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자락에 쌓인 금산(錦山)에는 이야깃거리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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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자락에 쌓인 금산(錦山)에는 이야깃거리도 많다
  • 남해타임즈
  • 승인 2022.04.18 10:15
  • 호수 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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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부경의 바래길 이야기 37 │ 지선3번 금산바래길

 남해군 상주면 상주리 금산 기념품 매점에서 시작하여 금산정상 봉수대, 문장바위, 단군성전앞, 헬기장, 상사바위, 좌선대, 제석천, 쌍홍문, 해수관음상, 3층석탑, 보광전, 기념품 매점까지 회귀하는 지선 3코스인 금산바래길은 2㎞이지만 제일 이야기가 많은 1시간 내외 난이도는 ★★★이다.
 금산으로 오르는 길은 상주리에서 1시간 이상 걸어서 오르는 길과 복곡 제1주차장에서 자가용이나 셔틀버스로 오르는 길, 두모에서 서불과차를 경유, 부소암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복곡주차장까지는 일반버스와 뚜벅이 버스가 하루에 오전에 3회,  오후에 3회 운행하니 잘 활용하면 도움이 된다.
 복곡 제2주차장에 내려 1km 남짓되는 거리를 20여분 걸어서 오르면 기념품 매점 앞에 도착하고 여기서 금산바래길 앱을 가동시키고 탐방안내도 안내판에서 개략적인 코스이동로를 보고 먼저 금산 정상을 찍고 반시계방향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여기는 국립공원 지역으로 바래길 스티커나 바래길 리본은 표시되지 않았다. 앱을 켜고 코스별 이동순서에 따라 이동하면 별다른 문제없이 완보할 수 있으며 오늘은 모처럼 특전사 출신이고 태권도 교관과 전 재향군인회 회장을 역임하였던 정현철(73)씨와 합동 취재에 나섰다. 남해금산은 1974년 12월 28일 경상남도기념물 제18호로 지정되었고, 2008년 5월 2일 국가문화재 명승 제39호로 승격되었다. 높이는 702m이다. 원래는 보태산이었는데 신라의 원효(元曉)가 이 산에 보광사(普光寺)라는 절을 세웠으니 보광산이라 하였고 고려 후기 이성계(李成桂)장군이 이 산에서 백일기도 끝에 조선왕조를 개국한 그 영험에 보답하는 뜻으로 산 전체를 비단으로 덮기 위해 비단 금(錦)자를 하사하여 금산(錦山)으로 부르게 되었다.
 또한 1660년 현종 때 왕실의 원당(願堂)으로 보리암이라고 하였다. 한려해상국립공원 내의 유일한 산악공원으로 기암괴석들과 문화 역사적 이야깃거리를 많이 품고 있는 전국의 명산이다. 금산 38경은 제1경 망대에서부터 38경 일출경까지 금산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천태만상의 기암괴석과 울창한 숲, 그리고 눈 아래로 보이는 바다와의 절묘한 조화는 전국 명산으로서 이름을 실감할 수 있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은 1968년 우리나라에서 4번째이자 해상공원으로는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경남 거제시 지심도에서 전남 여수시 오동도까지 300리 뱃길을 따라 크고 작은 섬들과 천혜의 자연경관이 조화를 이루는 해양생태계의 보고이다.
 가장 아름다운 바닷길로 이름난 한려수도는 71개의 무인도와 29개의 유인도가 보석을 점점이 박아놓은 듯하다.

금산정상에서. 남해읍 정현철 심천이장과 필자.
금산정상에서. 남해읍 정현철 심천이장과 필자.

 나무사이 대장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듯한 형리암을 사진에 담고 한 10분정도 155 나무계단과 숲속을 오르면 금산정상이 나오고 망대가 나오고 봉수대가 나온다.  우선 명품샷부터 찍고 설명을 들어 보자. 금산봉수대는 조선시대 동래 2거선의 간봉 제9로로서 최남단 봉수대였다. 봉수란 밤에는 불을 올리고(봉화봉烽) 낮에는 연기를 올려(횃불수燧) 급보를 전달하는 통신체계를 말하는데 1개봉부터 5개봉까지 있었다.
 이동원산, 창선대방산, 가천의 설흘산 봉수와 통했다고 한다. 도기념물 제87호로서 87년 5월 19일 지정되었으며 행정구역상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 상주리 257-3 번지에 위치한다.  금산 제1경이다. 자 앞쪽의 문장바위를 보자. 원래는 상제암, 나막신 바위, 문장암, 명필바위라 하기도 한다. 한림학사(임금의 명령이나 조서를 꾸미는 학자) 주세붕은 1522년(중종17)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正字)가 되어 사가독서한 후 검열·부수찬 대사성 등을 지내다가 이항의 소지를 공공연한 자리에 꺼낸 문제와 관련하여, 김안로의 배척을 받아 좌천되었다.
 그 후 곤양 군수를 거쳐 풍기 군수로 재직하기도 하였다. 1542년(중종 37) 백운동에 고려 말의 학자 안향의 사당을 세웠고 이듬해 백운동 서원인 소수 서원을 창설하였는데, 이것이 한국 최초의 서원이다. (세계문화유산 등재 2019년 영주 소수서원외 8곳) 주세붕 선생이 금산을 찾아 쌍홍문을 통하여 정상까지 올라와 본 후 자연경관에 감탄하여 글씨를 남겼는데 유홍문 상금산(由虹門 上錦山)  "홍문이 있으므로 금산이 으뜸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홍문으로 해서 금산 상봉에 오르다" 라고 말하는 사람마다 해석의 다름이 있는 금산의 제2경. 
 정상에서 하직하고 200m 떨어진 단군성전으로 간다. 소로길은 천연매트가 깔려있어 폭신하고 발에 무리를 주지 않으므로 금산의 안내표시판을 따라가면 별로 어렵지 않다. 
 단군성전(檀君聖殿)은 단군전, 단군사묘(檀君祠廟) 등으로 불리며, 한국의 국조(國祖)인 단군의 영정이나 위패 등을 두고 봉향하는 사당을 지칭한다. 단군성전에서 단군은 민족의 상징이 되고 있으며, 단군성전마다 매년 단군이 승하해서 산신이 되었다는 어천절 3월15일과 개천절 10월 3일 행사가 개최되기도 한다. 단군성전에 있는 단군은 종교적 차원의 신앙 대상, 국조 등 여러 형태로 인식되고 있다. 단군(壇君)은 고조선의 제1대(재위:BCE.2333∼BCE.1122) 왕으로 단군왕검(壇君王儉)·단웅천왕(檀雄天王)이라고도 한다. 천제(天帝)인 환인(桓因)의 손자이며, 환웅(桓雄)의 아들로 서기전 2333년 아사달(阿斯達)에 도읍을 정하고 단군조선을 개국하였다. 고조선과 단군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중국의『위서(魏書)』와 우리나라의『고기(古記)』를 인용한『삼국유사』기이편(紀異篇), 계연수의 『桓檀古記』에서 볼 수 있다. 한편, 고려시대의 기록으로 이승휴(李承休)의『제왕운기(帝王韻紀)』가 있으며, 『세종실록』지리지 등에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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