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을 읽는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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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을 읽는 기술
  • 남해타임즈
  • 승인 2022.01.24 11:46
  • 호수 77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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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의 남해일기

 은행의 업무시간 이후에나 공휴일에도 출금을 위해서 ATM 기계를 종종 이용하곤 한다. 휴일날에 남해읍시장 오일장이 열리면 현금을 찾아 아침부터 저자거리 구경을 간다. 그날도 농협은행의 커다란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자 거친 세월에 닳은 체구를 한 촌로가 당황함을 애써 숨기며 서 계신다. 우리엄마가 `머물머물`이라고 말하는 머뭇거림이 또렷이 보인다.

 난 또 오지랖이 발동하여 참지 못하고,
 "어르신, 뭐 하시낍니까?"
 "아이구, 요거 한번 봐주게. 우리 아들이 조합에 안가도 돈을 찾을 수 있닷꼬 내한테 이걸 하나 주고 갔는데, 망구 우찌 생각이 나야제."

 할머니는 자손대대로 물려받은 가보라도 되는 듯이 현금카드를 보여주신다.
 "아, 그래예. 제가 갤차 드리는대로 한번 해보시다."
 "아이구, 고맙고로. 아이고 고맙네. 참말로 고마바서 우쩌고."
 "아이고, 아임니다. 밸 어려븐 것도 아이라예."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칭찬을 바가지보다 더 큰 다라이채 주시니 할머니의 속을 시원하게 해 드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겼다.
 "카드는 이 구멍에 넣고, 출금 여기를 누르시다."
 카드의 비밀번호를 누르라는 메시지가 화면에 뜨자, 할머니는 느린 손을 더 굼뜨게 움직이며 나를 한번 빤히 쳐다보신다.
 "여기에 비밀번호를 네자리 누르시몬 됩니다."
 내 설명에는 답도 하지 않고 나를 또 보신다. 아, 할머니의 속마음을 알아 차리고 한번 더 말씀을 드렸다.
 "비밀번호는예, 어르신만 쓸 수 있는 기라서 눌리고 나몬 저는 기억도 못해예. 이거 안 눌리몬 돈도 못 찾심미다."

 할머니는 내레이션 하듯 비밀번호를 하나하나 말하면서 더듬더듬 숫자버튼을 누르고, 찾을 액수를 누르고, 기계속에서 차라라락 돈을 세는 소리가 들리더니 뚜껑이 열리며 돈을 내놓자 얼굴에 홍조가 피어 올랐다. 메고 계시던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 돈을 챙겨넣고, 현금카드를 꽂고 가방 자꾸까지 단단히 채운후에 또 감사인사를 주신다.
 "아이구 고맙네. 잘 갤차줘서 고맙네이."
 "괘안심미다. 우리엄마가 어르신들 보면 고마 가지말고 꼭 물어보라꼬 가르치가꼬예."
 "그 엄마가 눈지 참말로 고맙네."
 나는 현장에도 없는 엄마의 칭찬까지 듣고 나서야 할머니와 헤어졌다. 
 
 엄마는 주기적으로 다리건너 병원에 가신다. 검사를 위해 아침은 공복으로 차를 타고가서 의사면담과 진료가 끝나고, 약국에서 한보따리 약을 받으면 긴장이 풀리고, 점심때가 되어 배가 고파진단다.

 "내가 오늘 별일을 다 겪었네."
 "와, 오데 바바리맨이라도 있던가?"
 "그런기모 좋고로. 식당이 개업을 했는가, 수리를 했는가, 좀 좋아뵈이서 들어갔더니 사람이 많더라꼬."
 "쪼매 기다릿다 맛있는거 먹고 오지."
 "야~야~, 맛있는기 뭐이고, 내가 주문도 못해서 몬묵었다."
 "왜, 주문 받으러 안오던가?"
 "사람이 오는기 아이고, 이런 네모란 기계 같은데다가 주문을 해여. 내가 그날사 말고 카드도 안갖고 갔제. 나이들어서 인자 밥도 못 묵긋더라."
 "아, 키오스크로 주문을 받던가베. 옆에 젊은 사람한테 한번 물어보제."
 "그리 키 머시기, 물어볼 틈도 없어. 은찬이 만한 애들이 와서 저그들끼리 주문허고 자리에 앉아삐는데 온제 물어보고 자시고. 장 가던데 가서 묵고 왔제."
 "엄마, 저번에 내랑 까페에 가서 하는거 봤다 아잉가. 한번 해보낀데."
 남해에도 키오스크 주문 하는 곳이 하나 둘 늘고 있다. 비대면 주문 방식은 줄을 길게 서지 않아도 되고, 메뉴를 잘못 알아들은 사장과 손님간의 마찰도 적게 해줄 것이다. 하지만, 기계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들께는 한번 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2022년 남해군 방문의 해, 사람의 마음을 읽는 기술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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