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자유를 사랑하라
상태바
아이의 자유를 사랑하라
  • 남해타임즈
  • 승인 2022.03.08 17:16
  • 호수 78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연경의 남해일기

빛나는 졸업장을 받는 시즌이 지나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성인의 대열에 합류하는 것으로, 중학교를 졸업하면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쳐 좀 더 철든 행동을 할 것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없으면서 `강한 바람과 성난 파도`같은 시간에 돌입한다. 졸업은 입학이고, 또 다른 시작이다. 성적과는 무관하게 이수해야 할 교과과정을 모두 끝내고, 개근상과는 상관없이 교육부에서 정한 출석일수를 모두 충족했다는 뜻이다.

1990년대, 졸업시즌에는 꽃다발을 판매하는 상인들과 졸업을 축하하러 오는 가족과 친구들로 교문마다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남해초등학교 77회 졸업식 날, 강당에 모여 내빈인사, 졸업식 송사, 답사, 졸업식 노래, 교장선생님 인사말씀, 상장과 졸업장 수여식을 했다. 어릴 때 약골이라 친구들 거의 다 받은 개근상의 주인공이 되지 못한 아쉬움을, 턱걸이로 받은 학력우수상이 대신해 주었다. 강당에서의 졸업식이 끝나면 각자가 공부했던 교실로 되돌아가 담임선생님과 친구들과 한번 더 짧은 이별의 시간을 가졌다. 선생님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면 선생님께서는 덕담을 해주시고, 중학교에 입학하는 소감, 친구들과 헤어지는 아쉬움을 나누고 있을 때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중학생이 된다는 기쁨으로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았는데, 누가 우나 싶어 고개를 두리번 거리며 울음소리를 찾고 있는데, 창밖의 복도에 서 계시던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엄마는 나에게 주먹총을 놓으면서 손가락으로 눈물을 흘리라는 제스처를 하셨다. 엄마의 그 모습이 어찌나 웃긴지 나는 책상에 엎드려 이마를 팔에 베고 소리 안 나게 웃었다. 어깨까지 들썩이니 옆에 있던 짝꿍이 놀라 내 등을 토닥거리며 위로해 주었다.

우리나라의 의무중에 하나인 교육의 의무도 무상교육이 확대되면서 초등학교 졸업하면 자동으로 중학교 입학을 하고, 다음에는 또 고등학교에 입학을 한다. 배움의 연속이다. "옛날에는 오데 그랬나, 겨우 한글만 깨치몬 다 돈벌이 나갔제." 칠순이 지난 엄마의 학업을 더 잇지 못한 아쉬움은 남해에서 오래 살면서 볼펜과 수첩을 좋아하는 것으로 달래고 있다. 기록에 크게 의미가 있어 보이지 않는 냉동고에 보관하고 있는 물품에는 항상 메모가 붙어 있다. 비닐팩 속에 딱 보면 서대나 고등어인데, `서대` 또는 `고등어`라고 붙여 놓는다. 김치냉장고에도 딱 보면 갓김치인데, 2021년 10월 갓김치라고 붙여 놓고, 배추김치도 2021년 겨울김장 이라고 붙여 놓는다.
나는 하도 우스워서 "엄마, 갓김친지 몰라서 이리 써놨능가."
"내가 배움에 포부가 져서 안 그러나. 너그매가 오데 연애편지 쓸데가 있나, 그러고로 글자도 안 까묵고 허는기제."
일상속에서 기록하는 엄마의 부조책과 달력의 한귀퉁이, 약봉투, 판촉물로 받은 수첩이 엄마 나름대로의 평생교육이다.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는 무궁무진하지만,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알려주고 있었다. 어른들은 어른답게 경제활동을 하고, 아이들은 아이답게 신나게 놀고, 학생은 학생답게 공부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는데,
"엄마도 학생이었을 때는 친구들과 노는 것이 좋아 공부를 하기 싫었지. 그렇지만, 너희들은 바깥활동을 하기보다 매일 게임을 하고 유튜브를 보고 있잖아."
"엄마, 아예 없어서 못하는 것과 있는데 안 하는 건 다른 거잖아요. 공부가 인생에 전부가 아니라고 엄마가 말했잖아요."
"그렇지,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 그렇지만 너희들이 미래에 하고 싶은 걸 하고, 너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일단 학생이니깐 공부를 해야지."
"너희들이 어른의 도움 없이 세상으로 나가려면 혼자 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하잖아. 국어나 수학이던, 미술이나 체육이던 그런 능력을 많이 갖고 있으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고, 결국엔 내가 즐겁게 하고 싶은 일은 하면서, 내 시간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되지. 지금은 너희들이 능력이 안되니깐, 선생님이나 부모님들이 알려줄 수 밖에 없잖아. 그 능력을 과일에 비유해보자. 사과, 배, 포도, 수박, 망고, 딸기, 복숭아, 파인애플, 귤, 오렌지... 얼마나 많노. 내 능력을 키운다면 여러 가지 중에 선택을 할 폭이 넓어지는 거지. 내가 원하는 삶을 산다는 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답겠노. 그런데 능력이 안 되어서 한 가지만 선택을 해야 된다면 좀 서글프지 않을까?"
"엄마, 그렇게 설명하니, 내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알 거 같아. 여러 가지 중에 선택하는 것과 어쩔수  없이 해야 된다는 것은 큰 차이가 있을 거 같아."
딸은 내 이야기를 단번에 알아들은 듯해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적절한 설명을 속으로 자화자찬하고 있을 때,
"엄마, 그게 공부하는 이유라면, 난 결정했어. 공부를 열심히 하면 여러 가지 과일을 선택하는 거고, 공부 안하면 한 가지만 얻을 수 있다는 거네. 그럼 나는 공부 안하고 샤인머스켓 한 가지만 얻을께."
아들은 이렇게 `대맹이 코푸는 소리`를 한다.

졸업시즌, 다음학교 진학이나 사회진출을 기다리는 공백기는 아주 달콤하다. 어릴 때부터 들어온 말은 `또 재작지긴다`였고, 육아를 하고 있는 지금은 `아~는 조용할 때면 사고친다`이다. 어쩌면 그런 공백기와 재충전의 시간에 멋진 발명품을 만들어낼지도 모르는데… 『뇌의배신』이라는 책에서는 사람이 가장 창의적인 순간은 빈둥거릴때라고 한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도 들어주고, `개 풀 뜯어먹는 소리`도 즐겁게 호응해주고, `토끼머리 뿔 나기`를 기다려주는 것이 엄마가 아닐까. 아이의 자유를 사랑하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