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시간은 몇 시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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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시간은 몇 시입니까
  • 남해타임즈
  • 승인 2021.12.03 10:18
  • 호수 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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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의 남해일기

 열 살 아이의 생활 루틴에 대해 걱정을 가진 적이 있다. 등교하는 날이나 휴일이거나 방학에라도 늦잠이라고는 없다. 힘들여 깨우지 않아도 먼저 일어나서 부스럭거리며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고 할 때는 어른흉내 내는 사춘기 소년을 맞이하나 싶다. 우리집 거실에 걸린 벽시계는 건전지를 갈아 넣을 땐 시계바늘을 10분 빠르게 맞춰놓는다. 지각을 면하거나, 약속시간을 잘 지키기 위한 나만의 방편이다. 아이는 그것도 불만이었다.


 "엄마, 시계를 왜 저렇게 빠르게 해놔요?"
 "지각 안할라꼬 좀 빠르게 해놨제. 와?"
 "엄마, 시계는 정확하게 시간을 볼려고 하는 거 아니에요? 우리집 시계는 저렇게 빨라서 맨날 고장난 시계예요."
 "머이 고장난기고, 지금 시간에서 10분만 빼몬 되는데."
 "학교갈 때 맨날 10분 일찍 나가니깐 친구를 더 오래 기다려야 되잖아요. 엄마는 맨날 10분을 더 지나서 나가잖아요. 시계는 좀 정확하게 해놓고, 미리 준비해서 나가세요."
 "......"
 그러고 보니 10분을 더 일찍 나간 적이 없다. 시계바늘은 빠르게 맞춰 놓았어도 미리 가늠해놓은 10분도 속으로 시간을 계산하면서 애꿎은 시계만 제 역할을 못하게 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외삼촌은 수고를 졸업하고 원양어선을 탔다. 높은 아파트 만한 배를 타고 오대양을 누비며 참치를 잡는 선원으로 일하다가 배가 한국에 닿으면 참치와 선물을 가지고 남해로 왔다. 엄마의 남동생인 외삼촌은 조카인 우리들을 위한 선물도 있었는데, 그 중에 최애템은 카시오시계였다. 요즘에는 거리의 대형 전광판에서도 시간을 보여주고, 개인 휴대폰이나 손목시계가 흔해 현재 시각의 궁금증은 없다. 
 예전에는 친구를 기다리다가 시간이 궁금해 깔끔한 양복을 차려입은 중년신사에게  "저기 죄송하지만, 지금 몇 시쯤 되었습니까?" 하면
 그 신사는 손목의 번쩍이는 시계를 자랑치려는 듯 팔을 일부러 크게 들어올려 "지금 두시 10분 전이에요." 라고 알려주었다.
 
 친구들과의 약속 집합장소는 `사거리 시계탑` 이었다. 두시까지 사거리 시계탑에서 보자 하면 성내밖에 사는 친구들은 약속시간 전에 모이고, 성내 사는 친구들은 늦었다. 
 "우리는 멀리서 걸어오는데 다음에는 너그가 먼저 우리를 좀 기다리봐라."
 "너그들 오는 시간 생각해서 우리는 준비했는데, 너그 걸음이 빠린기다."
 "담에는 시계를 딱 보고 움직이~, 우리 걸음 생각하지 말고, 시간 맞춰서 시계탑 앞으로."
 
 삼촌이 사다 준 카시오시계를 왼쪽 손목에 차고 친구들 앞에서 
 "아이고 머리야, 오늘 와 이리 머리가 아푸네." 하면,
 눈치가 꽝인 친구는 "머리가 아푸면 집에 있지. 뭔다꼬 놀러나왔네."하고, 
 눈치 백단인 친구는 "못 보던 시계네. 어디서 했노, 나도 한번 차보자."
 그러면 나는 시계 그 까이꺼 관심도 없다는 척, 무심하게 시계를 풀어서 친구들에게 한 번씩 차보게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누구는 팔뚝이 굵어서 시계가 딱 맞다는 둥, 누구는 팔이 가늘어서 시계가 돌아간다는 둥 신소리를 해댔다.
 "시계 닳긋다. 너그들 시계 첨 보나. 인자부터 시간 궁금하몬 내한테 물어봐라." 라며 시계하나로 어깨에 기왓장을 올리던 시절. 나는 친구들에게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기 위해 아홉시만 되면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아홉시 뉴스가 시작되는 시간에는 초까지 정확하게 시간을 알려주었기에 그 시간에 맞춰 나는 손목시계의 시간을 맞췄다.
 "지금 시간 정확한기가."
 "하모. 어제 아홉시 뉴스 시간에 맞춰서 지금은 1초도 오차가 없다. 시방 젤 정확한 시계다."
 
 시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간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아침형 인간이 되기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잠든 몸을 깨우기도 했고, 좀 더 체계적으로 시간을 쓰기 위해 알람을 맞춰 놓고 움직이기도 한다. 나의 시간은 아직은 기회가 있는 오후4시쯤이라고 생각하고 산다. 당신의 시간은 몇 시 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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