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손 때 묻은 팔레트에 물감을 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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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손 때 묻은 팔레트에 물감을 짜다
  • 전병권 기자
  • 승인 2022.10.14 10:35
  • 호수 8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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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정착 8년차, 미술 입문 3년차
제2회 개인전 오는 17일(월)부터 29일(토)까지
13일간 대장경판각문화센터에서 열어

 딸이 애용했던 화구가방을 조심스레 펼친다. 인생 2막을 살아가고 있는 엄마에게 있어서 거창하게는 화가, 소박하게는 취미라는 이유로 팔레트에 물감을 짜낸다. 그러고는 붓을 잡고 서서히 작품하나가 완성된다. 부족함을 느끼고 다시 그린다. 선생님의 지도를 받고 두 번째, 세 번째, 다섯 번째가 돼서야 스스로도 조금은 만족할 만한 작품을 그려냈다. 이는 그녀의 오랜 직업병일 수도 있는 예습과 복습하는 습관일 수도 있다. 
 남편 고송문 씨의 고향 고현면 탑동마을에 완전히 정착한 지 8년차에 접어든 오경숙(73) 씨가 행복을 좇아가는 단편이다. 

지난 11일 고현면 탑동마을 오경숙 씨의 집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녀의 뒤편에는 다랭이마을 풍경을 그린 〈거친 삶의 아름다움〉이라는 작품과 딸 고송이 씨가 사용한 화구가방, 그리고 손에는 고송이 이름표가 붙은 검은 팔레트와 물감이 인생 2막을 함께하고 있다.
지난 11일 고현면 탑동마을 오경숙 씨의 집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녀의 뒤편에는 다랭이마을 풍경을 그린 〈거친 삶의 아름다움〉이라는 작품과 딸 고송이 씨가 사용한 화구가방, 그리고 손에는 고송이 이름표가 붙은 검은 팔레트와 물감이 인생 2막을 함께하고 있다.

초등학교 교사 41년, 교감 퇴직
 충남 서산시에서 태어난 오경숙 씨는 둑방길을 걷거나 천진난만하게 뛰기도 하며, 꽃과 나무, 하늘을 보는 감수성 풍부한 소녀였다.
 오경숙 씨는 "지금의 서산도 좋고 아름답지만, 학창시절을 보낸 그때의 서산에 애틋함이 남아있어요. 남해는 그 애틋함을 느낄 수 있고, 남해만의 자연이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예쁜 곳이랍니다"라고 말했다. 
 선생님의 부푼 꿈을 안고 1970년 11월 1일 경기도 이천시 소재 신둔초등학교에 첫 발령을 받은 오경숙 씨. 교사로서 그녀가 미술과 가까워질 수 있는 첫 계기이기도 했다. 
 당시 신둔초등학교는 도자기를 만드는 일종의 연구학교로서 오경숙 씨가 담당교사로 참여하게 된 것. 그렇게 시작된 교직 생활에서 아이들이 각종 대회나 공모전에서 입상해오면서 보람을 느끼는 그런 교사였다. 또, 연차가 쌓이면서 창밖에 보이는 소소한 풍경을 남모르게 그려오며 그림을 그린다는 작은 취미도 갖게 됐다.
 2012년 2월 20일 교감으로서 41년의 교직 생활의 마침표를 찍었고, 허전한 마음을 달래고자 2014년 봄 시어머니가 직접 지은 현재의 집에 완전히 정착하게 된다. 
 
인생 2막 남해문화원 서양화반
 인생 2막, 무엇으로 채워나갈까? 남해문화원에 첫 발을 내딛은 오경숙 씨는 몇 년 뒤인 2019년 신설된 서양화반에 운명처럼 이끌렸고, 하미경 서양화가의 지도 아래 현재까지 결석 한 번 없이 출석하는 수강생으로서, 모범생으로서 화가의 길에 접어들고 있다.
 오경숙 씨는 "인생 2막을 채워가는 데 있어서, 제게 남아 있는 시간은 제가 살아온 시간보다 적기 때문에 더 열심히 성실히 임할 수밖에 없어요"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그런 열정을 진작 알아챈 하미경 화가도 진심으로 열과 성을 다해 가르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생 2막 만난 행운 중 손에 꼽힐 정도로 감사하다고 한다. 이와 함께 남편 고송문 씨에게도 감사하다는 오경숙 씨. 그녀는 남편이 수업이 있는 날에는 군말 없이 운전기사로서 매일 같이 임하고 전시와 관련해서도 든든한 후원자로서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특히 그림 초보로서 첫 시작은 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딸이 쓰던 화구를 선택한 오경숙 씨. 그녀는 "송이가 사용하던 거라 애착이 가더라고요. 함께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요"라며 "그림 그린 지도 3년 차에 접어드니 올해에는 딸이 새로운 화구를 사주더라고요"라면서 자랑했다. 
 
1회 개인전 야행, 앙코르전 개막
 남해문화재 야행 축제가 지난 8~9일까지 남해유배문학관과 남해읍 일대에서 펼쳐졌는데, 오경숙 씨도 작가로서 초청을 받아 생애 첫 개인전을 열게 됐다. 남해향교에서 `화전별곡`이라는 주제로 그동안 그린 남해의 풍경을 담은 15점의 수채화 작품을 전시했다. 
 오경숙 작가는 "모자란 실력인데 운 좋게 좋은 기회를 만났어요. 많은 분들이 응원과 용기를 주셔서 행복했어요"라고 소감을 밝혔다. 
 예상보다 빨리 찾아온 개인전이었지만 연이어 좋은 기회를 맞이한 오 작가. 오는 17일(월)부터 29일(토)까지 대장경판각지문화센터에서 앙코르 전시를 이어가게 된 것이다. 야행 기간 미처 관람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야행에서 선보인 작품 15점을 그대로 전시한다.
 오 작가는 "전공자도 아니고 늦게 시작한 그림이지만, 제 그림을 보신 많은 분들이 `아!` 소리가 나올 정도로 영감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라며 "앞으로도 자연을 계속 그리고 싶어요. 아름다운 자연을 담기에는 제게 남은 시간이 부족하거든요. 요즘같이 맑고 쾌청한 가을 하늘을 보는 것도 낙이랍니다"라며 "구름도 보고, 산도 보고 어떻게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도 하지요"라는 오경숙 씨.
 10대 소녀가 미소를 지으며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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