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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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이야기
  • 남해타임즈
  • 승인 2022.03.10 16:40
  • 호수 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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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향, 나의 삶 127 │ 碧松 감충효
碧松  감  충  효시인 / 칼럼니스트
碧松 감 충 효
시인 / 칼럼니스트

갓고개서 우리 동네 마주보고 총질하던
인민군 피해 만든 뒷산 언덕 굴속에서
어릴적 전쟁놀이는 정말 신이 났었지.
 
6.25 터졌을 때 가솔들이 숨어있던
그 동굴 팠던 분들 할아버지 형제분들
일가를 지키셨기에 오늘의 내가 있네.
 
고향을 올 때마다 이곳을 들러본다
안전사고 염려하여 굴 입구 막았다는
당숙님 말씀 들으며 동족상잔 생각는다.
 

 몇 년 전 시제 때 고향마을 뒷산에 올라봤다. 고향에 올 때마다 거의 빠지지 않고 가보는 이 곳, 이곳에 자주 오는 이유는 동굴이 있기 때문이다. 그곳은 다름 아닌 6.25 때 인민군의 총탄을 피해 우리 일가가 목숨을 지킨 동굴이다. 그 동굴은 할아버지 형제분들 즉, 종조 할아버지 4형제 분이 가솔들을 지휘해서 팠다. 어릴 적 할머니께 들은 바에 의하면 필자도 유아기 때 이곳에서 몇 개월을 지냈는데 울음소리가 바깥에 나갈까 봐 어머님께서 젖을 물려 꼬옥 껴안고 있었다고 한다.
 필자가 살던 마을 앞에는 하마정 들이 있고 일제시대에 만든 신작로가 놓여 있으며 그 신작로 들머리에 동쪽에서 넘어오는 갓고개가 있다. 6.25때 인민군이 읍으로 쳐들어 올 때 갓고개 교량 부근에서 우리 마을을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하는 바람에 마을의 어떤 분은 가마솥 뚜껑을 방패삼아 들고 여러 사람의 피난을 독려했다고 한다.
 필자의 일가가 피난했던 굴의 구조는 U자 형으로 바깥에서 보면 쌍굴이지만 들어가면 서로 통해 있고 벽면에는 군데군데 작은 굴을 또 뚫어 굴 입구에서 들여다보면 빛의 직진에 의해 그 작은 굴은 발견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어릴 때 굴속에 들어가면 조금은 으시시했지만 숨바꼭질이나 전쟁놀이 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그 굴은 필자가 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안을 들여다보고 들락날락 할 수 있었는데 얼마 전 부터 안전사고를 이유로 당숙께서는 그 입구를 큰 돌로 담을 쌓아 사람의 출입을 막았다고 한다. 
 이 굴은 마을 뒷산 당산의 언저리에 있었다. 앞 쪽은 질 좋은 왕대가 고고한 절개로 요즘 세태를 꾸짖듯 댓바람을 드세게 날리는가 하면 옆쪽은 그 유명한 매원이 있었던 곳이다. 그  우람하던 매원이 어느 땐가 개발의 불도저에 밀려 지금 남해대학의 부속 건물이 서있는 곳이기도 하다. 오른 쪽은 아름다운 선소항이 손에 잡힐 듯 다가와 있고 잔잔한 강진바다 위로 쇠섬을 비롯한 섬들이 그림처럼 떠 있는데다 멀리 지족 손도의 창선대교가 보이기도 하는 정말 풍광이 좋은 곳이다. 6촌 형님의 소유인 이 곳 주변에 펜션을 짓겠다는 사람들이 많았다는데 요즘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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