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비어서 부끄럼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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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비어서 부끄럼 없구나
  • 남해타임즈
  • 승인 2022.08.16 14:09
  • 호수 8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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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향, 나의 삶 149 │ 碧松 감충효

비워라 텅 비워라 무거운 삶의 무게 
비워 낸 그 공간이 이리도 정갈하니  
비로소 廓其無兮 고향마을 찾는다 
 
 廓其無兮(곽기무괴혜)란 말은 이조시대 숙종조에 남해에 두 번이나 유배되어 온 소재 이이명 선생이 지은 매부(梅賦)에 나오는 말로 `텅 비어서 부끄럼 없구나`라는 뜻으로 시적 화자의 깨끗한 마음과 의리를 대나무의 속에 비유하여 쓴 말이다. 대나무는 속이 비어 있으나 곧게 자라기 때문에 옛날부터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식물로 여겨왔다. `대쪽 같다`라는 말은 부정과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지조를 굳게 지킨다는 뜻이다. 소나무와 함께 `송죽(松竹)같은 절개`로 표현되기도 한다. 또한 대나무는 사군자와 십장생에 속할 정도로 아주 귀하게 여겨왔고 아주 오래 전 부터 특별한 성분을 지닌 식물로 이미 옛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생선 그릇에 대나무 잎을 깔아두면 비린내가 없어진다거나 먼 길 여행 때 대나무 통에 마실 물을 넣어 신선도를 유지했는가 하면 밥이나 떡을 지어 대나무 그릇에 오랫동안 보관할 수도 있었다. 일본에서 최고급 생과나 떡의 포장에 댓잎을 사용한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대나무는 탁월한 항산화성과 부패를 막는 성분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죽림 속은 서늘하기도 하지만 시체도 잘 부패하지 않는 현상이 이러한 것들을 증명해주는 것 같다. 그리고 대나무는 그 생명력이 끈질겨 히로시마 원폭과 베트남 전쟁 시 고엽제 살포 속에서도 살아남아 유일하게 싹을 틔운 식물이기도 하다.  
 대나무는 사실사철 푸르고 속은 텅 비어 있음에 물욕을 채우지 않는 청빈함의 상징이 있고 역설적으로 그 공간에 고결함과 덕을 채울 수 있다는 여유를 제공하는 사유의 나무다.
 필자가 최근에 출간한 `시조가 있는 산문`의 제목으로 소재 선생의 매부에 나오는 `텅 비어서 부끄럼 없구나`의 시문을 차용한 것은 비록 지고지순의 삶이 어려울지라도 포기하지 말라는 자성예언적 좌우명으로 필자의 저서에 기록으로 남겨 더욱 곧고 바르게 나아가기 위한 의지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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