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탕국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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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탕국 전성시대
  • 남해타임즈
  • 승인 2022.04.18 10:17
  • 호수 79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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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의 남해일기

 따뜻한 햇살이 온몸을 비추기 시작하자, 점심시간을 활용해 산책을 하거나 회사와 가까운 카페에서 커피나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꽃도 피우게 된다. 1시간 동안의 시간은 망중한을 제대로 즐기게 한다. 시간을 적절히 잘 맞추지 못하면 식당에서도 카페에서도 긴 줄을 서게 되는데, 그것조차도 거뜬히 기다릴 수 있는 것이 쉼의 힘이 아닌가 생각한다. 마스크를 벗고 침묵을 유지한 채 조용한 가족처럼 점심밥을 먹고, 가까운 커피집으로 갔다. 난 얼죽아, 떠죽아의 유행에 끼는 `떠죽아`다. 늘 마시는 것을 선택하지만, 카운터 앞에서는 매번 메뉴판을 자세히 본다. 
 
 내가 메뉴선택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보였는지, 서울에서 남해로 오셔서 일하고 있는 분께서 메뉴를 추천한다.
 "맛있는 거 마셔요. 아포카토 어때요?"
 "아보카도예? 저는 그거 느끼해서 몬 묵긋던데예."
 "아포카토가 느끼하다구요? 달달한데…"
 "그게 달달해요? 저 임신했을 때 울엄마가 과일가게에서 아보카도가 좋다고 비싸게 돈 주고 사왔는데 몬묵었다 아입니까. 식물성 버터, 제 입에는 안 맞던데예."
 "아~~~ 아보카도? 하하하, 그건 아보카도, 이건 아포카토예요. 아이스크림에 커피를 부어 마시는 거예요."
 "아~~~ 아포카토? 흐흐흐, 저는 그 메뉴를 볼 때마다 커피숍에서 아보카도 샐러드를 파는긴가 생각했지예."
 엄마가 나에게 하던 말이 생각났다. 
 `모르는기모 가만히 있으몬 2등이나 간다. 함부래 먼저 입을 열어서 무식쟁이 티내지 말고, 처음 묵어보는 음식이 있으몬 쪼매 기다릿다가 넘들이 우찌 묵는지 보고 따라 묵으몬 된다` 그러면서 꼭 붙이는 말은, `엄마도 오데 가서 망신 안당허고로, 너그들 요새 묵는데 데꼬 가고 그리 해라` 효도의 강제도 때로는 산교육이었고, 진리였다. 

 어릴 적, 카페라는 공간보다 다방이 몇 군데 있었고, 여러 종류의 커피가 많지 않던 시절, 엄마는 수입품가게에 가서 보드라운 커피를 사오기 시작했다. 시골인 우리동네에 흔하지 않은 물품이었다. 그 원두커피를 사와서 동네에 상수도 배관공사가 있거나 마을안길 포장공사가 있거나 하면 추운날에는 펄펄 끓는 물을 부어 목구멍이 데일 정도로 뜨겁게, 더운날엔 얼음을 동동 띄워 시원하게 타서 인부들에게 대접했다. 
 "이집 커피는 뭔 약을 탔나. 아따 맛있네, 내 한잔 더 주소" 라든가
 "이 커피를 오데서 샀는가 좀 갤차주소, 우리 각시한테도 이런 거 좀 사노라 해야긋네"라든가 하면서 엄마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엄마, 엄마 마실라고 사놓은거 아이라? 매일 그거 다 타주몬 엄마 묵을 것도 없이 다 다라지삐긋다" 하면
 "커피 한잔 이기 암긋도 아인거 것해도 쎄멘을 넣어도 한삽 더 넣고, 보로꾸를 쌓아도 하나 더 쌓아줄기라."
 "엄마, 지금 와이로 쓰는긴가."
 "이기 와리오면 세상에 아닌기 오데 있네. 동네 온 손님한테 커피 한잔을 못타줘여. 조막만한기 어른일에 참견말고 방에 들어가라."
 
 우리가 초등학교 때 외가가 있던 동네로 이사를 왔더니 동네에 계속 살고 있는 삼촌들도 엄마 커피를 좋아했다. 
 "누님, 그때 그 커피 있심미까?"
 "하모, 있제. 한잔 타주까?"
 "설탕을 여~가 좀 달달하이 주시다. 저번꺼는 쪼매 씹데예."
 "그모 설탕을 넣어주라쿠제. 입 놔 뒀다 오따 쓸래."
 "얻어묵는것도 미안헌데, 염치없고로."
 "이미 얻어묵는기고, 한잔을 무도 내 입맛에 맞게 무야제."
 엄마는 쿨한 사람이었다. 
 
 우리 외삼촌은 내가 어릴 때 원양어선을 탔는데, 누나인 엄마가
 "커피 한잔 타주까?" 하면
 "누~ 내는 물커피로 주소."
 지금 생각하면 그게 아메리카노였다. 엄마는 촌에 살면서도 커피잔을 구비해놓고 커피를 타주면 삼촌은 검지손가락을 쭉 빼고 폼을 내면서 쓴커피를 삼켰다. 마치 시골살이에 세련된 본인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서양인들이 마시는 탕국, 지금의 커피는 종류도 아주 다양해졌다. 예전에는 커피, 설탕, 프리마를 취향에 따라 비율을 넣었지만, 요즘에는 `바리스타`라는 자격도 있어 각광받고 있다. 나는 아메리카노를 주문할 거지만, 오늘도 메뉴판을 자세히 본다. 체인점 커피숍이 많아지고 있지만, 바리스타의 손맛까지 느낄 수 있는 드립커피나 남해에서 나는 식재료와 콜라보할 수 있는 식음료도 함께 개발되면 좋겠다. 
 
*얼죽아 : 얼어죽어도 아이스아메리카노
*떠죽아 : 떠워죽어도 아메리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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