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군인의 삶이 아닌 한 사람의 일대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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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군인의 삶이 아닌 한 사람의 일대기다"
  • 전병권 기자
  • 승인 2022.06.17 10:00
  • 호수 79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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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월남전 참전유공자 흔적 남기기 | 남해창선고등학교 신문편집부 『정문덕 병영 회고록』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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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선고등학교 신문편집부 8인과 교사들 합심해 책 집필
6·25&월남전 참전유공자 흔적 남기기 전시회 교육효과 높아

매년 개교기념일(4월 2일)마다 전교생이 남해군의 명산을 등반하는 남해창선고등학교(교장 최성기). 창선고는 올해 금산 보리암에 올랐는데 다른 개교기념일보다 서둘렀다. 지난 3월 30일부터 남해유배문학관 특별전시관에서 6·25&월남전 참전유공자 흔적 남기기 전시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특별한 전시회를 관람하기 위해 평소보다 시간을 앞당겨 등산을 마치고 유배문학관으로 향했다.
내심 걱정이었다. 학생들이 잘 모르는 전쟁, 군대, 역사 이야기들이 소개되고 있기 때문에 호응이 얼마나 있을지 말이다. 그러나 이 걱정을 비웃듯 학생들의 집중력은 높았고 눈물을 보이는 학생들도 많았다.
"전쟁과 안보, 보훈에 대한 교육을 바로 이곳에서 할 수 있구나"라며 "우리 아이들이 공감하고 아픈 역사이지만 꼭 알아야 하는 이 내용을 기록하는 모습에 감동"이라고 속삭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최성기 교장의 이야기다.
여러 6·25 참전 유공자 중 해병대 창설요원인 정문덕(남해읍 아산리 출신, 1926~2016) 선생의 이야기가 원고지에 고스란히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그가 직접 기록한 글이다. 6·25&월남전 참전유공자 흔적 남기기 추진위원회에서도 이 글만큼은 원고지가 낡기 전에 책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한자와 고어, 옛 지명, 오타 등 현대 글로 바꾸기에는 인력이며 시간이 많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남해창선고등학교 신문편집부(부장 2학년 박정민)는 "우리가 해보겠다"고 자처하고 학교 선생님들과 같이 집필 작업에 들어선다. 그렇게 6월 6일 『정문덕 병영 회고록』이 탄생했다. 지난 10일 창선고를 방문해 신문편집부(2학년 박정민·강지우)를 만나 책 제작과정과 전쟁이 10대들에게 주는 의미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

남해창선고등학교 신문편집부가 6월 6일자로 『정문덕 병영 회고록』 책을 발간했다. 사진은 왼쪽부터 1학년 김서현, 2학년 강지우, 1학년 백나영, 2학년 박정민, 2학년 강승민, 2학년 권지민, 1학년 김정원, 2학년 박신우 학생이다.
남해창선고등학교 신문편집부가 6월 6일자로 『정문덕 병영 회고록』 책을 발간했다. 사진은 왼쪽부터 1학년 김서현, 2학년 강지우, 1학년 백나영, 2학년 박정민, 2학년 강승민, 2학년 권지민, 1학년 김정원, 2학년 박신우 학생이다.

 책을 집필하기에 앞서
 군대를 다녀온, 전쟁을 경험한 세대도 아닌 10대 고등학생들에게 6·25&월남전 참전유공자 흔적 남기기 전시회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박정민 학생은 "책이나 미디어에서만 6·25, 월남전과 같은 전쟁을 접해봤지 자세하게 또, 물품들을 직접 본 건 처음이라 놀랐다"며 "따지고 보면 100년도 안 된 전쟁 역사인데, 목숨을 잃어가며, 다쳐가며 나라를 위해 헌신한 유공자들이 존경스러웠다"고 말했다.
 강지우 학생은 "매년 6월 25일은 묵념을 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갖는 날로만 알았는데, 너무 모르고 있었구나 싶었고 한편으로는 반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입시로 바쁜 고등학생들에게 군대나 전쟁 이야기는 남의 일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시관이 주는 분위기나 무게, 전쟁의 징표들은 학생들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았다. 
 이와 관련해 박정민 학생은 "전시관 한쪽에 친구들이 모여 있어 가서 봤더니, 자신의 할아버지 물품들과 내용이 전시되고 있었다"며 "그 친구도 자신의 할아버지가 국가유공자인 건 알았지만, 이런 내용이 있었고 물품들은 처음 봤다고 말했다. 그만큼 전쟁이 다른 나라, 지역의 이야기가 아니라 가까운 우리 남해에도 영웅들이 있었음을 새삼 깨닫는 시간이었다"고 밝혔다. 
 특히 전시장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묻자, 강지우 학생은 "6·25나 월남전이나 추억록과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일기나 편지를 쓰는 그 순간이 혹은 그 다음 날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 군복을 입고 웃으며 사진을 찍는 그 순간이 인생의 마지막 흔적이 될 수도 있는데, 환한 미소를 지으며 찍은 사진이 기억에 남는다"고 밝혔다.
 박정민 학생은 "추억록의 한 구절이 인상 깊었다. `전쟁이 보람된 여행`이라는 표현"이라며 "생사가 오가는 곳에서 그렇게 표현한다는 게 문학적이고 예술적이라고 느껴졌다"고 회상했다.
 

박정민(오른쪽)·강지우(왼쪽) 학생과 창선고등학교 교장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박정민(오른쪽)·강지우(왼쪽) 학생과 창선고등학교 교장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정문덕 병영 회고록 집필
 학생들은 전시회를 다녀온 뒤 각자의 소감문을 적어 제출했고, 신문편집부는 곧바로 『정문덕 병영 회고록』 집필에 나섰다. 
 호기롭게 나섰지만 학생들에게는 낯선 한자와 옛날 말과 지명, 오타 등이 난감했다. 선생님들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정민 학생은 "저와 지우를 비롯해 우리 부원인 2학년 강승민·박신우, 1학년 김서현·백나영·김정원 학생 총 8명은 동아리 시간을 비롯해 개인시간까지 써가며 책을 만들기 시작했다"며 "원고지에 있는 글을 하나씩 컴퓨터로 옮기며 모르는 글이나 한자는 선생님의 도움을 받으며 한 장씩 채워나갔다"고 설명했다.
 강지우 학생은 "교정하면서 이 문장을 쓸 것인지 말 것인지 등 서로 의견충돌도 있었는데, 조금씩 양보하면서 좋은 문장을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4월에는 중간고사가 있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는 어쩌면 가혹한 기간이었을 수도 있지만 의연하게 대처했고 6월 6일에 맞춰 책이 발간될 수 있었다.
 책을 출간한 지금, 10대 학생들에게 6·25&월남전 참전 유공자들은 어떤 의미일까? 
 강지우 학생은 "따지고 보면, 우리 또래이거나 2~3살 많은 나이일 때 전쟁에 투입이 됐는데, 용기와 희생정신이 정말 대단하고, 한편으로는 상상이 잘 안 된다. 그나마 흔적 남기기 전시회를 통해 많이 접할 수 있었다"며 "기록이라는 게 정말 중요하다. 특히 정문덕 선생님 이야기는 생명과 보훈, 역사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아주 뜻깊은 내용이다. 이 기록에 동참할 수 있어서 뿌듯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박정민 학생은 "이웃집에 잘 알고 지내던 할아버지가 계신다. 그런데, 그 분이 국가유공자임을 몰랐는데, 대문을 보니 국가유공자 명패가 붙어 있었다"며 "책을 만들기 전까지는 이 명패에 관심도 없었고, 무슨 의미인지 몰랐는데, 그 의미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박정민 학생 말처럼, 10대 학생들이 국가유공자 명패의 의미를 알게 된 것만 해도 교육적인 의미가 있다. 또, 강지우 학생의 말처럼, 기록이 갖는 힘과 의미, 그리고 기록을 해야 하는 이유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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