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권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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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권하는 사회
  • 남해타임즈
  • 승인 2022.11.25 10:14
  • 호수 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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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이현숙 칼럼니스트
이  현  숙칼럼니스트
이 현 숙
칼럼니스트

 가을을 일컬어 독서의 계절이라 한다. 나아가 4월 23일은 유네스코(UNESCO)가 제정한 `세계 책의 날`이다. 모쪼록 연중행사 또는 일회성 이벤트의 대상이 아닌, 연중무휴 지식과 정보의 샘으로 책이 널리 활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육신의 생존을 위해 음식이 필요한 것처럼 정신과 영혼에 필요한 식량이 바로 책이다. 정녕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책은 인생의 나침반이자 인간의 편협하고 편중된 사고나 시각을 교정해 주는 균형추이기도 하다. 때로 엄한 스승이며 다정한 연인이며 친근한 벗이다. 무엇보다 책과 친해지면 외롭거나 심심할 틈이 없다.  
 사노라면 괴로움과 슬픔에 맥없이 굴복당할 때도 있지만 책에서 얻은 영감과 지혜로써 이를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그리고 평생 몸소 체험할 수 있는 일이란 극히 제한적인데, 독서를 통한 간접 체험에는 한계가 없다. 독서는 비용적인 측면에서 경제적인 데다 시간·장소 불문하고 즐길 수 있어 남녀노소가 전천후 알뜰 취미로 삼을 만하다. 돈이나 귀중품과 달리 머릿속에 저장한 지식은 도난당할 염려도 없다.
 특히 자녀 교육에 있어 독서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인류가 수천·수만 년 동안 축적한 지식을 자양분 삼아, 책 숲에서 잔뼈가 굵은 자녀는 대부분 올곧은 어른으로 성장한다. 그러므로 자녀에게 책 읽는 습관을 물려주는 것은 재산을 물려주는 것 못지않다.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을 때도 책 선물이 제격이다. `김영란법`이 무색해지게 책 선물을 주고받는 양측 모두 흡족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인간성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정신세계가 쩍쩍 갈라진 마른논처럼 황폐해지는 요인 중 하나는 세상과의 소통 부족이다. 남들은 모두 행복에 겨운데 왠지 자신만 홀로 불행한 것 같은 착각이 상대적 박탈감을 불러일으키면서 스스로 고립되고 소외된다. 책과 더불어 너른 세상 속 인간군상의 각양각색인 삶을 접하다 보면, 적어도 `우물 안의 개구리`식 고립감이나 열등감에는 빠지지 않는다.
 필자는 건강체가 못 되어 어찌 보면 신언서판(身言書判) 첫머리부터 손해나는 위인이다. 하지만 일 년 365일 책상 앞에 붙어살면서도 권태로움을 모르니 청복(淸福)은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것도 업(業)인지, 살고 싶으면 책을 끊으라는 경고를 주치의로부터 여러 차례 받고도 그게 안 되었다. 여전히 골골하는 신세이지만, 장르를 무시한 잡식성의 독서 취향 덕에 제법 다채로운 독서 이력을 쌓으며 살아온 지난날에 후회는 없다. 

 한글을 깨우치고 이원수 동화전집·안데르센 동화집과 첫 대면한 뒤, 한번 손에 들어온 책은 책장이 나달나달해지도록 읽고 또 읽었다. 그런데 오래지 않아 그토록 재미나던 동화책들이 갑자기 싱거워졌다. 결국 책 탐색에 나섰고 대안으로 찾은 게 가정대백과사전이다. 거의 어른 손 한 뼘 두께에다 압도적인 중량감의 책을 통독하고 나니 거칠 게 없었다. 그때부터 황순원, 현진건, 김유정, 김동리, 김동인, 나도향, 염상섭 등 국내 작가들의 소설을 탐독했다. 급기야 외국 작가인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도 손을 대었다. 짐작컨대 그때 초등학생 주제에 `책 조숙증`이 심했던 것 같다. 
 한때는 세계문학에 깊이 탐닉했다. 알퐁스 도데의 『별』『마지막 수업』,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차륜 밑에서』,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마리오 푸조의 『대부』,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스탕달의 『적과 흑』, 펄벅의 『대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안나 카레리나』, 앙드레 말로의 『인간의 조건』, 알베르토 까뮈의 『이방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아쿠다가와 류노스케의 『나생문』『거미줄』 등 장르 불문하고 책과 물아일체가 되었다. 
 그래도 내 인생의 `독서 전성기`는, 아이가 유치원에 입학한 직후부터 모자가 합심하여 연간 수백 권을 족히 읽어 대던 시절이다. 아이 눈높이에 맞춰 대화할 요량으로 아이가 읽는 책을 같이 읽었는데, 책 감당이 안 되어 북 클럽에 가입하고 아이가 학교 도서실에서 하루가 머다 하고 책을 빌려 왔다. 물량 공급이 원활해지자 책에 대한 허기와 갈증이 해소되었다. 새벽 서너 시면 일어나 한두 시간 책을 읽은 뒤 아침상을 차리고 남편 출근과 아들 등교를 돕고 다시 책상 앞에 돌아와 책을 읽다 보니 십 년 세월이 뚝딱 흘러갔었다.
 독서의 묘미는 단연 끈기와 뒷심이 필요한 대하장편소설의 독파에 있다. 당연히 장시간의 수고에 따른 심리적 보상이 따르는데, 마지막 권 마지막 책장을 넘길 때의 성취감이 압권이다. 태백산맥, 삼국지, 한강, 혼불, 람세스, 오싱 등을 포함하여 성서와 불경의 일독을 추천한다. 금강경·법화경·화엄경 외에도 남회근 선사나 오쇼 라즈니쉬의 책들이 불교에 관한 호기심을 잠재우는 데 도움이 된다. 개인적으로 독서 목록 최상위에 올린 `인생 책`은 노자의 `도덕경`이다. 자연의 심오한 이치와 인간의 도리를 담은 철학서이자 최상의 용병술을 담은 군사전략서이며 정치인의 바른 처세를 강조한 정치지도서라 평가한다.  
 만산홍엽도 절정을 넘긴 이때 얼룩덜룩한 가을 산의 끝물 풍광에 가슴이 살짝 저리다. 그런데 설령 이 계절에 책과 가까이할 기회가 없었더라도 너무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독서삼여(讀書三餘)`라 하듯, 아직 우리에게는 책 읽기 알맞은 때인 `겨울과 밤과 비 내리는 날`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소설책 대신 만화나 서화집도 좋다. `청소부 밥 아저씨`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어른이 읽어도 좋은 동화책도 많다. 책에 과몰입하여 몽상가가 되지는 말고, 거북목과 시력 손상 정도에 유의한다면 책 중독의 부작용은 딱히 없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난장을 벌이느라 정작 본연의 업무에는 소홀해도 세비는 꼬박꼬박 수령하는,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비효율적 집단에 한 가지 긴급 제안을 하면서 글을 마칠까 한다. 일 년에 하루 특정일을 잡아 그날만큼은 일체의 정쟁을 멈추고 미리 선정한 책을 읽고 와서 국회 본회의장에서 신랄하게 토론을 펼치는 것이다. `고성과 욕설이 오가는 국회` `드잡이하는 국회`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아울러 우리 사회가 `술 권하는 사회(소설가 현진건의 작품 제목)`에서 `책 권하는 사회`로 진일보할 수 있도록, 독서 인구의 저변 확대를 위한 참신한 아이디어들이 쏟아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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