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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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 예찬
  • 남해타임즈
  • 승인 2021.12.10 10:49
  • 호수 77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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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의 남해일기

 2021년. 인생의 속도는 나이와 비례한다는 말이 절실하게 와 닿는 한해다. 어서 스무 살만 되어도 내세상이 될 것이라는 꿈같은 시간은 그 속도가 한여름 엿가락처럼 늘어지기만 했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를 스물 아홉 살, 12월의 석양 아래서 듣고 눈물을 흘렸다. 유혹에 흔들리지 않으려 다짐하던 서른 아홉을 지나고, 시속 40㎞의 인생 열차를 타고 있다. 지정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볼 때도 있고, 경유하는 곳에 내려 그곳을 좀 더 속속들이 알아보고픈 마음도 있다. 내리지 않아야 할 경유지에 발을 딛어, 일어나지 않은 일들의 상상은 바람을 넣고 있는 풍선처럼 부풀어 계속 열차속에서만 발을 구르고 있다. 12월 달력 한 장, 올해의 기회는 3주인가?
 
 늦잠을 자고 싶은 주말은 여지없이 아들의 이불킥과 시원한 오줌줄기, 부산한 발소리와 함께 와장창 깨졌다. 더불어 전화벨 소리까지 요란스럽게 울린다. 발신음 표시전화에 애먼 곳에 화풀이를 한다.


 "엄마, 주말이네. 뭘 새복부터 전화를 해삿는고."
 "일곱시다. 새복은 무신. 어여 일어나서 저가배랑 새끼들 밥 챙기 믹이여."
 "어~음마! 한끼 안 묵는닷꼬 무슨일 생기는 것도 아니고, 와 전화 했능고?"
 "아.... 오데, 절달력 하나 구할 수 없시까?"
 "아직 올해도 다 안갔고만, 낸 또 믄 큰일이라꼬. 엄마 내가 절에 댕기는 것도 아인데, 오데서 구허낀고, 고마 내가 머리깎고 절에 가까."
 "아~들 어린이집 댕길때는 해마다 절달력이 온께 좋더마는, 인자 그런것도 귓타."
 "엄마, 애~나 사무실에 달력이 있으몬 내가 한 개 챙기다 주끼네."
 "내~나 음력이 크게 나오는 절달력을 챙기보라 캐도.."
 
 해마다 12월이면 달력풍년이었다. 엄마가 좋아하는 절달력은 양력보다 음력이 더 크게 인쇄되어 있어 음력으로 지내는 제사나 생일을 챙기기에 좋았다. 절기에 따라 미리 해야 할 일들과 하지 않아야 할 것들을 달력을 보고 결정했다. 농협에서는 농업인들에게 맞는 영농달력을 만들어 내고, 수협에서는 어업인들에게 맞는 물때달력을 만들어 냈다. 비닐에 쌓인 새달력을 가지고 오면 집안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었다. 촌생활의 달력은 메모장이나 가계부의 역할을 독톡히 했다. 볍씨 담그기, 장 담그기, 병원에 당뇨 약타기, 고구마 20, 시금치 10, 위판장 물메기 20, 낙지 10처럼 단위를 잃은 촌로들의 하루치 생산물과 판매량이 기재되어 있다. 장날에는 읍소재지나 면소재지 조합으로 가서 통장정리를 하고, 메모해 놓은 노동의 댓가가 정당히 지불되었는지 확인도 한다. 달력은 날짜를 알려주는 역할과 더불어 아직도 경제활동을 하는 촌로들에게 마음을 청춘으로 돌려놓는 마법을 쓰기도 한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365일이 한 장마다 적힌 습자지처럼 얇은 달력이 유행했다. 동네 회관에서 집집마다 나누어주는 일력은 첫장이 빨강색으로 인쇄되어 1월1일은 신정이라 해마다 일단 하루 쉬고 출발하는 것이 좋았다. 그때는 어려서 학교 가기 싫었고, 지금은 자라서도 회사 가기 싫은 건 매한가지다. 달력 하나에도 대접받는 느낌이 들던 때가 있었다. 여러 종류의 달력을 가지고 오면 활자가 크게 인쇄된 것들은 식구들이 보기 좋은 장소에 걸고, 나머지는 장롱 위에 잘 두었다가 명절이나 제사때 기름 음식을 받치는 용도로 사용했다. 종이호일이나 키친타올 등 주방용품이 잘나오는 요즘시대엔 기겁을 할 일이지만··· 밀레니엄 시대가 지나고 경제·산업 활동이 거대해지고 다양해지면서 회사에서 만들어 내는 판촉물도 다양해졌다. 소비자의 구매욕구를 불러 일으키는 굿즈들 사이에서 기억이 오래 남는 것은 달력이 아닌가 한다. 개인마다 들고 다니는 휴대폰에도 스케줄을 입력할 수 있는 시스템에 있고, 개인컴퓨터에도 스케줄 프로그램은 각양각색으로 다양하다. 디지털 홍수 속에서 나는 아직도 탁상달력에 적어놓는 것을 좋아하는 아날로그 취향이다. 새해의 선물로도 달력을 예찬하는 이유다.


 사진작가들이 한정판으로 제작하는 아주 환상적인 포토달력들, 지방자치단체들마다 경쟁하듯이 만들어내는 관광달력들, 회사들마다 눈에 띄게 만드는 탁상달력들. 남해의 지역성을 담뿍 담은 유명한 사진작가의 달력을 손에 들고 감사한 마음에 따뜻한 겨울을 보낼 것 같다. 무작정 떠난 여행지의 낯선 식당에서 보물섬의 진풍경을 담은 달력을 만난다면 유년시절의 즐거운 기억을 되살리는 선물이 될 것 같다. 어찌되었건 2022년 새해는 남해군 방문의 해로부터 시작됨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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