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 안 쓰는 남해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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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 안 쓰는 남해사람
  • 남해타임즈
  • 승인 2021.11.26 11:11
  • 호수 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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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의 남해일기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전도마을에 살던 성숙이와 단칸방을 얻어 놓고 객지생활이 시작되었다. 남해에서 가져온 쌀로 밥을 안치고, 새빨간 김치를 썰어 담아 밥상을 차렸다. 밥을 하기 싫은 날은 라면도 실컷 끓여 먹었다. 남해에서부터 가져간 앉은뱅이 작은 상은 꿈을 키우던 책상이 되기도 했고, 때로는 서로의 고민을 들어주느라 술상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주말이면 버스를 타고 남해를 함께 오고, 객지로 나가는 버스도 함께 타고 다녔다. 집 앞이 갱번가였던 성숙이는 서대와 갈치, 문어와 낙지 같은 해산물을 가져와서 향수병을 달래주었다. 
 
 어느 날은 신짝만한 서대를 가져와서 후라이팬에 노릇노릇하게 구워냈다.
 "생선구이 식당 차리면 완전 대박 나겠는데."
 "아빠랑 엄마랑 바다에 나가면 동생들 밥 해먹이던 실력이 있다 아이가."
 "옛날에 밥 안 해묵고 댕긴 사람 있나. 내도 손에 물 마를 때가 없었거등. 근데, 이렇게 큰 생선은 팔아서 학비를 해야 하는거 아이가"
 "괘안타. 좋은 거는 우리도 묵어야제. 그리고 우리동네가 부자동네 아이가. 전도라는 마을이름이 돈이 많은 섬이라고. 어른들은 된 섬이라고 불렀다. 옛날에는 동네 개들도 돈을 물고 댕깃단다."
 "그모 니도 부잣집 딸이네."
 "우리 동네가 부자동네라 했제. 우리집은 가난허다."
 성숙이가 늘어놓은 동네자랑을 듣다가 도톰한 살을 발라내고, 생선을 뒤집으려는 순간 성숙이의 앙칼진 목소리보다 더 빠르게 손이 날아와 내 손등을 찰싹 때렸다.
 "야! 누가 고기 뒤집으라 캣노."
 "와? 뒤비야 밑에 껏도 묵지."
 "그럴 때는 고기를 뒤집는기 아이라 이렇게 딱 하는 기라."
 그러면서 젓가락으로 가운데 가시를 발라냈다.
 "우리 아빠가 배타고 바다로 나가는데, 그렇게 고기배를 뒤집어서 배가 뒤집히면 우짤라고."
 "미신 아이가."
 나는 미안한 마음에 변명처럼 미신이라는 말을 꺼냈지만, 속으로 아주 뜨끔했다.
 안전한 조업을 위해서라면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 말이라도 지켜야했다.
 이제 나의 습관이 된, 달인에 가까운 생선 가시 발라내기는 성숙이가 전수해 준 오래되고 귀한 기술이 되었다.
 
 성숙이는 작은 사무실의 무역회사에 먼저 취직을 했다. 
 "너 학교 마치면 우리 사무실에 놀러와라. 우리 이사님이 남해사람, 그것도 삼동분이시더라."
 "정말? 니 소통하는 데엔 아무 문제가 없겠네. 사투리를 막 쓰면서."
 "내가 취직을 한 건지, 다시 학생이 된 건지 모르겠다. 매일 이사님이 쪽지시험을 친다."
 취직을 하고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성숙이는 머리를 싸매고 밤마다 공부를 했다.
 나라이름과 그 나라의 수도를 외우고, 컨테이너가 도착할 항구를 쪽지시험치고 합격을 해야 퇴근이 가능했다. 내가 나라를 불러주면 성숙이가 답을 하는 것으로 성숙이의 이른 퇴근을 위해 도왔다. 어떻게 외워야 더 쉽게 외워질지도 둘이 고민했다.
 
 "내는 아는 항구가 미조항 빼끼 없는데, 그래도 성숙이 니는 잘 외운다이. 외국어라서 내는 쎄도 잘 안돌아간다."
 "맨날 해봐라. 이것도 계속 하니깐 나도 이제 적응이 좀 된다. 송장 하나 잘 못 쓰면 그 길로 내는 모가지야."
 성숙이가 백점을 맞는 날에는 이사님께서 회식을 제안해 나도 함께 불러주셨다. 우리는 이사님의 젊은 시절이야기와 남해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웠다. 
 "성숙씨도 이제 사투리를 좀 줄이고, 사무실로 전화한 사람들이 말을 못 알아묵어. 연경씨도 남해사람인데 사투리를 하나도 안 쓰네."
 내가 머리털 나고 사투리 안 쓴다는 말을 처음 들어보지만, 이사님의 호의적인 말을 사양할 이유는 없었다.
 
 성숙이의 퇴사로 가을이면 내산단풍을 그리도 좋아하시던 김문곤 이사님과의 인연도 다했지만 남해사람들은 늘 남해를 그리워하며 산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셨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리운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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