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희미해지지만 기록은 영원하다"
상태바
"기억은 희미해지지만 기록은 영원하다"
  • 전병권 기자
  • 승인 2022.04.15 10:50
  • 호수 79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25&월남전 참전유공자 흔적 남기기
참전유공자 사진, 훈장, 책 등 자료 흔적 제보 받아

역사가 중요한 이유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고 과거의 사건을 통해 현재를 점검하고 미래를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 근현대사를 보면, `6·25전쟁(1950년 6월 25일~1953년 7월 27일 휴전)`과 `베트남전쟁(1960년~1975년, 30만명 넘는 국군 병력 파병 시기 1964년~1973년)` 등 선배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으로 우뚝 설수 있었다. 이러한 희생을 기려 남해군에서는 2020년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특수시책으로 추진한 `6·25&월남전 참전유공자 흔적 남기기 사업`을 펼치고 있다. 지난 3월 30일 남해유배문학관에서는 `6·25&월남전 참전유공자 흔적 남기기 전시관 개관식`이 열려 성황리에 전시 중이다. 이에 ㈜남해시대도 선배들의 흔적을 기리고, 더 많은 유공자들과 후손들이 흔적을 남길 수 있도록 홍보하기 위해 나선다. 먼저, ㈜남해시대는 6·25&월남전 참전유공자 흔적 남기기 사업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원회)·남해군청과 협의해 이번 호부터 기획연재 보도를 한다. 이번 호에는 추진위원회 최준환 위원장과 서상길 사무국장, 류기찬 남해군 주민복지과 복지정책팀장을 지난 7일 남해유배문학관에서 만나 사업 준비와 진행 과정, 계획 등을 들어봤다. <편집자 주>

6·25&월남전 참전유공자 흔적 남기기 사업 추진위원회 최준환(가운데) 추진위원장과 서상길(왼쪽) 사무국장, 류기찬 남해군 복지정책팀장을 지난 7일 남해유배문학관에서 만나 흔적 남기기 사업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6·25&월남전 참전유공자 흔적 남기기 사업 추진위원회 최준환(가운데) 추진위원장과 서상길(왼쪽) 사무국장, 류기찬 남해군 복지정책팀장을 지난 7일 남해유배문학관에서 만나 흔적 남기기 사업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6·25&월남전 참전 유공자들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6·25전쟁으로 인해 청력이 약해진 최준환(93세) 추진위원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크게 여러 차례 얘기한다. 곧이어 "7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다보니까, 우리 동료들이 가는 마지막 길에 눈물이 앞을 가린다"며 "노병들이 없더라고 길이길이 지금 전시되고 있는 흔적을, 이 역사를 꼭 후세들에게 전달해 달라"는 말을 몇 차례 당부했는지 모를 정도다.

최준환 추진위원장의 반복되는 말은 전쟁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목숨을 바쳐 지킨 나라를 다시 잃을 수 있는 위기가 발생하지 않길 바라는 소망을 담은 절규로 해석된다. 
 
흔적 남기기 그 시작

6·25&월남전 참전유공자 흔적 남기기 사업은 전국에서 최초로 시행하는 그야말로 행정이 추진하는 `고귀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사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선배들의 넋을 기리고 후손들에게 알리는 이 사업. 언제 어떻게 시행하게 됐을까?

이 사업의 담당자인 류기찬 복지정책팀장은 "2020년 6·25전쟁 70주년을 맞이해 6·25참전자유공자회 남해군지회장인 최준환 추진위원장을 중심으로, 월남전참전자회 남해군지회와 군내 여러 보훈단체들과 이야기를 나눈 끝에 행정에서도 이 사업의 필요성을 공감하게 됐다"며 "2021년 1월부터 예산이 확보되지 않았지만 추가경정예산을 확보하면서 구체적인 사업의 구상도를 그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류 팀장은 "최준환 추진위원장의 말씀처럼, 시간은 선배들을 기다려주지 않고 있고, 그 숫자가 현저히 줄어드는 걸 보면서 신속하게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만큼 행정에서 적극적으로 사업을 추진했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렇게 남해군안보단체협의회에 소속된 보훈단체를 필두로 `6·25&월남전 참전유공자 흔적 남기기 사업 추진위원회`가 구성됐다. 다음 과제는 본격적인 기록을 남기기 위해 조사원 선발이 필수였다. 이에 복지정책팀에서는 지역활성과 일자리팀과 연계해 인건비를 지원받으면서 행정안전부의 사업 승인을 받고 사업을 추진해나갔다. 그 결과 4명의 조사원이 선발됐다.

4명 중 가장 먼저 조사원으로 자처한 사람이 바로 월남전 참전유공자 서상길 사무국장이다. 이 일이 즐겁다는 서상길 사무국장은 "저는 제2의 인생은 봉사하면서 살자는 신념으로 남해로 귀촌했다"며 "군청 홈페이지에서 조사원 모집 공고를 보고, `나도 월남전 참전유공자이면서 사진을 찍는 특수한 보직을 수행했는데 남은 흔적이 없구나`하고 깨달았다"고 회상했다. 이어 "역사적인 일에 동참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가득 찼었고 또 월남전 참전유공자로서 당사자이기 때문에 그 가치를 더욱 잘 안다"며 "특히 6·25전쟁 참전유공자 선배들은 90대인 어르신들이기 때문에 시간이 더욱 모자람을 느꼈다"고 사업에 참여한 이유를 전했다.

그렇게 2021년 2월부터 사진·훈장·책·앨범·표창장 등 6·25, 월남전과 관련된 흔적들을 1년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복지정책팀에서는 남해군안보단체협의회에 속한 보훈단체들에게 미리 통보를 하고 방문 날짜를 잡으면서 일정 관리에 나섰고, 빈손으로 유공자들의 가정을 방문할 수 없어서 코로나19가 활발한 상황임을 고려해 마스크와 자그마한 성의 표시를 준비했다.
 
누운 사람도 `벌떡` 일으키는 전우애

서 국장에 따르면, 조사원들이 유공자들의 집을 방문하면 호의적인 사람도 있지만 대체로 전쟁으로 인해 신체가 망가졌거나 노화로 인해 의사소통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특히 전쟁에 대한 기억은 트라우마로 남아 이야기를 꺼려하는 사람도 많다고. 

그런데 최 추진위원장과 함께 방문하면 얘기가 다르다. 앞서 언급했지만 6·25참전유공자회장 남해군지회장을 맡고 있는 그가 대문에서 큰 소리로 "충! 성!" 경례를 하면 누워있던 동료 전우가 나와 경례를 받아주기 때문이다. 이색적인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최 추진위원장은 "참전유공자들은 안 아프다면 거짓말이다. 몸이 아프다보니까 사람을 만나는 게 어렵고 귀찮아하지만, 저도 지역에서는 고령이고 선배이기 때문에 먼저 다가가면 동료들이 반갑게 맞이해준다"며 "그렇게 조사원들이 조사를 마치고 나면 지팡이를 짚고 나와서 손을 흔들어주면서 배웅을 해준다.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서 국장은 "처음에 전쟁 이야기를 하면 아픈 기억이기 때문에 어려워했지만, 이것도 많이 하다 보니 요령이 생겼다"며 "고령이지만 군번, 바로 군번은 꼭 기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참전유공자들에게 공통적으로 군번을 물으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면 제대할 때 계급이나 참전했던 부대, 당시 상황들을 펼쳐놓는데 시간이 부족할 지경"이라며 "마음을 열고 당시 상황을 설명해주는 유공자들에게 참 감사하다"고 전했다. 

이와는 반대로 안타까운 사연도 많다. 류 팀장은 "집집마다 다 사연이 다르다. 어느 가정에 방문했을 때는 `아이고 우리 할배 죽은 지 보름밖에 안 됐는데 좀 일찍 오지`라고 안타까워하는 할머니를 보면서 좀 더 일찍 찾아뵙지 못한 죄송한 마음에 숙연한 경험도 있다"고 말했다.
 
흔적 남기기 사업 이제부터 시작

6·25&월남전 참전유공자 흔적 남기기 전시가 진행 중이지만, 흔적 남기기 사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이다.

류 팀장은 "전국에서 최초로 시행한 사업인 만큼 자부심도 있고, 필요성을 절실히 공감하기 때문에 행정에서도 흔적 남기기 전시가 끝난 뒤에도 계속될 수 있도록 전시관을 새로 구상 중에 있다. 이는 국비가 필요한데,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오늘(4월 7일) 전국 지자체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 전시장을 방문해달라고 공문을 보냈다. 또 국가보훈처를 비롯해 여러 교육기관, 전국의 보훈단체 등에서도 안보교육장으로서 방문해달라고 홍보하고 있고, 남해가 안보교육장으로서 명성을 날릴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다"고 계획을 설명했다.

서 국장은 "현재 80명 정도를 만나지 못했는데, 이분들은 연락이 닿지 않거나 병원 내지 요양원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그래도 최대한 연락을 하고 찾아 뵐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추진위원장은 "참전유공자들의 자료들을 가족이나 지인들이 갖고 있다면 우리 추진위원회나 군청에 연락을 해서 기증해 주시길 바란다"며 "지금은 남해를 대상으로 이 사업이 추진되고 있지만 나아가 국가적인 차원에서 지역 구분 없이 안보교육장으로서 남해가 거듭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유공자·가족·향우 등의 제보가 필요합니다

6·25참전유공자는 2021년 6월말 기준 206명이 생존해 있었지만 2022년 2월말을 기준으로 보면 180명이 생존해 있는 상태다. 8개월 사이에 26명이 영면한 셈이다. 월남전 참전유공자는 243명이 남아있다. 그만큼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제보가 절실하다.

추진위원회는 유공자들이나 유공자들의 가족, 지인, 향우 등 누구라도 자료가 될 만한 무엇이라도 제보를 받고 있다.

물품을 기증해주면 전시회에 함께 소개될 수도 있으니 많은 제보를 바란다.

6·25&월남전 참전유공자 흔적 남기기 사업 추진위원회(남해군 남해읍 화전로 43번길 11-15 참전유공자회관 / ☎055-864-0625)로 연락하면 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