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향을 고향처럼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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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을 고향처럼 사는 법
  • 남해타임즈
  • 승인 2022.03.08 17:22
  • 호수 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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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향, 나의 삶 126 │ 碧松 감충효
碧松 감 충 효 시인 / 칼럼니스트

타향을 고향처럼 사는 법 익혔다오
36년 고향에서 36년 서울에서
제3의 고향 강원도 산촌마을 들었소

고향을 떠난 사람들에게 향수병을 가져오는 대상은 각자의 삶의 방식이나 개인사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아마도 고향 사람과 고향산천이 그 대상이 아닐까?
부모형제자매에 대한 혈연의 정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죽마고우와의 아련한 추억, 그리고 동네 어르신들의 각별한 기대와 보살핌에 각자의 희망을 키우던 좋은 시절이 있었는가 하면 가난의 굴레를 멍에처럼 짊어지고 세상에서 제일 높다는 보리 고개 꺼이꺼이 울며 넘던 시절도 있었고 배고픈 서러움이 너무나 커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 바가지에 젊은 인생을 타서 마시다가 정처 없이 고향을 등진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이유야 어쨌든 고향은 자신의 뼈를 키워주고 기를 뿌려준 근본 뿌리다. 이와 같은 자연의 섭리를 벗어날 수 없음에 여우도 죽을 때는 고향 쪽으로 머리를 둔다는 수구초심(首丘初心)이 생겨났으며 호마(胡馬)는 늘 북쪽 바람을 향하여 서고 월(越)나라에서 온 새는 나무에 앉아도 남쪽으로 향한 가지를 골라 앉는다는 말도 우리네 인생,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영원한 주제가 아닐런가?  
어느 날 깊은 밤에 잡다하고 고달픈 객지생활의 지푸라기들이 고향에서 불어오는 사념의 남풍에 밀려 가버려 정신이 아주 맑아질 때가 있다. 바람에 실려 오는 낯익은 얼굴들을 어찌 그냥 흘려보낼 것이며 푸른 바다 춤을 추고 마늘 잎 출렁거리며 자운영 붉게 물든 고향 산천 언덕배기에는 내 어릴 적 추억의 모닥불을 피울 수밖에 없다. 향수병이 도지면 약은 하나 뿐, 그 대상들과 만나서 회포를 푸는 것이다. 상사병에 그 상사병을 들게 한 상대와의 만남 외는 약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나 할까?
고향사람들이 모이는 산악회에 나가면 산중에 작은 고향이 생겨나고 남해 달리기 모임(남달모)에 나가면 고향의 철각들과 마라톤코스를 누비다가 고향에서 주최하는 마라톤 대회가 열릴라치면 대거 고향산천으로 달려간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총동문회에 나가면 역시 선후배를 만나니 그 역시 고향 학창의 연장이다.
재경남해군향우회는 고향을 대표하는 가장 큰 모임이다. 필자는 86 아시안게임이 열리던 그해 전출발령으로 상경하여 서울시민이 되었다. 2007년 5월 과천 관문 체육공원 주경기장에서 열린 재경남해군향우회 종합체육대회, 신년인사회 등에 나가면서 타향을 고향처럼 사는 법에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2012년 제12대 이중길 회장님때는 향우회지 《남해가 그리운 사람들》 편집위원장이 되어 심혈을 쏟은 바 있다. 다음 해 2013년에는 재경남해중·제일고 총동문회지  《망메새》 편집주간으로 편집위원 9명과 함께 새로운 개념의 동문회지 발간에 미력이나마 도움을 드린 바 있다. 13대 박경호 회장님은 어려운 시기에 회장을 맡아 향우회 중흥의 발판을 마련했고 전국 최초의 여성 군향우회장으로 취임한 14대 구덕순 회장은 구 단위 재경향우회 모임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애향심의 꽃을 피우는 성의를 보이기도 했다. 필자가 재경노원구향우회장을 맡았을 때도 격려차 오신 일이 있었다. 타향살이 36년에 필자는 타향을 고향처럼 살았기에 아니 어쩌면 더 치열하였기에 후회는 없다. 이제 강원도 산촌에 들어 제3의 고향을 익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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