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기억속의 남해 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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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기억속의 남해 백화점
  • 남해타임즈
  • 승인 2022.01.14 10:00
  • 호수 77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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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의 남해일기

 주말을 손꼽아 기다리는 건 아이들이나 어른들에게 공통된 관심사라 대화의 물꼬를 트는 데 안성맞춤이다. 황금보다 소금보다 더 소중하다는 `불금`이 되면 일찍 잠드는 것도, 재빠르게 과제를 해야 하는 것도 느슨해진다. 회사일을 실컷 하고도 무보수명예직인 엄마로서 가정으로 출근하는 발걸음도 가볍다. 금요일의 마법이다. 


 "엄마, 주말에 뭐 할 거야?"
 "코로나가 난리굿판인데 이번 주는 집콕하자."
 "아~~ 안돼. 어디라도 좀 가면 안돼?"
 "어디, 여행 좀 보내주까? 방콕이나 방글라데시."
 "엄마, 언제 적 개그를 하는 거야. 엄마는 아저씨도 아니면서 아재개그 하네."
 "엄마 어릴 때는 전부 방콕하고, 방글라데시 여행 한 번씩 다녀왔다 아이가. 방에서 콕 처박혀 있든지, 방을 굴러다니든지."
 "엄마, 나 그런 개그하는거 유튜브로 봤어. 엄마 꼰대야."


 졸지에 옛날사람이 되어 버린 나는 다른 꾀를 낸다. 엄마들이 갱번일 하러 가던 옛길을 찾고, 산길과 해안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길인 `남해바래길` 걷기를 제안한다. 아이들은 추워서 걷기는 싫고, 축구를 하러 가잖다. 겨울이라 당분간 축구클럽을 중단하고 있으니 몸이 쑤시기는 할 터, 엄마의 무릎건강은 생각도 안한다.
 
 한해가 저물고, 새로운 한해가 시작되면 송년회 모임을 했다. 한국의 우스운 이야기 중 셋만 모여도 모임을 만들며, 1분 안에 서열이 정해진다는··· 우리 남매들이 어린 시절엔 아빠와 엄마도 연말이면 읍내 모임에 나갔다. 시끌벅적한 식당 안에서 커다란 닭백숙을 뜯거나 숯불갈비집에서 불내를 피워 올렸다. 두 분이 모임을 가는 긴 겨울밤에는 돌아오는 길에 부모님 손에도 우리 간식도 들려 있어 `연말 연기대상`을 보며 훈수를 놓거나, `유머1번지`를 보면서 심형래의 바보숭을 따라하면서 철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길 기다렸다. 찬바람을 몰고 대문이 열리면 우리는 추위도 아랑곳없이 내복바람으로 뛰쳐나가 간식을 맞이했다. 어느해엔 검정 비닐봉다리가 아닌 처음 보는 네모박스였다. 본젤라또. 피자였다. 게눈 감추듯 먹어치우는 남동생들과 달리 나는 질질 늘어나는 치즈가 체질에 안 맞았다. 
 "엄마, 붕어빵이나 사오지."
 "내려오다가 처음 보는 가게에 불빛이 있응께 아빠가 들어가보자꼬 안허나. 붕어빵보다 몇 배는 비싸더라. 돈생각해서 고마 묵어여."
 "내는 영~ 입에 안 맞는데. 김치 부침개가 낫제."
 "연갱아, 니는 입이 그리 촌시러버서 우쩌끼고. 니는 절대로 서울로는 시집을 못가긋다. 으이그~ 촌년."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놀리며 피자를 잘 먹던 언니도, 느끼함에 욕보리 나서 피자를 못 먹던 나도 남해에 살기는 매한가지다. 세월따라 나도 김치없이 피자를 잘 먹는 사람이 되었다. 
 
 아이스크림과 피자를 팔던 본젤라또 옆에는 지금 시장 아랫길 축협판매장 자리에 `스파쇼핑`이라는 큰 백화점이 있었다. 남해에서 최초로 생겼던 백화점이 아닌가 싶다. 1층에는 생필품을 팔았고, 2층에는 여성의류를 판매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친구들과 나는 살 것도 없으면서 스파쇼핑에 가서 가만히 서 있어도 움직이는 계단을 타러 갔다. 올라갈 때는 `에스컬레이터`에 발만 대면 윙~윙~ 가만히 서 있어도 2층으로 이동시켜 주었다. 내릴 때는 2층의 평지에 맞춰 발을 잘 디뎌야 하나 타이밍을 못 맞춰 휘청거리는 친구의 모습에 우리는 허리를 꺾으며 웃곤 했다. 
 
 세월이 지나 대도시로 나갔을 때 내가 알던 남해의 백화점은 도시의 점빵에 불과하다는 걸 알았지만, 그때는 남해에서 최고의 신문물을 쏟아내던 보물상자였다. 그때는 서 있기만 해도 움직이는 계단에 환호했지만, 지금은 산과 해안이 연결된 남해바래길을 일부러 걷고 있다. 그때는 기름진 고기를 먹으며 육신을 채우는 것에 열을 올렸지만, 지금은 일부러 채소와 자연을 찾아다니며 웰빙과 힐링에 혼을 쏟고 있다. 해면위로 반짝이는 윤슬과 겨울에도 청청한 나뭇잎 끝에서 반짝이는 햇볕, 이번주는 겨울바람 맞으러 나가볼까? 마스크부터 단디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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