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부자 되는 방법(뱅아리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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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부자 되는 방법(뱅아리를 아시나요?)
  • 남해타임즈
  • 승인 2022.04.04 14:52
  • 호수 78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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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의 남해일기

1985년,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면서 성내생활을 조금 알게 됐다.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는 아이걸음으로 걸어서 20분 넘게 걸렸는데, 언니가 있어서 잘 걸어다녔다. 내 아이들이 첫 학교에 입학할 때에 헬리곱터 엄마처럼 집에서부터 학교까지 가는 동안 인간 네비게이션 노릇을 했다. `일단 직진, 하나로마트가 보이면 횡단보도 건너기, 키가 작으니 손을 들어야지, 어린이집 가는 골목이 보이면 거기서 왼쪽길을 따라가, 성당을 지나, 병원이 보이면 이제 학교야, 학교 담장을 따라 걸으면 정면에 문방구가 보여, 오른쪽 길을 따라 올라가, 그럼 바로 교문이다.` 내가 학교 다닐 때나, 아이들이 학교 다닐 때나 초등학교 교문은 같다.

학교를 파하고 나오는 봄이면, 교문 앞이 복닥거리며 들썩였다. 봄에는 어김없이 `병아리`를 파는 아줌마나 아저씨가 부모님보다 더 먼저 반갑게 아이들을 반겨주었다. 커다란 상자 속 병아리들은 삐약삐약 합창을 하고, 아이가 가리키는 병아리를 집어 건네 주었다. 샛노란 털옷을 입은 병아리들이 나도 신기했다. 이웃집 어른들이 장날에 가서 사와 기르는 닭은 병아리를 넘은 중닭이었다. 마당에 풀어놓으면 방앗간에서 얻어온 쌀딩겨나 쌀가루만 주어도 콕콕 찍어먹으며 잘 자랐다. 이웃집에 세워둔 사료포대에서 한움큼 쥐고 어린 닭을 향해 뿌리면 모이를 먹으러 모여들었다.
"엄마, 학교앞에 병아리 팔던데, 나도 사면 안돼?"
"그거 사와도 잘 크지도 못한다."
"병아리가 꼬꼬닭이 되는 모습을 보고 싶어."
"낼 아침 학교갈 때 돈 주께. 언니한테는 말하지 마라."
"알았어. 쉿."
나는 그 비밀을 지키겠다는 굳은 의지로 손가락을 입술 앞에 곧게 세웠다. 내 딸과 나의 비밀이 자라는 것처럼, 우리 엄마와 나도 비밀이 많았다. 학교를 마치고, 병아리를 사서 의기양양하게 돌아왔다. 골판지 상자에 병아리집을 짓고, 모이와 물을 주고 애정을 주었지만, 보들보들하던 깃털과 온기있던 병아리는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갔다. 그 이후로 신해철의 `날아라 병아리`를 들으면 그 삐약이가 생각난다.

겨울뜰이 끝나고 봄이 되기 시작하면 들판에는 풋마늘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시장은 삐약거리는 병아리와 싱싱한 뱅아리들이 주인공이었다. 병아리는 시골집으로 팔려가고, 죽으면 하얀색으로 변하는 `사백어`도 어느 가정의 식탁으로 옮겨갔다. 뱅아리에 풋마늘을 쫑쫑 썰어 넣고, 초장을 함께 버무리면 쪽빛바다와 남해의 봄이 입속에서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뱅아리를 만드는 과정을 잘 몰랐는데, 물고기를 손질한 것도 아니고, 물에 헹구기만 되겠다 싶어 신혼 초에 한소쿠리를 사왔다. 남해의 봄밥상을 차려주며 봄에는 `뱅아리`를 먹어야 힘이 난다는 말을 남편에게 해주고 싶었다.
"새댁이 뱅아리 해 묵을 줄 알까?"
"이거 뭐 내장뺄 것도 아니고, 비늘도 없어 보이는데예. 초장넣고 비비 묵을라고예"
"하, 비늘은 고마 매~매~ 씨스모 다 뱃기져. 요새 딱 한철이라."
"매~매~ 문데모 되지예."
"하모, 이기 보기는 그래도 괴기라고 비늘이 있어. 몰강물이 나올때꺼정 씨으모 돼."
커다란 대야에 뱅아리를 붓고 물을 틀었다. 옴마야, 이기 머선 일이고. 커다란 대야에서 가루세제를 풀어 놓은것처럼 커다란 버끔들이 자꾸 올라왔다. 걷어내고, 물 틀고, 걷어내고, 물 틀고 하는 동안 벼락부자가 된 느낌이었다.

시장에서 한주먹만큼 진열해놓은 파래를 사왔을 때도 그랬다. 한겨울의 물파래는 내 소울푸드이기도 해서, 하나로는 부족하다 싶어 세 덩이를 사왔는데, 대야에 담고 물을 넣자 파래가 풀어져 집을 메우고도 남겠다 싶었다.
"머덜거리는 거 없고로 빠락빠락 문데서 씻으모 돼."
얼마나 야무지게 씻었는지, 사온 양의 반은 씽크대에 양보하고도 살아남은 파래들은 나를 벼락부자의 길로 인도해주었다.
남해사람들이 부자라고 느낀 때는 언제였을까? 아마도 남해대교가 개통된 때가 아니었을까. 섬을 육지로 연결해 이동이 쉬워졌을 때, 우리가 살아가는 연륙섬이 육지라고 생각될 때가 누구보다 부자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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