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
상태바
인생은 아름다워
  • 남해타임즈
  • 승인 2022.04.29 10:43
  • 호수 79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연경의 남해일기

 초등학교 졸업반을 앞두고 있는 딸아이의 수학여행 안내가 공지되었다. 여행일수와 장소의 학부모 설문조사서를 가지고 왔길래 아이와 어려운 문제를 풀어내는 수험생처럼 머리를 맞댔다.
 "엄마 때는 중학교 2학년, 고등학교 2학년 때 수학여행을 갔는데, 요즘에는 초등학생도 수학여행을 가네. 재밌겠다. 은찬이 의견은 어때?"
 "엄마, 저는 코로나 때문에 여행도 못 갔는데 서울쪽으로 멀리 2박3일 다녀오고 싶어요."
 "엄마 생각에도 이왕 가기로 결정을 했으면 남해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다녀오는 게 좋겠는데."
 "우리 친구들도 멀리 여행가는 것을 원하는데 아무래도 부모님 허락 받기가 쉽지 않겠죠?"
 "수학여행이라 쿠는 거는 멀리가서 친구들하고 같이 먹고 자고, 자는 친구 얼굴에 항칠도 해야 추억이 남는 긴데… 때가 때인 만큼 당일치기가 제일 많은 의견이 나올거 같네. 엄마의견도 당일치기. 대신, 지역은 딸이 원하는 곳으로 표기할께."
 "엄마, 그럼 난 부산. 부산에 아주 큰 놀이공원 생겼대요."
 "수학여행하면 경주 아이가. 경주 불국사 다보탑도 보고."
 "우리 남해도 절이 많이 있는데, 수학여행까지 가서 그런 곳에 가는 건 싫어요. 엄마 말처럼 다리 밖으로 나갈 때는 남해에서 체험할 수 없는 걸 하는 게 더 좋지 않아요?"
 "그리 그리, 엄마도 중학교 때 놀이공원 가서 청룡열차 같은 거 탄 기억이 나네."
 
 학창시절의 수학여행은 즐거웠다. 학교에서 전세 계약한 대형버스가 우리보다 먼저 공설운동장에 기다리고 있었다. 등교하는 날과 다르게 지각하는 친구 하나 없는 왁자지껄한 풍경이다. 선생님은 수학여행 일정과 낯선 곳에서 조심해야 할 점, 단체여행에서 지켜야 할 점을 지루하리만큼 오래도록 침을 튀겨가며 설명하셨다. 선생님 말씀에 귀 기울어야 할 우리들은 젯밥에 더 관심이 많았다. 친구들이 새로 사 입고 온 옷이나 신발, 지갑에 들어있는 용돈의 액수가 얼마인지 서로 공유하며 떠들썩했다. 교실에서의 정해진 자리보다 버스에서는 앉고 싶은 친구들과 모여앉아 나누는 이야기는 끊일 줄 몰랐다. 버스 좌석에 둘씩 짝을 맞춰 앉고, 중간통로 없는 버스의 맨 뒤 다섯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애썼다. 한때 유행하던 유머, 가운데 자리에 안전벨트를 안하고 앉으면 운전기사가 급브레이크를 밟았을 때 튀어 나가게 되어 "기사님, 저 부르셨습니까?" 하고 인사하고 돌아온다는 만담을 하며 웃어댔다. 버스가 움직이면서 약간 높은 과속방지턱을 넘어갈 때면 바이킹을 탄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버스의 맨뒷자리는 지나고 생각해보면 흔들림이 더 심해 멀미가 더 올라오는 자리였지만 떠드느라고 속 울렁거림도 멀미약 없이 잊게 한 추억의 시간이었다.
 
 딸아이가 어릴 때 짜릿한 기분이 어떤 거냐고 물었다. 나는 짜릿한 기분은 사이다를 금방 따서 마시면 뽀글뽀글한 탄산이 톡 쏘면서 짜릿한 맛이 난다고 했다. 
 "누가 짜릿한 맛을 알려주데?"
 "친구가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터를 탔는데, 기분이 짜릿하다고 했어요. 엄마는 타 봤어요?"
 "하모, 엄마도 수학여행 갔을 때 친구들이랑 탔는데, 엄마는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는데… 친구는 용감하네."
 "친구가 짜릿한 거라고 하는데, 나는 못 타봐서 그 기분을 몰라요."
 "그래, 가보자. 롤러코스터 타러 가자."
 다양한 놀이기구는 키 제한이 있었지만, 아이 둘 다 할 수 있는 롤러코스터는 다행히 아이들이 키를 통과해 기계 위에 앉아 간이 콩닥콩닥했다. 경험자인 남편과 나는 긴장에 긴장의 연속이었고, 무경험자인 아이 둘은 기대감에 어쩔줄 몰라 했다. 한바퀴를 돌고 시작한 자리로 돌아왔을 때, 아들은 재미있다고 한번 더 도전을 원하고, 딸아이는 "아빠, 내 심장이 땅에 콩~ 떨어졌어요. 이런 게 짜릿한 기분이면 저는 롤러코스터는 안 탈래요."
 
 인생은 롤러코스터처럼 차근차근 올랐다, 쌩 하고 내려오기도 하는 굴곡도 있었지만, 그 굴곡이 노력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좋은 것, 큰 것들을 차지하려고 애쓰던 물욕도 있었지만, 작은 것에 만족하는 내 마음 속에 큰 그릇들을 빚어냈다. 그 만족감과 감사함은 남해에서 살고 있기에 가능하였고, 앞으로도 남해에서의 행복하고 아름다운 시간이 펼쳐지리라 믿고 있다. 인생은 아름다워~
 2022년 4월 28일자를 마지막으로 `김연경의 남해일기` 연재는 마칩니다. 게으르지만, 천천히 글을 쓰고, 오래도록 생각했습니다. 졸필에도 호응해 주시고, 공감과 격려의 말씀을 주신 많은 분들 덕분에 행복한 글쓰기를 했습니다.
 그동안 주말 중 하루는 엄마 처신을 못했는데 앞으로는 아이들에게 조금 더 사랑을 나누어 주겠습니다. 지면을 할애해주신 남해시대와 옛 추억을 함께 해주신 애독자 여러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