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리한 시간, 지구는 누가 지켜주나요?
상태바
편리한 시간, 지구는 누가 지켜주나요?
  • 남해타임즈
  • 승인 2021.12.31 10:44
  • 호수 77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연경의 남해일기

 팅팅통통, 쫘악~, 부스럭거리며 남편과 아이들이 현관문 앞에서 난리법석이다. 재활용품을 버리러 가는 날은 꼭 소문을 내야 하는 것처럼 조용한 법이 없다. 


 "엄마, 이거는 재활용 되는 거예요?"
 "아니, 장난감 플라스틱은 이미 가공을 한 거라서 재활용 안된다."
 "엄마, 이 유리는 재활용 되는 거예요?"
 "아니, 우리 남해는 유리는 재활용 안되니깐, 신문지에 꽁꽁 싸서 종량제봉투에 넣어라."
 "엄마, 이거는 재활용 되는거죠."
 "하모, 그거는 된다. 뱅 껍데기 벳기내고 페트병에 넣어라."
 "엄마, 이 상자는 어떻게 해요?"
 "맨날 험시로 또 묻나. 테이프 떼내고, 종이끼리 갱기서 끈으로 뭉까라."
 페트병의 상표를 씌운 비닐을 벗겨내고 밟아 담고, 빈박스에 붙은 테이프를 떼어내 종이박스를 크기별로 접어 묶는다. 이런 음료는 누가 사왔는지, 택배물품은 우리집에서 누가 제일 많이 주문하는지, 재활용품 분리 배출 작업에 빠진 엄마인 나의 뒷담화를 하며 송가네는 오늘도 무늬만 환경파수꾼 노릇이다.
 
 어릴 때는 종량제봉투도 없었고, 재활용에 대한 인식도 없던 때라서 집에서 나오는 고물은 리어카를 끄는 고물상 아저씨랑 엿으로 바꾸고, 집집마다 대청소에서 나오는 쓰레기는 가까운 갱번가에 가서 버렸다. 비료포대나 빈박스에 가정용 쓰레기를 담아서 내가면 헌신발이나 헌옷, 이불까지도 한켠에 쌓여있고, 상표가 지워진 빈병과 페트병이 수면위로 둥둥 떠다녔다. 그렇게 쌓여진 쓰레기들이 바다를 따라, 물고기를 통해, 우리 식탁에서, 내 몸속으로 다시 들어올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할 때였다. 그저 내 집이 깨끗하면 되었고, 논밭의 작물들은 잘 자랐고, 환경적으로 뒤틀린 물고기를 보지 못했으니까......
 
 살림을 하면서 가장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물티슈와 일회용비닐장갑이었다. 물을 흘렸거나 아이들이 물감을 떨어뜨려도 손쉽게 잡히는 물티슈를 척척 뽑아 닦아내고 휴지통에 버리면 딱 좋았다. 갖은 양념을 골고루 넣고 나물을 무칠때나 배추김치를 고르게 썰어 담을 때도 일회용비닐장갑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편리함이 주는 시간은 사탕처럼 달콤해 서랍에 넣어두고, 곶감보다 더 자주 비닐장갑을 빼냈다. 
 
 이천일십구년, 생활폐기물처리장에서 근무했던 적이 있다. 남해에 사는 사람들과 남해를 찾는 관광객들이 만들어 낸 생활쓰레기와 재활용품들이 모이면 처리를 했다. 이미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한 종량제봉투 배출은 아직도 홍보가 필요했고, 재활용품도 지역과 품목에 따라 배출날짜가 달라 수거하는 사람이나 안내하는 사람이나 애를 먹었다. 매립장은 사용기한이 임박해져 쌓아놓은 쓰레기가 표면위로 솟아있었다. 봄이 되기 전까지 해가 일찍 지고, 어둠도 더 빨리 찾아왔다. 퇴근시간이면 사위는 깜깜하고 작은 불빛 하나도 없어 무서움에 치를 떨었다. 지금도 그곳에서 열심히 근무하고 있는 동료들에겐 미안하지만, 열정을 이겨먹는 어둠이었다. 
 
 어느 날, 창문 너머로 내 선친이 누워계신 산소가 보였다. 무언의 응원을 들으며 다시 공부하고, 또 버티는 시간이었다. 주말에 아이들을 데리고 근무지로 갔다. 쓰레기더미에서 풍부한 영양소를 먹고는 무거워 날지 못하는 까마귀와 건포도 알맹이처럼 큰 똥파리들을 아이들에게 구경시켜 주었다. 나는 엄마의 힘든 생활을 보여주고, 퇴근 후의 자유시간 보장과 한 번에 엄마말을 잘 듣게 하려는 속셈이 있었다.
 그때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이 줄지어 서 있는 초록색의 폐기물수거차를 세더니, 매립장 곳곳을 쏘다니며 질문하기 시작했다.
 "엄마, 이건 뭐야?"
 "그거는 계근대라고, 쓰레기들이 들어오면 무게를 재는 저울이야. 저기 숫자 보이지. 그게 민찬이 몸무게야."
 "여기는 뭐하는 곳이야?"
 "재활용품선별장. 여기서는 유리병, 페트병, 플라스틱, 스티로폼, 종이류 같은걸 구분해서 보관해놓지."
 "우리집에서도 페트병이랑 종이같은거 나오잖아. 그게 여기로 다 와?"
 "하모. 너 자고 있을 때 아저씨들이 전부 수거해 오잖아."
 "그거 구분하면 어떻게 해. 완전 넘칠 거 같은데."
 "아. 장소가 좁으니깐 많이 보관해 놓지도 못해. 구분한 재활용품은 다른 업체에다가 돈을 받고 파는거지. 그 받은 돈으로 쓰레기차도 살수 있고,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 월급도 줄수 있고 그렇게 쓰이는거지."
 "와, 엄마는 진짜 중요한 일을 하는거네. 엄마 회사가 아주 멋진 곳이야."
 
 내 자존감이 바닥에 내려갔을 때 그걸 다시 올려준 이는 바로 어린 아들이었다. 바다거북의 목에 걸린 그물, 몸이 이상하게 생긴 물고기도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 때문에 물이 오염되어서 그렇다는데, 엄마는 환경을 지키는 아주 중요한 일을 한다고 아들이 추켜세우는 바람에 나는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 일회용품을 줄여 환경을 생각하는 취지로 `플라스틱 프리 챌린지`를 시작하고, 텀블러 사용 캠페인도 했건만, 과거이야기가 되었다. 편리 지상주의가 만들어낸 일회용품, 지구가 아파요. 올해가 가기 전에 환경파수꾼이 되리란 다짐을 한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 친근한 지구의 친구가 되기를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