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내려다보며 화전별곡, 시 한 수 읊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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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내려다보며 화전별곡, 시 한 수 읊조리다
  • 남해타임즈
  • 승인 2022.03.18 16:32
  • 호수 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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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부경의 남해바래길이야기 33 │ 지선1번 읍내바래길 1

 남해읍 공용버스터미널에서 우로 돌아 유림사거리, 남해향교, 남해성당, 봉황산공원, 법흥사, 아산저수지, 오동마을, 아산마을회관, 남산공원, 유배문학관, 청년창업거리, 남해어시장, 공용터미널까지 읍내를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 원점 회귀하는 지선 1코스인 읍내바래길은 10.0㎞ 이며 소요시간은 3시간 내외로 난이도는 ★★이다. 남해읍 공용터미널 시점 바래길 안내 간판에서 출발한 답사반은 반시계 방향으로 유림동 사거리를 지나 향교 방향으로 올라간다. 유림동은 향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해서 유림동이요, 남해향교는 조선 시대 지방의 공립학교인 향교가 있었기에 향교라 부른다.
 남해향교는 조선 문종 원년(1450년) 당시 남해 현령이었던 하신이 현유의 위패를 봉안하고 배향하며 아울러 지방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하였다고 전하나, 임진왜란 때에 문헌이 유실되어 정확한 창건 시기를 알기가 어렵고, 1530년 간행된 룙신증동국여지승람룚에는 남해향교에 대해 "(남해)현의 북쪽 1리 지점에 있다"는 기록이 있어서 조선 초기에 이미 향교가 있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향교 명륜당
향교 명륜당

 남해향교에는 공자를 포함한 5성과 송조 6현 및 최치원을 비롯한 동국 18현을 모시고 있으며 
 음력 2월초 정일(丁日)과 음력 8월초 정일, 두 차례 춘·추 석전대제를 모신다. 향교 정문 사이로 명륜당 현판이 보인다. 들어가 공자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하고 향교를 지나 남해성당 정문을 통과하고 뒷길을 지나 봉황산으로 올라간다. 성당 안으로 지날 때는 숨소리,  발자국 소리를 죽여 행여나 미사에 방해될까, 사뿐사뿐 걸으며 마음의 묵은 때 씻기를 기도하며 지나간다. 아멘.
 1930년을 전후하여 설립된 남해 공소는 1958년 공소 재건 운동을 전개하면서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1961년 성당을 완공하였다. 현 성당은 1987년 9월 9일 성당 신축을 시작하였다. 1989년 1월 30일 장병화 주교의 주례로 축성식을 거행하였던 곳이며 주일이면 성경 말씀을 실천하기 위하여 수많은 성도들이 모여드는 수련장이다. 봉황산(167m) 나래숲공원을 한 바퀴 감아 돌고 법흥사(포교당) 뒷길을 타고 오른다. 뒷길이 한 200m, 밤에는 가로등이 없어 보행하기가 어려워 손전등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길을 가고 있다.
 아산저수지 뚝방을 걸어 서산에 걸려있는 오후 노을을 보자니, 동정호를 그린 소상팔경도(중국 호남성 동정호 주변의 절경을 그린 그림)처럼 청둥오리 십여 마리 줄지어 수채화를 그리며 노닐고 있다. 오동마을을 좌로 가로질러 오동 수원지 바로 밑까지 오르다 지쳐 좌로 돌아 아산마을 내려온다. 아산에서 바라보는 남해읍의 정경은 참으로 아늑하고 망운산과 강진바다, 금산에 둘러싸인 자태는 포근하다 못해 침묵이 흐를 정도로 시적이다. 그리하여 옛 시인 묵객들이 노래한다.
 하늘의 끝 땅의 변두리 한 떨기 신선이 사는 섬/왼쪽은 망운산 오른쪽은 금산 봉내와 고내가 흐르네/산천이 기묘하게 뛰어나 호걸과 준사들이 모였나니 인물이 번성 하였네/아, 하늘 남쪽 경치가 아름다운 곳의 모습 그것이 어떠합니까?/풍류와 주색을 즐기는 한 시절의 인걸들, 풍류와 주색을 즐기는 한 시절의 인걸들/아, 나까지 몇 분입니까!
 자암 김구의 화전별곡 제1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일점선도` 신선이 사는 곳이라 했던가. 자암 김구 선생은 조선 중종 때 인물로, 서른두 살의 나이로 홍문관 부제학을 지내다 남해에 유배 온 신진사림이다. 글씨를 너무 잘 써서 석봉 한호, 봉래 양사언, 안평대군 이용과 함께 조선 4대 서예가로 불리고 있다. "혹 주초지왕(走肖之王)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을까요? 주초(走肖)를 합치면 조(趙)자가 되겠지요?" 조선 중종 때 홍경주는 딸 희빈 홍 씨를 시켜 나뭇잎에 벌꿀로 조(趙)자를 쓰고 벌레가 갉아먹게 하여 조씨가 왕이 된다는 이야기를 꾸미고 조광조를 역모로 몰았다는 고사(古事)다. 이에 김구 선생은 정암 조광조, 충암 김정 등과 도학정치를 펼치려다 훈구파인 홍경주, 남곤, 심정 등의 모함을 받아 조광조는 능주로 귀양 갔다 사약을 받았고, 김구는 13년간 남해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사부작 사부작 오다 보니 아산마을 회관을 지나고 남해유치원을 지나 남산까지 왔다. 이제 왼쪽으로 300m 남짓 걸어가서 남해공설운동장과 박씨제각에서 우로 돌아 남산 중앙 능선까지 70m 정도 돌계단을 올라가서 리본을 따라 걸어간다. 여기는 운동하는 사람들 여러 명이 파워워킹으로 오가며 심신을 가다듬고 있는데 참 행복해 보인다. 운동이 그렇게 정신건강에 좋은가 보다. 남산 충혼탑, 목숨 바쳐 공산주의 침략을 막아낸 6·25 참전 전몰용사들, 그 영령들의 혼을 생각하며 남산 입구의 3·1운동기념비를 뒤로하고 남해도서관을 지나 유배문학관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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