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끝 급식 시작
상태바
방학 끝 급식 시작
  • 남해타임즈
  • 승인 2022.03.10 16:37
  • 호수 78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연경의 남해일기

 긴 방학의 끝이 보이기 시작하니 유튜브의 한토막처럼 방학의 추억이 되살아난다. 코로나 방학은 아이들에게 친구를 사귈수 있는 기회도 차단하고, 부모가 맞벌이를 하는 가정이 늘어 방학이라는 달콤한 휴식을 맛보기도 전에 학원으로 내몰렸다. 방학생활은 생활계획표를 작성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큰원만 덩그러니 그려진 용지에 아이들은 용케도 시각을 표시해가며 일어나기부터 시작해 책읽기, 학원가기, 운동하기, 방학숙제하기, 밥 먹기, TV보기, 일기쓰기, 꿈나라에 이르기까지 24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겠다는 각오를 차곡차곡 그려 넣은 듯이 보였다.
 "아들아, 방학인데 너무 빡빡하지 않나? 늦잠도 좀 자고, 좀 놀고, 방학때는 살살 쉬감시로 해도 된다."
 "아니야. 세살버릇 여든까지 간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이런 속담 몰라? 한번 게으르면 그게 습관된다고."
 "그러면 방학이라고 엄마가 도와주는거 없다이. 각자 챙기고 알아서 스스로 하기."
 아이들은 생각보다 어른들의 도움없이 스스로 해냈기에 이번에도 자율성을 믿기로 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아이들의 방학생활은 수월하게 지났다. 저학년때처럼 일기 주제를 정하거나 아이가 쓴 독후감을 읽고 과도한 리액션을 해주지 않아도 되니 편했다. 매일 빠지지 않고 책상앞에 앉아 있길래 `아따야, 일기도 쓰고, 독서장도 쓰는갑다야` 라고 믿고 있었다. 
 새학기의 반배정 발표가 나던 어느 날,
 "엄마, 나 4반 됐어. 그런데 있잖아. 나 겨울방학 숙제 하나도 안했어."
 "숙제는 해오라고 내 준긴데 지금이라도 쪼매씩 해서 가져가라."
 "엄마, 겨울방학 숙제는 3학년때 내준건데 4학년 교실로 가니까 안해가도 되지 않아?"
 "그렁가? 방학때 민찬이가 스스로 공부도 하고, 학원도 잘 다니고, 나름대로 규칙적인 생활을 했으니 개학날 학교만 잘 가면 되겠다."
 "아니, 그건 선생님이 내준 숙제인데 왜 엄마가 그렇게 허락을 해? 선생님 의견이 중요한 거 아냐?"
 덜렁구인 나와 아들은 어린꼰대인 딸의 지청구를 못들은 척 했다.
 나의 학생시절 방학은 자유, 행복, 기쁨, 돌 맞은 샌치, 고삐 풀린 망아지 그 자체였다. 눈만 뜨면 태작마당에서 아침을 시작했다. 누구라도 모이면 전봇대 하나씩을 본부를 삼고, 두 편으로 갈라져 술래잡기를 하고, 구판장에서 빌려온 물주전자로 바닥에 선을 긋고 피구를 하거나, 배구를 했다. 내가 꼬맹이 시절에는 아이들이 많을 때라 두팀으로 나누고도 사람이 남아 놀이에 끼워주지도 않았다. 열심히 볼보이를 하거나 물주전자를 들고 지워진 선을 새로 긋고 하매나 불러주까 싶어서 방구고 다녔다. 그때 구경꾼이던 아이들이 좀 자라 놀이의 주도권을 잡게 되었을때는 두팀으로 나누기엔 아이들 수가 모자랐다. 예전에는 몸을 움직이는 레저문화였다면, 한 두살 터울 언니들과 동생들과 함께 우르르 집에서 못쓰는 가재도구를 가지고 나와 노꼽살이를 하면서 드라마를 찍었다. 텔레비전에서 본 드라마를 어설프게 흉내 내면서 `여보, 당신`이라 칭하며 깔깔거렸다. 그런 놀이에서는 각자의 집에 멋도 없이 서로를 부르는 `저가배, 저그매`는 사라지고 없었다. 

 학교생활 시계보다 방학생활 시계는 2배속으로 빠르게 돌려 놓은 듯 개학은 눈 깜짝할 새 다가왔다. 개학 일주일을 앞두고 밀린 방학숙제가 시작된다. 먼저 그림그리기부터 시작된다. 주제를 몇 가지 정하고, 밑그림은 연필로, 잘 안되는 친구들은 서로 도와주고, 붓으로 터치해가며 완성작은 바람이 드는 응달에서 말린다. 
 "그림부터 빨리 그리서 몰라라. 색이 살짝 바래야 숙제를 미리 해 놓은거 것다 아이가. 문지도 살짝 앉으면 좋다."
 일기쓰기는 고난도에 속했다. 시골에서 눈뜨면 밥 먹고, 모여 놀고, 일기주제를 매일 바꿔쓰기도 쉽지 않았는데, 특히 날씨가 문제였다.
 "방학날은 갱번가에서 집 지어서 소꿉놀이한거 쓰고, 날씨는 맑음. 다음날은 마을회관 앞에서 술래잡기 한 거, 날씨는 흐림. 다음은 집안일 거든거, 날씨는 맑음. 다음은 친척집에 놀러간 거, 날씨는 맑음."
 누가 일기쓰기가 어렵다고 했는가. 누군가가 주도해서 하나씩 의견을 내면, 일기에 쓸 주제들이 술술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 일기 쓴 것을 보여 주기도 하고, 틀린 글자는 고쳐주기도 하고, 미리 써 온 일기에서 날씨를 베껴쓰기도 했다.  친구들이 있으면 날씨를 베껴쓰기도 했다. 상상문에 가까운 일기쓰기였다. 하루아침에 끝낼 숙제는 아니어서, 우리같은 맹기던더리들이 공작숙제를 할때는 협동심을 이끌어냈다. 각자의 집에서 가져온 골판지 박스나 수수깡, 색종이 따위로 동물원을 만들거나 놀이터를 만들었다. 연년생 언니를 둔 나는 언니의 또래들과  밀린 숙제를 손쉽게 했다. 꼬박꼬박 방학숙제를 꾸준히 한 친구들도 많겠지만, 우린 불각시리 숙제를 해내면서 다음 방학에는 매일 숙제를 성실히 해내자고 각오를 다지곤 했다. 매번 벼락치기의 귀재가 되면서도 말이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벼락치기다. 
 방학이 시작되면 아이들의 얼굴은 함박꽃이 피고, 엄마들의 얼굴은 화난 호랑이상이 되었다. 개학이 시작되면 그 반대가 되었지만··· 학교생활과 방학생활의 경계가 모호해진 아이들은 표나게 아쉬워하거나 기뻐하는것도 없는 눈치다. 아이들의 먹을거리를 중시하는 나는 개학이 된다는 것은 학교급식이 시작된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크게 안도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