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碧松 감충효 시인 / 칼럼니스트
바람이 우는 건가 고사목이 우는 건가
바람과 고사목이 주고받는 산 이야기
음률을 다듬고 골라 듣는 이는 듣느니.
마당가에 장승처럼 세워 둔 고사목에서 불규칙하지만 대금에서 나오는 음과 비슷한 음향을 감지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필자는 대금을 깊이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교직에 있을 때 이러 저러한 연수회가 있어 음의 높낮이(임,남,무,황,태,고,중) 정도는 알고 소리도 낼 수 있다.
어느 날 바람이 세게 불 때 고사목의 빈 통속을 통해 나오는 소리는 그 울림이 웅대해서 뭔가 신비스런 느낌마저 들었다. 아주 저음으로 울리는 이 소리는 바람이 통속을 통하여 여러 구멍으로 나가면서 미세한 화음의 성질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 이후로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 고사목을 잘 다듬고 조율해서 매머드 목관악기로 만들어 볼까? 두드려 보면 음 높이가 다른 음들이 울려 나옴에 사찰의 악기인 목어나 목금으로 만들어 볼까? 아니면 저절로 생긴 여러 공간에 현을 걸어 현악기로 만들어 볼까하다가 결론적으로 세 가지를 다 만들어 보기로 하였다. 우선 덩치가 큰 고사목의 빈속이 공명통의 역할을 충분히 하여 삼각형 모양으로 생긴 구멍 부분의 가장자리를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두들겨 가면 도,레,미,파,솔,라,시,도 8음계와 유사한 소리가 난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 고사목은 군데군데 구멍이 나있어 현악기에서의 현을 걸어 튕겨보면 역시 높낮이가 다른 음이 떨려 나오니 현악기로 태어날 가능성도 있다. 거칠고 정확하지 못한 음계의 조율은 나중에 미세 손질을 가하면 될 것이다.
올 겨울에 고사목이 전하는 음률을 다듬고 골라 대형의 목관악기, 현악기, 타악기를 만들어 볼 참이다. 애벌 손질의 이 고사목은 아직은 거칠다. 길이가 170cm, 몸통의 지름이 30cm로 결코 작지 않은 이 고사목이 악기로 변신한다면 그것도 관악기와 현악기 그리고 타악기의 종합세트가 되리라. 거친 표피를 닦아내니 이외로 기름기가 반질반질한 매끈한 피부가 나타난다. 거기에 아름다운 목재 특유의 무늬가 선명하니 금상첨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