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이야기는 무궁무진하고, 추억은 아름답고 글을 쓰며 행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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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이야기는 무궁무진하고, 추억은 아름답고 글을 쓰며 행복했어요"
  • 김수연 기자
  • 승인 2022.04.15 15:25
  • 호수 79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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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남해군청 문화관광과 관광자원개발팀 김연경 주무관

 2020년 8월 27일 본지 710호에 `사람 손만큼 부지런한 게 없다`라는 제목의 글이 실리면서 `김연경의 남해일기` 연재가 시작됐다. 이후 원고가 미뤄진 적도, 늦은 적도 없이 꾸준히 `남해일기`는 신문사 메일함에 도착했고, 1년 8개월여 시간 동안 80회가량의 `남해일기`가 남해시대신문 지면에 소복이 쌓였다.
 
1년 8개월 이어진 `남해일기`
 그동안 `남해일기`와 작가가 좋아 찾아 읽는 `팬`도 제법 생겼고 작가가 뭘 하는 사람인지 궁금해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렇게 2년 가까이 `남해일기`를 한 번의 중단 없이 써왔고, 이제 4월 말로 일기의 마지막 장을 덮게 되는 작가는 바로 남해군청 문화관광과 관광자원개발팀의 김연경 주무관이다. 
 김연경 주무관은 남해에서 나고 자라 살아가는 남해 토박이다. `지역이 답이다`라는 소신을 가진 공무원으로 지역성 발굴, 관광재생, 자연, 추억에 관심이 많다. 가족들과의 소소한 일상과 아름답고 매력적인 남해의 자원을 자신의 SNS에 글과 사진으로 소개해오다가 본지 한중봉 전 편집국장의 레이더망(?)에 걸려 글의 연재를 권유받았다. "그리 대단한 글도 아닌데 독자들에게 소개하자는 권유를 받으니 망설였죠. 기록하는 일도 중요했고 제 글이 좋다고 해주니 길게 생각 안 하고 쓰기로 했어요."  
 그렇게 시작했고 첫 글이 조도에 다녀와서 쓴 것이다. 자신도 남해 섬사람이지만 남해를 섬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살았고 조도에도 그때 처음 가봤단다. "조도가 남해의 끝이에요. 그곳 주민들의 척박하고 팍팍한 삶을 그때 알았죠. 태풍 때 온갖 쓰레기가 밀려오는데 그걸 치워줄 젊은이도 없고 너무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동료들과 섬 현장에 가서 쓰레기를 `만장같이` 치웠다. 그전에 글을 쓴 것도 있는데 이 글을 첫 글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김 주무관은 `말하는 것처럼 쓰라`는 강원국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평소에 이야기 나누는 걸 글로 표현한다고 말한다. 기왕 `장판 깔아줬으니` 써봐야겠다 결심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기고했다. 힘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글을 쓰면서 옛 추억을 떠올리고 남해에서 재밌고 즐거운 일이 많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단다. 이후 그가 써온 `남해일기`는 사투리가 맛깔나게 버무려진 남해와 가족 이야기로 채워졌다. 
 "우리 남해 말, 사투리가 많이 사라지고 있어요. 요즘 아이들은 사투리를 쓰지 않아요. 영화 <말모이>를 보며 우리 말의 중요성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집에서 일부러 사투리를 쓰곤 하는데 아이들이 둘 중 하나는 알아들어요." 
 
생생한 옛이야기에 고정독자 생겨
 그의 글이 신문 인터넷판 인기기사 1위에 오른 일도 부지기수다. 그러면 어떻게 알았는지 많은 분들이 연락을 주셨다고. "시장에 가면 동네 분들과 친구 엄마들이 계신데 어떻게 이런 걸 기억하느냐면서 옛날 생각난다고 좋아해주셨죠." 
 40대인 김 주무관의 글을 읽고 50~60대 분들이 작가를 자기 연배라고 `착각하는` 일도 많다. "한번은 남편이 촌에 갔는데 사람들이 제 글 보여주고 읽어보라면서 글쓴이가 뭐하는 사람일까 자기들끼리 추측을 하더랍니다. 나이는 70대인데 젊을 때 사진을 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더래요." 그래서 남편이 차마 "제 아내 글"이라고 말하지 못한 `웃픈` 사연도 있었다. 심지어 김 주무관의 아이들도 `엄마 촌스럽다`면서 엄마는 고무신 신고 한복 입고 보자기 책 보따리 메고 학교 다닌 줄 알고 있다고. 
 아버지가 고등학생 때 돌아가시다 보니 어머니가 4남매를 키우셨다. 김 주무관은 태생이 `길치`에다 도시 생활이 맞지 않는 천생 남해사람이라 빌딩 숲에서 살기 힘들어 다시 남해로 돌아왔다. "그래도 제일 큰 공장이 낫다. 월급도 안 밀리고"라는 어머니의 말씀대로 군청에 들어갔다. `하루빨리 엄마의 짐을 덜어주고 싶어` 공무원이 됐다. 그리고 현재 문화관광과 관광자원개발팀에서 일하고 있다. 개발팀이니만큼 큰 사업을 다루는 업무부서에서 김 주무관은 지역자원을 활용한 콘텐츠 사업을 하며 불철주야 열심히 일하고 많이 배우고 있다. 남해대교 관광자원화 사업의 하나로 얼마 전 벚꽃 핀 남해대교 일대에서 열린 `고향의 봄` 축제도 방문객과 지역주민에게 호응을 얻으며 성공적으로 치렀다. 
 "사실 제가 문화는 잘 모르지만, 예전 방식의 버스 관광보다는 요즘 사람들은 `핫플레이스`에 들어있는 역사나 이야기들을 알고 싶어해요. 저도 그런 게 좋아요. 우리 지역에 맞는 것, 남해스러운 것을 하고 싶어요." 
 김 주무관은 남해서 태어나 자랐고 남해에 대해 떠오르는 생각들을 풀어내고 있다. 남해에 살면서 조금이라도 남해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김연경의 남해일기` 연재는 마치지만 나중에 기회가 되면 글을 계속 써나가고 싶다.  
 "시원섭섭해요. 어린 시절 힘든 일도 있었지만 글을 쓰면서 떠오른 추억은 행복했고 좋은 걸 오래 생각하게 됐어요. 그래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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