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향, 나의 삶 120
군밤이 몰고 오는 옛 추억 그날들이
토실한 알밤 되어 화롯가에 앉았으니
친구와 오가는 얘기 끝 간 데를 몰라라.
오늘도 친구가 찾아왔다. 방에 들어가서 밤을 구워먹으면서 정다운 이야기를 나눈다. 마당가에 오래된 밤나무가 있어 가을 날 지붕에 떨어진 알밤이 데크나 마당에 굴러다니고 발에 밟히니 그냥 주워 모아 냉장고 냉동실에 넣었다가 구워먹는 것이다.
어릴 적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 모닥불에 밤 구워먹던 일이 떠오른다. 간식거리가 별로 없던 시절에 구운밤의 맛은 정말 고소했다. 초등학교 가을 운동회 점심시간에 할머니께서 삶아 오신 밤을 구경 온 가족들과 맛있게 먹던 일도 생각난다.
오래전 주말이면 서울에서 오는 어린 손자, 손녀 녀석들을 데리고 포천 온천에 다닐 때 어하 터널 넘어 큰 사거리에 와서 신호를 기다리면 의례히 차창 밖으로 군밤 장수가 다가와서 맛보기 군밤 한 알을 건넨다. 몇 봉지 사서 녀석들에게 주면 그렇게도 맛있게 잘 먹는다. 하루는 손자 녀석이 말했다. 목욕은 별론데 군밤이 먹고 싶어 할아버지 할머니를 따라 온다고 해서 한바탕 웃었던 일도 있었다. 이제는 이 녀석들이 자기 부모를 따라 외국에 나가서 그 곳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고등학교에 들어갔는데 지금도 어하 터널 사거리의 군밤이야기를 가끔씩 꺼낸다.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와 삼촌을 뵈러오려고 했는데 코로나 사태로 미뤄졌지만 위드 코로나 단계에 들면 내년 연말 방학에는 모든 식구가 다 올 계획이라고 했다. 어릴 때부터 잘 먹던 군밤을 내년에 한국에 오면 실컷 먹고 가게 해야겠다. 오랜 만에 찾아온 친구와 난로 가에 앉아서 밤도 굽고 칼국수도 해먹으면서 군밤에 얽힌 여러 이야기를 해보는 산촌의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