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개 돌탑 쌓으며 서로의 행복을 비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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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개 돌탑 쌓으며 서로의 행복을 비는 마을
  • 김수연 기자
  • 승인 2022.12.02 15:28
  • 호수 8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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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탐구생활 2 | 고현면 대사마을 이야기
고현면 대사마을 입구에는 수령이 100년가량 된 느티나무 두 그루가 서 있는 정자쉼터가 있다.
고현면 대사마을 입구에는 수령이 100년가량 된 느티나무 두 그루가 서 있는 정자쉼터가 있다.

 아침 9시. 고현면 대사마을회관 옆 경로당에는 마을 어르신 여럿이 와 계셨다. 대사마을 부녀회의 주축 4인방 류채엽(72) 회장, 박일례(75) 부회장, 정점이(73) 어르신, 정희순(75) 어르신과 오현표(77) 노인회장이다. 어르신들은 이날 아침 일찍부터 마을회관과 경로당 내부, 회관 주변을 말끔히 청소하셨다고 한다. 박일례 부회장은 "제가 남해군시니어클럽 회원인데 저를 도와 매주 월, 수, 금 3일을 함께 청소합니다. 마침 오늘이 청소하는 날이어서 다들 일찍 나왔지요"라고 말했다. 주민 어르신들의 솔선수범 봉사정신이 아름답다. 그래서인지 해사한 가을하늘 아래 펼쳐진 마을회관 일대가 더 정갈해 보인다. 
 마을 입구 정자쉼터의 영혼추모비에 적힌 마을 소개글에 따르면, 대사마을은 북쪽으로 사슴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 이름 붙인 녹두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마을 앞쪽으로 남치골에서 유래한 대사천이 유유히 흐르는 관당벌 옥토에 자리하고 있다. 
 현재 주민 수는 90가구 120~130명가량으로 주민 대부분이 벼농사와 마늘, 시금치 농사를 지으며 살아간다. 주민들은 "우리 마을은 바다를 끼고 있지 않아서 돈 벌 데가 별로 없어요. 유자, 콩을 심기도 하지만 광양제철소 들어오고 나서는 수확량도 얼마 안 되는데 바닷가가 아니라서 보상도 못 받아요"라고 입을 모은다.

왼쪽부터 대사마을 귀촌주민 황현자 씨, `명품` 대사부녀회 정점이 회원, 박일례 부회장, 윤육엽 이장, 류채엽 회장, 정희순 회원, 오현표 노인회장, 정상봉 고현면주민자치회장.
왼쪽부터 대사마을 귀촌주민 황현자 씨, `명품` 대사부녀회 정점이 회원, 박일례 부회장, 윤육엽 이장, 류채엽 회장, 정희순 회원, 오현표 노인회장, 정상봉 고현면주민자치회장.

무투표로 이장 추대, 공동밥상 열기도 
 대사마을 주민들은 최근 이장 선출 방식을 기존 선거 방식에서 무투표 합의 추대로 바꿨다.
 2018년 개정한 대사마을 동칙에 따르면, `마을을 위해 2년간 무보수로 봉사한 새마을지도자, 운영위원장, 부녀회장, 청년회장, 감사, 운영위원 중 반장·운영위원 연석회의에서 이장을 추천하여 추대하고, 추대된 후보는 동민의 신임투표로 결정한다`라고 명시돼 있다. 일을 잘한다고 신임을 얻은 이장은 계속 연임할 수 있게 개정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대사마을 역시 여느 마을처럼 선거를 통해 이장을 선출했다. 그 과정에서 선거에서 떨어진 이는 마을 일에 발걸음을 끊고 지역간·문중간 다툼으로 심화되는 일이 많았다고. 갈수록 고령화되고 인구도 줄어드는 마당에 갈등과 반목은 마을의 큰 골칫거리였을 것이다. 당시 고현면체육회장으로 동칙 개정을 제안한 정상봉(70) 고현면주민자치회 회장은 "다른 마을처럼 마을에 큰 이권이 걸린 것도 없고 하니 선출방식을 한번 바꿔보자고 운영위원회에 제안했지요. 마을주민들이 이 제안에 다 동의를 해주셨습니다"라고 말했다. 
 이후 주민간 갈등과 반목은 확실히 줄고 협조와 화합이 잘 되고 있다고 한다. 대사마을에서는 마을 지도자를 갈등 없이 선출할 수 있는 합의추대 방식이 자리 잡아가고 있는 셈이다. `마을의 제반 행정을 원활히 운영하고 동민생활이 안정되고 잘사는 마을을 만들기 위한` 목적의 동칙 또한 2019년 4차 제·개정을 거치며 조목조목 체계적으로 정리돼 있다.

대사마을 주민들이 정비한 하천과 직접 쌓은 돌탑들.
대사마을 주민들이 정비한 하천과 직접 쌓은 돌탑들.

 이렇게 해서 선출된 윤육엽(68) 씨가 6년째 이장직을 맡아 수행하고 있다. 이제는 그만할 때도 됐다 싶은데 아직은 주민들의 신임이 높아서인지 계속 하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고 한다. 윤육엽 이장은 "10년 전쯤 남편(정상봉 회장) 고향으로 귀향했습니다. 물론 적응하느라 처음 3년은 힘들었지만 이웃들 도움받아 잘 살아왔어요. 젊은 사람들은 직장 다니느라 마을 일은 못하고 70세 형님들이 그 윗대 어르신들을 모시더라고요. 이 형님들 안 계시면 일이 안 돌아갑니다"라고 말했다.
 마을에서 해온 대표적인 일이 매일 저녁 마을 공동밥상을 차리는 일이다. 마을마다 지자체에서 주는 쌀과 직접 농사지은 쌀을 모아 밥을 짓고 반찬값은 각자 얼마씩 내서 매일 30~40명이 경로당에 모여 저녁식사를 해왔다. 아쉽게도 코로나19로 3년 전부터 이 따뜻한 밥상공동체는 모이지 못하고 있다. 곧 재개할 생각이지만 고령자가 많은 까닭에 아직도 조심스럽다고.  
 
마을 가꾸기에 너나없이 발벗고 나서 
 주민들이 나서 지저분한 하천을 정비하고 돌탑을 쌓아 마을경관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일도 주목할 만하다. 준영구 논두렁 사업을 하면서 버려지는 자연석들이 너무 아깝다고 여긴 주민들이 그 돌을 모아 탑을 쌓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마을주민들이 힘과 마음을 모으고 행정의 지원을 받아 돌멩이를 주워다 쌓기 시작했다. 윤육엽 이장은 "처음에 정자 숲이나 건너편 경관사업 하는데 마을방송을 하면 주민들이 정말 적극적으로 참여해줬어요. 부녀회원들은 밥을 해서 댔지요." 

대사마을 정자쉼터에는 음력 10월 3일 동제를 지내는 제단과 밥무덤, 그 옆에 200년 묵은 신묘한 작은 느티나무가 있다.
대사마을 정자쉼터에는 음력 10월 3일 동제를 지내는 제단과 밥무덤, 그 옆에 200년 묵은 신묘한 작은 느티나무가 있다.

 안타깝게도 젊은이가 없어 10년 가까이 청년회는 몇 번을 결성하고 해산하기를 반복했다고. 대신 마을 사조직인 대동회가 있어 읍을 비롯한 타향 각지에서 모여 마을 대소사나 급한 일이 있으면 이들이 발벗고 나서준다. 대동회 회원은 22가정 44명가량 되며 지금껏 우의를 돈독히 다져오고 있다. 
 대사천을 따라 1.5㎞가량 이어지는 가장자리 길에는 돌탑 195개가 죽 늘어서 있다. 이 돌탑들에는 주민들의 고통과 괴로움을 대신 짊어지고 덜어 달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 내년에는 영산홍, 수국, 벚꽃나무 등 꽃과 나무를 심고 경관조명을 설치해 마을을 좀더 아름답게 가꿔나갈 계획이다. 대사마을이 남해군의 또다른 볼거리 명소가 될 날이 멀지 않은 듯하다.  
 돌탑이 시작되는 마을 입구에는 수령이 100년 정도 된 느티나무 두 그루가 우뚝 서 있는 대사마을 정자쉼터가 자리하고 있다. 말 그대로 주민들의 쉼터이자 동제를 지내는 마을의 상징적인 공간이다. 입구 한쪽에는 음력 10월 초사흘 낮에 산신제를 지내고 밤에 동제를 지내는 제단과 밥무덤(밥구덕)이 있다. 작지만 나이가 200년은 되었을 느티나무가 자리잡고 있어 신비로움을 더한다. 
 비록 고령화에 인구수는 줄고 있지만 주민 스스로 지혜와 힘을 모아 마을살이의 즐거움과 따뜻한 인심을 느끼면서 독특한 경관을 만들어가는 대사마을은 그래서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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