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km 몽돌밭과 용이 물 마신 작장, 바다노을길 두번째
상태바
3km 몽돌밭과 용이 물 마신 작장, 바다노을길 두번째
  • 남해타임즈
  • 승인 2022.01.14 10:00
  • 호수 77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부경의 남해바래길 이야기 25 │ 13코스 바다노을길 2
서면 예계마을 명품 노을.
새마을운동을 제일 먼저 시작한 염해마을.
작장마을 갈룡고지 표지석.
작장마을 갈룡고지 표지석.

 서상에서 앱을 켜고 마을 중심을 통과하여 편의점을 경유하여 옛길인 농로를 따라 예계마을까지 이동한다. 다시 예계마을 바닷가로 내려가서 걸어가는데 회룡마을 종점까지 바닷가로 이어진다. 예계는 조선초기 현풍곽씨 성을 가진 일가가 터를 잡아 마을을 이루었고 원래 이름은 예기방이었다.  


 예계, 상남마을 전망 좋은 바닷가 바람의 언덕에는 요즘 유행하는 풀장이 있는 빌라 펜션이 수십채가 즐비하다. 풀장이 없던 10여 년 전 펜션은 유행하는 풀장 설비를 신설한다고 아우성들이다. 


 예계마을 일부와 상남, 작장, 남상마을까지 3km 정도는 바위와 몽돌로 이루어진 몽돌밭길을 걸어가야 한다. 스틱을 잘 사용하고 배낭을 멘 자세를 낮추면서 속도를 줄여야 하는데 특히 바위 위를 걸을 때는 바닷물로 인하여 미끄럽고 노면이 아주 고르지 못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저녁노을이 장관인 황홀경에 매료되어 한눈을 팔다가는 큰 고난을 당할 우려가 있으니 조심하라는 노란 경고판이 여러개 설치된 난이도가 높은 구간이다. 


 그리하여 조심에 조심을 하면서 해물 라면으로 이름난 고분개, 고분강으로 부르는  남상 바닷가마을 남상 구판장까지 왔다. 작장마을은 목마른 용이 돌아와 물을 마시고 승천하였다는 전설에 따라 갈룡고지라 하였고 상남은 작은 갈룡고지라 했는데 1938년 마을이 분동되면서 작장, 상남으로 부르게 되었다. 남상, 중리, 염해를 염전포라 하였고 남상, 중리를 운흥동이라 하다가 1914년 행정개편에 따라 분동되면서 현재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요즘 남해~여수 해저터널이 예타가 통과되었다고 주목을 받고 있는 그 길을 지금 걷고 있다. 거제 가거터널, 충남 보령터널을 이어서 국내 세 번째 10년 이내에 완공된 모습을 연상하지만 명칭과 시설물이 해상, 해저 중 경제적·예술적·관광적 가치에 남해가 어디에 부합되는지 군민들의 공청과 충분한 설계 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고 그럴 쯤 장밋빛 기대와 설레임으로 어께가 어쓱함을 느끼며 가벼운 발걸음이 육중한 뱃고동을 따라간다. 


 보령해저터널은 충청남도 보령시 대천항과 원산도를 잇는 6927m의 해저 터널이며 국도 제77호선의 일부이다. 보령해저터널과 원산안면대교의 개통으로 보령시 대천해수욕장과 태안군 안면도의 영목항의 거리가 95km에서 14km로, 소요시간은 90분에서 10분으로 단축되었다. 보령터널이 개통되면 안면도에 사는 주민들이 태안군, 서산시, 홍성군을 통해 돌아가야 할 불편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보령시민들이 안면도로 올 때도 위와 유사한 불편과 애로사항 등을 대폭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면서 국내 최장 세계5번째로 2021년12월1일 개통되었다.  여기 우리 남해가 벤치마킹하게 될 시금석이 될 것이다.


 바닷가를 지나가면서도 훤히 보이는 남상,중리 마을의 아름드리 소나무가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바로 삼송(三松)이다. 남상, 중리, 노구에 한 그루씩 가직대사가 마을 어귀가 비어 있어 한 250여년전에 심었다고 하는데 가직대사는 전주 이씨로 1747년(영조23)에 남상출신으로 호는 송학당, 법명은 가직이라는 남상리 주민들의 설명이다. 서면하면 남해의 진산인 망운산(786m)이 자리하고 있다. KBS중계소가 있고 조선시대 초기엔 봉수대도 있었다. 『세종장헌대왕실록 지리지』 진주목 곤남군 조에 `망운산은 남해도 남쪽에 있다. 북쪽으로 진주 금양부곡 양둔에 응한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망운산에서 우측으로 500m 가서 오른쪽 능선 도로상으로 150m 내려가면 운암골 언덕에 있는 미공군전공기념비가 있는데 제2차 세계 대전 때 일본군과 싸우던 미공군의 B-24 폭격기가 추락한 곳이다. 1945년 8월 7일 이 사고로 기장 공군대위 에드워드B, 밀즈 2세를 비롯하여 11명의 미군이 모두 전사했다. 

남상마을 가직대사 삼송.
남상마을 가직대사 삼송.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