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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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 마음
  • 남해타임즈
  • 승인 2022.03.18 16:35
  • 호수 78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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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의 남해일기

 유배문학관 로비로 들어서서 오른쪽 모팅이를 도는데 선풍기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파랑색 날개 3개가 스댕망 속에 가만히 정지해 있는 목 짧은 선풍기였다. `우와, 이런 선풍기가 여기도 있네.` 전시되어 있던 선풍기는 백마부대30연대에 소속되어 월남전유공자인 이00님께서 1968년, 귀국하는 동료편에 고향에서 농사지으시는 부모님께 보내드린 선풍기였다. 그 시절에는 억수로 귀한 물건이라 마을행사나 잔치가 있으면 빌려가서 사용했고, 아들이 전장에서 보낸 선풍기를 얼마나 잘 닦고, 잘 보관하였던지 부모님은 가시고 안 계시지만, 선풍기는 아직 잘 돌아가고 있다는 안내문과 함께였다.
 나의 엄마가 살고 계시는 집에도 아주 오래된 신일선풍기가 있다. 벌써 20년도 훌쩍 넘은 이야기지만.
 "일 마치고 집에 오는데 멀쩡한 걸 델래삣더라꼬, 그걸 주워와서 전기코드를 꽂응께 선풍기가 먹통이라. 읍에 있는 협신상사까지 들고 가서 부품 한 개 갈아끼운께 고마 잘 돌아가여."
 "아이구, 엄마, 집에 안 어울리여, 구신 나오긋네. 좀 델래삐게."
 "문디가 머라쿠네. 옛날 선풍기 이기 참 시원해여."
 "엄마, 저번에 사다준 선풍기는 우쨌는고, 이우지 할매들 오몬 놀래삐긋다. 연자너매 때때모찌라꼬."
 "때때모찌나 머이나, 요새 나오는 선풍기는 바람개비만 돌아간다쿠는기지 시원토 안해, 시원키는 옛날끼 상구 좋아."
 멀쩡하게 잘 돌아가는 선풍기는 여름이 되기도 전에 땀순이 엄마를 위해 거실 한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최준환 6·25참전유공자회남해군지회장과 초등학생들이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최준환 6·25참전유공자회남해군지회장과 초등학생들이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6·25 전쟁, 월남전 참전유공자 흔적남기기 전시는 흔들리는 내 마음을 단단히 잡아주는 계기가 되었다. 어려운 시절에 조국을 위해 20대의 젊은 시절을 피와 땀으로 보낸 시간에 대한 기록. 주변 동료의 주검이 처참하게 다가왔으며, 학도병으로 참전한 분, 일찍 결혼을 해서 아내와 어린 자식을 두고 참전해야 했던 두려움과 눈물겨움, 전시된 진열장에 눈을 둔 채 한걸음 한걸음을 옆으로 옮길때마다 뜨거운 눈물이 맺혔다. 전우의 유골을 납골당에 안치시킨 일, 아들을 낳거든 절대 해병대에 보내지 않을 거라는 결심을 했다는 이야기와 밤새 내린 이슬로 밥을 지어 먹기도 했다는 이야기는 정말 겪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1920년~30년대생 어르신들은 요양원 생활이나 치매로 인해 현재와 옛날의 기억이 없어 그 이야기를 많이 수록하지 못해 많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참전유공자들의 전장 속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고뇌하며 썼던 일기와 편지, 전장 속에서도 익살스러운 모습이나 표정으로 가족들에게 안심 사진을 보낸 소중한 마음들. 나는 유공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읽고, 사진을 번갈아 보고, 출력된 이야기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쓰며 관람했다. 어머나, 반가운 이름과 얼굴이 눈에 띄었다. 1949년생, 엄마와 아빠의 동창생 세 분도 전시의 주인공이셨는데, 날아다니는 총알을 피하고, 터지는 포탄의 충격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오신 삼총사. `아이고, 심각한 전쟁속에서도 아저씨들은 살아남았는데, 전쟁에 참가하지도 않는 우리 아빠는 뭐 그리 급해서 저승문을 일찍 두드렸노.` 한탄이 절로 나왔다. 
 
 미군 헬기부대와 의사소통 착오로 엉뚱한 곳에 투입되기도 하고, 글씨를 너무 잘 써 행정병으로 근무를 하고, `나는 명이 길어 살아 돌아왔다`에서는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 내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에서는 인권이 무너지고, 조국을 위해 떠나는 아버지의 모습과 어린 자녀들이 생이별하는 고통이 계속되고 있다. 어떤 이유로도 전쟁은 정당화될 수 없다. `살아 돌아오라`
 돌아서 생각하니 난 늘 전쟁중이었다. 아침에는 기상전쟁에 출근전쟁, 점심때는 구내식당에서 자리전쟁, 회사에서는 업무전쟁, 퇴근해서는 육아전쟁. 이제는 전쟁은 지우고 평화를 써야겠다. 평화로운 출근, 평화로운 업무, 평화로운 육아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야 행복하다는 진리를 몸소 겪을 차례다. 

2022년 3월13일, 몸이 근질거리는 아이들과 접선하여 6·25&월남전참전 전시회를 전시회를 보러 갔다. 남자아이들이라 그런지 할아버지(최준환 회장님)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할아버지께서 목에 건 훈장메달도 만진다. `할아버지들 고맙습니다`라고 방명록도 쓰고, 참전유공자 도슨트로 활동중인 최준환 어르신을 에워싸고 단체 거수경례를 했다. 충!성! 어르신의 우렁찬 목소리가 청년같았다.

참전유공자분들께 존경과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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