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넘치는 작은 마을, 모자란 것 한 가지는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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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넘치는 작은 마을, 모자란 것 한 가지는 무엇?
  • 김희준 기자
  • 승인 2022.09.02 13:43
  • 호수 8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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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에서 만난 사람들 │ 차면마을 한정애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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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면마을 음식봉사 한정애 씨, 어르신들 안전하게 쉴 곳 있었으면

고현면 차면리는 노량대교를 건너오는 손님들이 비교적 먼저 만나는 마을이다. 19번 국도를 주변으로 윗마을과 아랫마을이 나뉘어 있고 얕은 산 너머에 소차면마을까지 3개 마을이 모두 차면마을이다. 윗마을은 입구에서부터 좁은 길을 따라 올라가며 24호 정도가 살고 있는데, 집집마다 감나무, 유자, 앵두 등의 유실수를 하나씩은 갖고 있고 비탈면에 땅을 일궈 두릅, 가지 등 갖가지 채소를 재배하고 있다. 마을 주민 대부분은 65세 이상의 노인이지만 몸을 움직일 수만 있으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밭일을 나간다. 참으로 부지런한 마을이다. 이 부지런한 마을 어르신들을 부모처럼 모시는 사람이 있어 지난달 19일, 윗차면마을 정자나무 아래서 만났다. 〈편집자주〉

어르신들께 음식을 대접하는 한정애 씨, 8월 더위에 땀 훔칠 수건을 둘렀다.
어르신들께 음식을 대접하는 한정애 씨, 8월 더위에 땀 훔칠 수건을 둘렀다.

마을 어르신들, 모두 내 어머니
 오후 4시경, 마을 입구의 정자나무 아래 평상으로 어르신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다. 저녁식사는 너무 이르지만 출출할 시간, 어느새 평상을 가득 채운 어르신들 사이에서 구수한 호박전을 바삐 나르는 손길이 보인다. 이 마을 입구 도로가에서 과일 판매장을 운영하는 한정애(61·하남농장) 씨다. 이마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힌 채로 연신 간이부엌과 평상을 분주히 오가고 있다. 한정애 씨는 날짜를 정해놓지 않고 수중에 음식거리가 들어오면 정자 앞 간이부엌으로 가 감자전, 호박전, 죽, 짜장면 등을 만들어 어르신들과 함께 즐긴다.
 하동군이 고향인 그녀는 하동의 과수원에서 수확한 과일을 1997년부터 설천면에서 판매하기 시작했고, 지난 2020년에 차면으로 판매장을 이주해왔다고 한다. 남편은 하동에서 과일농사를 짓고, 한정애 씨는 생활 대부분을 남해에서 하고 있다. 마을 어르신들에게 음식을 해드리고 말동무가 되어 드리게 된 계기는 갑자기 찾아왔다. 
 "몇 해 전에 어머님이 돌아가셨는데, 임종을 지키지 못해 가슴 속에 한이 됐어요. 어느 날, 장사하다 문득 어르신들이 정자나무 아래 모여 있는 걸 봤는데, 거기 앉은 분들이 다 제 어머니란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 길로 당장 만들 수 있는 음식을 대접했고, 이후로 음식을 나누며 어르신들이 드시는 모습을 보고 싶어 멈출 수가 없었다.

한사코 돕기를 자청한 할머니가 바닥에 앉아 식기를 닦고 있다.
한사코 돕기를 자청한 할머니가 바닥에 앉아 식기를 닦고 있다.

부엌인가 창고인가
 "참으로 고맙제, 부엌도 아닌 부엌에서 이 더위에 음식 해 나르는 게 쉬운 일인가." 같은 마을 양봉근 씨는 한정애 씨에게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이다.
 과연 한정애 씨가 드나드는 정자 옆의 부엌은 말이 부엌이지 창고나 다름없었다. 시멘트로 덮은 블록벽에는 통풍이 안 되는 작은 창 하나와 노란 전등 하나, 작은 싱크대가 있을 뿐이었다. 한정애 씨는 이제는 요령이 붙었다며 전을 뒤집다가 얼굴을 밖으로 쏙 내민다. 
 "이렇게 얼굴을 좀 식히면 나아요."

윗차면마을 입구 정자나무 아래 벽없는 사랑방이 열렸다.
윗차면마을 입구 정자나무 아래 벽없는 사랑방이 열렸다.

그녀가 바라는 한 가지
 "아랫마을에 마을회관이 있지만 윗마을 어르신들은 꼭 참석해야 하는 행사가 아니면 잘 건너가질 못하세요. 신호 바뀌기 전에 건너기가 쉽지 않은데다 큰 차들이 신호를 무시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정자나무라도 있어 오전에 밭일 끝내면 여기 모여 담소도 나누지만 좀 더 좋은 환경이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있죠. 임시 경로당으로 쓰는 컨테이너에는 에어컨이 있지만 답답해서 잘 안 들어가세요. 겨울이 오면 바닥만 따뜻해서 건강 걱정도 되구요. 화장실이 없는 것도 큰 불편이에요. 예산이니 뭐니 복잡한 건 몰라요. 그저 작은 경로당이 따로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과연 한정애 씨와 주민들이 바라는 대로 이 작은 마을에 경로당이 생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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