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끈과 더러운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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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끈과 더러운 발
  • 남해타임즈
  • 승인 2022.01.24 11:48
  • 호수 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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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향, 나의 삶 122 / 碧松 감충효 _ 시인, 칼럼니스트
碧松 감 충 효 시인 / 칼럼니스트
碧松 감 충 효
시인 / 칼럼니스트

시린 손 갓끈 잡고 눈보라 광야 지나
물 흐린 창랑에서 창천을 바라본다   
저 물엔 발만 담그고 갓끈 조여 잡는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을 것이며,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초사(楚辭)에 있는 말이며 맹자의 이루상편(離婁上篇)에 이 말을 인용하는 글이 나오는데 어릴 때부터 많이 들어온 말이다. 참 멋진 말이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그 날카롭기가 비수 같아 쉽게 입에 물리기가 힘든 말이다.


 눈앞에 흐르는 물이 탁한 줄을 알면서도 갓끈을 담그려고 줄지어 서는가 하면, 맑은 물인데도 더러운 발을 감히 들여놓는 오늘의 세태다. 갓끈도 갓끈 나름이다. 이미 썩고 문드러진 갓끈이니 탁한 물, 맑은 물을 가릴 필요가 없어진 것일까? 아니면 맑은 물의 존재가치를 더러운 발로 분탕질해서 흙탕물로 만들어버리겠다는 고약한 심보인가? 아무리 세상이 험악해져도 선악의 구별은 되어야 한다. 맑은 물, 탁한 물의 구별이 없어지고 귀한 갓끈, 때 묻은 발이 구별되지 못한다면 이거야 말로 금수의 세상과 뭐가 다를 것이며 막가는 인간세상의 징조가 아닌가? 작금에 어느 곳을 들여다봐도 막말, 욕설, 거짓말, 사기, 음해, 조작, 선동 등이 난무하는 걸 보며 세상의 끝자락 시궁창에 던져진 인간성 말살의 허망함을 느낀다. 


 세상사 모든 것이 선한 것으로만 귀결되어지는 건 아니다. 한때 난세에 음흉한 악의 기운이 강해 그 악이 특정한 지역이나 시대를 지배한 경우는 작거나 커거나 이 지구상에 여러 번 있어왔다. 그러나 이 악이 지배하는 세상은 얼마 가지 못하고 인간성 회복의 복원력에 의하여 곧 뒤집혀지고 말았다. 소중히 간직해 왔던 각자의 갓끈을 어찌 탁류에 맡기랴! 이 더러운 시류에 내 양심을 팔고 내 소중한 삶의 푯대를 꺾을 수야 없지 않은가? 


 내 쌓아온 내공의 힘으로 어려움을 참고 견디면 언젠가는 맑은 물이 흘러올 것이다. 진흙 묻은 발은 그래도 내 갓끈을 지켜낸 고마운 발일 수도 있다. 탁류가 흐를 때 진흙 발을 씻음은 맑은 물을 영접하기 위한 현명한 처사다. 자의로 발을 더럽혔거나 남에게 떼밀려 더러워졌거나 피치 못할 위기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도 누항에 던져져 한 세월 살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오염되기 쉽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양심을 팔아넘기는 경우는 허다하다. 그러나 이들 모두 인간 원초적 삶의 표상을 던져버린 것은 아니다. 그 누가 사람답게 살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더럽혀진 발을 씻는 것처럼 내 육신 어느 한 곳을 삭히거나 잘라내는 한이 있더라도 정신 줄인 갓끈은 결코 더럽히거나 놓치지 않으려는 그 정신은 바로 우리의 맑은 영혼이 그래도 내 삶의 정수리에서 항상 맑은 물을 쏟아 부을 때 가능하다. 오늘 창랑의 물이 너무 흐리면 더럽혀진 발을 씻자, 그리고 우리 스스로 창랑의 물을 맑게 하는 날 비로소 우리의 갓끈을 씻을 것이니 그 때까지 맑은 바람 부는 버드나무 아래 각자의 갓끈을 소중히 걸어두자. 이미 흙탕물에 갓끈을 담가버렸다면 어쩔 것인가?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환골탈태(換骨奪胎)나 개과천선(改過遷善)이라는 말이 있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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