 부지런함을 지닌 달인들은 시장에 계셨다.
 
요즘에는 미조항에서 힘을 자주 얻는다. 바닷물결은 쉬지 않고 술렁이고, 사람들의 활동에도 쉼이 없다. 너른 바다를 항해하고, 고기를 잡은 배가 항구에 정박하면 다시 손들이 빨라진다. 기다리던 활어차에 고기를 실어주고, 어획물을 담아온 상자들을 정리하고, 어구를 세척하는 작업들은 연결을 통해 모두 사람들에게 전해진다. 미조북항은 아름다운 항구를 보려는 여행객들과 바쁘게 움직이는 어부들과 남해사람들을 위해 매립하여 만든 넓은 주차장이 있고, 사항마을에서 도로를 따라 항구로 이어진 길을 걸으면 미조남항으로 이어진다. 미조남항은 `남해군수협수산업산업거점단지`가 카스냉동으로 싱싱한 해산물을 공급한다. 그 길을 따라 팔랑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옛날 냉동창고를 재생한 복합문화공간인 `스페이스 미조`가 위치한다. 입구의 기다란 사각의 통로를 따라 후원으로 들어서면 나무데크를 지나 바람소리가 보인다. 일찍 가을이 앉은 나뭇잎은 나뭇잎과 나뭇잎을 스치며 포르르 떨어지는 소리, 톨톨톨 도토리 구르는 소리. 꽤 많은 도토리가 흩어져 있다. 
 
남해읍에 사는 엄마도 매일 걷는 산책길에서 도토리를 주워오셔서 말린다. 
 "엄마, 다람쥐나 묵고로 냅두제. 그걸 머덜라꼬."
 "이걸 껍데기를 뱃기가 더 몰~라야 된다. 방앗간가서 깨~서 묵을 씨모 몰랑허니 맛나더라꼬."
 "엄마가 온제부터 묵을 좋아했는고?"
 "그리말이다. 내는 몰캉한 그런 거 실터마는 인자 나이가 드는가, 그런기 좋더라. 니도 이 성할 때 맛난 거 마이 묵고, 좋은데 구경 마이 댕기라. 나이드니 쪼매 묵어도 속이 차고, 무르팍이 아파서 넘 따라 댕기기도 궂다."
 엄마는 그랬다. 물렁한 거 싫어해서 바나나도 싫고, 홍시보다 단단한 단감을 좋아하고, 물음식을 싫어해서 국물도 별로 끓이지 않으셨다. 마른오징어를 앉은자리에서 몇 마리를 뜯어도 성에 차지 않을 때가 있던 엄마였다. 영원히 나이들지 않을 것 같은 엄마는 사라졌다. 
 
나는 올똥말똥 계속 겨울과 봄을 반복하는 망설이는 봄보다 풍요로운 마음이 드는 가을을 아주 좋아했었다. 요즘에는 사계절 중 가장 짧고, 스산한 마음이 들어 가을에 폭 빠지지를 못한다. 아! 나이듦의 증거인가. 가능하면 올가을에는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과 남해의 단풍을 즐기길 추천한다. 외모는 변했어도 마음은 늘 우리모두의 편인 고향을 만나러 가자. 두 번째 꽃이 된 가을단풍이 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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