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고를 하고 나니 한 해가 저물고 있다.
그림자도 가까이 있으면 짙은 법이라
끈 놓지 않고 그 주변을 맴돌아도
글쓰기는 여전히 두렵고
튼실하지 못한 결실이라
부끄러움은 덤으로 세상에 내보낸다.대책 없이 한세상 돌고 나면
자력이 생기려나
듣고 보았던 옥 같은 말씀들을
속삭이듯 편안하게 풀어낼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또 한 고개 넘기고 만다.-`작가의 말`에서
노도 출신 향우 최옥연(사진) 작가가 세 번째 수필집 『물길』(작가시대)을 냈다.
최옥연 작가는 이번 수필집에 「일회용 밴드」 「어머니의 바다」 「이불을 말리며」를 비롯해 총 33편의 수필을 5부로 나눠 담았다. 책이나 이불 등 물건을 좀처럼 버리지 못하는 작가의 습관 때문에 벌어지는 에피소드, 코로나 팬데믹으로 달라진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들, 바쁘고 버거운 삶 속에서도 깨달아지는 통찰들이 빼곡하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물길`이라는 수필집 제목에도 드러나듯이, 남해의 푸른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가난했지만 정겨운 유년시절을 보낸 고향 노도, 그곳에서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한 구순의 어머니와 `물길`로 닿아있는 작가의 정서적 유대감이다. 대처로 내보낸 자식들 사진을 `일회용 밴드`로 벽에 붙여 가족 역사관을 만든 어머니. 그런 어머니에게 `일회용 밴드`는 몸에 난 상처가 아닌 `그리움이 깊어져 남을 마음의 상처를 예방하는 예방의약품`이다.
작가는 도시의 안락함이 몸에 안 맞는 옷인 양 마다하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에도 한사코 고향 섬으로 가시던 어머니와 동행하며 마음 졸이지만, `어머니가 유배지 같은 섬을 머잖아 떠나게 될 그날은 내 고향 앵강만의 바다의 물길도 윤슬로 반짝이기`를 바란다.
현재 울산에서 살고있는 최옥연 작가는 2002년 『울산문학』 신인상, 2004년 『현대수필』에 「빈집」으로 등단했다. 2012년 울산문학 올해의 작품상과 2018년 울산문학상을 받았다. 수필집 『노도 가는 길』 『틈이 생길 때마다』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