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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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해
  • 남해타임즈
  • 승인 2022.03.01 16:19
  • 호수 78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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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의 남해일기

노곤한 퇴근길은 무보수 당연명예직으로 시작하는 집으로의 출근길이기도 하다. 현관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덜컥 문을 열면 하루종일 무료했던 아이들이 재빠르게 방에서 나온다. 신발도 못 벗은 채 현관앞에 선 나에게 둘째인 아들의 한여름 폭포수 같은 질문이 시작된다.
"엄마, 오늘의 퀴즈 시작.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먹고 사는 일."
"땡! 엄마, 너무 급하게 말하지 말고, 좀 진지하게 생각을 해보세요."
"음. 우주로 탈출하는 일."
"땡! 엄마도 하고 있는 일이에요.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육아."
"하하하. 송민찬 학생, 육아가 가장 힘든 일인 걸 알고 있는데도 그렇게 엄마말을 안들었다는 거야?"
"엄마, 퀴즈와 현실은 다른거야. 두 번째 퀴즈. 세상에서 가장 극한 직업은?"
"극한? 너, 극한 이라는 말이 뭔지 아나?"
"알아요, 알아. 힘든 거예요. 엄마는 질문하지 말고 퀴즈부터 맞혀보세요."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육아`라면 가장 힘든 직업은 `부모` 아이가?"
"엄마, 그것도 맞는데, 정답은 아니야. 근데, 엄마가 거의 맞혔어."
"정답! 정답은 `엄마`."
"오~~, 딩동댕. 집으로 입장하세요."
아이는 정답을 맞혀야 집 안으로 입장을 시켜줄 거란 계획이 처음부터 있었는지 그제서야 발걸음을 거실 쪽으로 떼놓는다.

아이는 유튜브에선지, 텔레비전 예능프로그램에선지 출처도 알 수 없는 퀴즈를 내고, 적극 공감한 엄마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낸다. 아이들의 겨울방학은 봄방학까지도 잠식하고 있어 지루하리만치 길어지고, 잠잠했던 코로나 확진자도 연일 치솟고 있다. 겨울방학, 학원 휴원에 따라 아이들을 거의 가둬두고 출근한다. 아이들의 하루는 어른들의 1년에 비할만큼 긴 시간일 것이다.
오래 전, 차디 찬 갱물에 손 담그고, 너울이 넘실대는 물결 위에서 생활터전을 일구던 어부를 알게 되었다. 나는 잠깐의 이동으로 타야 하는 도선에서도 뱃멀미가 올라오고, 뭍에 내려서도 뒷멀미까지 하며 바다에 적응 중이던 그때.
"멀미가 나여? 배타는 이것도 여러 번 해보모 이골이 나서 갠찮아져. 쏘주 한잔 묵으모 시끄러븐 속이 조용해져. 아나, 한잔 받아봐"
소주 한잔에 초장을 듬뿍 찍은 단단한 해삼 한조각을 입 안으로 넘기고 나자 거짓말처럼 멀미가 사라졌다. 육지에서 독한 술이 바다 위에서는 명약이 따로 없었다.
"갱번가 사니깐 고기를 잡아야 자식새끼들 믹이고 가르치지. 배운 도둑질은 이거빼끼 없고, 애들 봐줄 사람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애들을 배에 태워와서 마누라랑 그물을 놓고, 그물 걷어서 선창으로 가몬 애들이 올매나 멀미를 했는지 쌍이 노래. 그때는 참말로 눈물나더랏꼬."
듣고 있던 나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내 이야기같고, 예나 지금이나 자식에 대한 애정의 깊이는 같으니깐.
일하는 부모를 둔 아이들은 학교급식이 없는 방학때면 무엇보다 점심끼니가 제일 걱정이다.
"아~들, 밥은?" 엄마는 딸인 나보다 손주들의 점심이 매번 걱정이다.
"아침에 볶음밥 만들어 놓고 오면 점심때 저그들이 데워서 먹고 학원가지."
"그 애린 것들이 저그 알아 묵고 참 대단타."
"집앞에 편의점에 삼각김밥도 있고, 샌드위치도 팔고, 컵라면도 끓여먹고 애들 굶기지는 않으니깐 너무 걱정 안해도 되여."
"그런거는 간식이제, 아들은 밥을 묵어야 된다. 그런거 자꾸 믹이지 말고, 시장봐서 밥해주고 그래여. 그것들이 나이 얼마나 됐다고 저그가 챙기묵고로 허고 그러네. 엄마라 쿠는기 참 착다."
"엄마, 나도 내딸보다 어릴 때 밥 챙겨 먹었고, 엄마 막내아들은 그보다 더 어릴 때 떡국 끓여서 먹고 그랬던 거 알제?"
"그때하고 지금 하고 같나. 요새 그런 아~들이 오데 있네."

어릴 때 집에 점빵하던 친구는 새우깡 한봉다리 혼자 못 먹었다고, 우유대리점 했다던 직원은 유통기한 지난 우유만 마셨다고, 과일가게 했다던 분은 항상 상한 쪽을 도려낸 과일을 먹었다고 추억했다. 식당일 다니던 분은 퇴근하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 정작 자신의 아이들은 배달음식으로 배고픔을 달랬다고 고백했다. 그랬다고 부모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라는 위로를 서로 주고 받으며..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나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인 내로남불은 엄마와 딸 사이에서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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