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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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것들
  • 남해타임즈
  • 승인 2022.12.23 13:55
  • 호수 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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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국의 시대공감

 지금은 누구나 손에 전화기를 들고 다니지만, TV나 전화기가 귀했던 시절이 있었다. 드라마나 김 일의 레슬링을 보려면 동네에서 텔레비전이 있는 몇몇 집에 옹기종기 모여 시청했고 전화는 구판장이나 이장 집에서 방송으로 "누구네 전화 왔어요"라고 알려주면 뛰어가 한참을 기다렸다가 다시 걸려온 전화를 받아야만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지독한 가난에 맞서 열심히 살아준 그 시대 어른들의 노력으로 집마다 전화기와 TV가 보급된 1980년대 후반에도 친구들과의 모임은 장소를 미리 정하고 모두 모일 때까지 기다리는 것 외에는 없었다. 그때는 특별한 놀이가 없어도 커피숍에 흐르는 유행가와 하나씩 모여드는 친구의 얼굴이면 지루할 틈이 없었다. 주머니가 넉넉지 못해 사람 수만큼의 차를 주문하지 못해도 또 마시고픈 차보다는 금액이 저렴한 커피여도 그 시절 기다림은 여유롭고 즐거웠다.
 사정이 생겨 못 가게 되거나 늦더라도 특별히 연락할 방법이 없었던 시절 다행히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면 계산대로 전화해 사정을 전할 수도 있었지만 때때로 찻값을 아끼려 건물 밖에서 만날 때는 늦는 친구를 걱정하며 모임을 시작했다. 
 하지만 모두 전화기를 손에든 지금은 5분만 늦어도 미리 전화해 양해를 구하고 먼저 도착해 기다리는 처지에서는 아직 약속 시각이 남았음에도 전화해 어디쯤인지를 독촉하는 문화로 바뀌어버렸다. 
 연락할 방법이 없어 버스 안에서 정체되는 도로를 바라보며 발만 동동 구르는 애달픔을 이해하며 기다려주는 여유가 있던 그 시절, 굳이 늦은 이유를 변명하지 않아도 미소를 보이던 친구들이 그리운 건 혼자만의 생각일까? 발전하는 문명만큼 사라지는 배려가 아쉬운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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