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삶에 관한 패러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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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삶에 관한 패러다임
  • 남해타임즈
  • 승인 2023.01.30 11:02
  • 호수 8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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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이현숙 칼럼니스트
이  현  숙칼럼니스트
이 현 숙
칼럼니스트

 K-팝, K-드라마, K-무비 등 대중 예술 그리고 K-푸드부터 K-방산까지 한국 제품들이 세계 시장에서 인기몰이를 하며 국가 호감도와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데 한몫하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한국을 선망하는 나라들이 적지 않은데 정작 한국인들의 행복지수가 기대만큼 높지 않다는 점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좁은 국토에다 자원 빈곤국인 우리가 산업을 일으킬 유일한 방법은 인적 자원의 확보였다. 교육이 그만큼 절실한 상황이었다. 이에 `사농공상`의 유교적 가치관에 비교적 익숙한 한국판 `맹모(孟母)`들이 팔을 걷어붙였고, 어느덧 대학진학률 세계 1위 타이틀과 함께 경제대국의 반열에 올라섰다. 이는 어쩌면 내 자식에게만은 가난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던 강력한 모성의 결과물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성적지상주의`가 팽배하여 숱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상대편을 오직 비교와 경쟁의 대상으로만 여긴 나머지 과도한 경쟁심이 촉발되었다. 공부머리를 과대평가하고 공부 외의 능력은 과소평가하는 현상도 두드러졌다. 청소년 시기야말로 다양한 체험활동을 통해 사물에 대한 호기심을 키우고 창의성과 진취성을 길러야 한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너는 공부만 해, 나머지는 엄마가 다 알아서 할게"라는 말을 듣고 자란 아이들은 감히 반기를 들지 못한다. 게다가 이미 정해진 답을 찾아가는 암기식, 주입식의 반강제적 공부여서 흥미는커녕 무력감에나 빠지지 않으면 다행이다. 
 부작용은 계속 이어진다. 성과주의에 매몰된 채 표절이나 조작 같은 범죄에 의식이 둔감해졌다. 자신을 과시하고픈 이들의 욕망을 한껏 자극하는 초고가 상품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계층간 위화감이 조성되었고, 자녀를 위해서라면 `등골 브레이커`에도 기꺼이 지갑을 연다. 다만 그 어떤 명품도 명품 소비족의 개성과 인격까지 빛나게 하지는 못한다. 
 한국인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에 "내가 누군지 알아?"가 있다. 옆집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 요즘 세상에 동네 숟가락 숫자까지 환히 꿰던 과거 마을공동체적 사고방식이 흥미롭기만 하다. 씨족사회, 부족사회, 농경사회를 관통하는 집단주의적 유전자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한국인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음을 미루어 짐작케 한다. 아니면 무리 속에 섞여 살아가는 하나의 지혜일 수도 있다. 한 예로, 많고 많은 주택의 형태 중에 한국인들이 압도적으로 아파트를 선호하는 이유를 효율성과 편리성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힘들어도 참고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는 첫째 이유는 행복에의 갈망 때문이다. 그런데 행복의 필요충분조건으로 성공과 출세를 꼽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성과에 대한 조급증이나 부담감이 커지고, 학업이건 일이건 그 과정 속에서 스스로 배우고 성장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이는 결과물로도 증명이 된다. 잎은 무성한데 뿌리가 빈약하거나 겉은 그럴싸한데 안이 허술하거나 기술은 뛰어난데 과학으로 발전시키지 못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높은 연봉이나 비싼 아파트가 주는 행복감이 크다한들 결코 무진장은 아니다. 그럼에도 `성적 등수, 아파트 평수`는 이미 성공의 척도가 되었다. 이 시점에서 대한민국이 한 단계 도약하려면 바람직하지 못한 기존의 관성을 청산해야 한다. 아직 희망의 불씨는 남아 있다. 강한 의지와 실천력만 있다면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다. 다만 급한 성미에 속전속결 식 일처리에 능한 한국인을 빗댄 `빨리빨리`는 한국인의 고유한 특성이라기보다 인간의 보편적 특성에 가까우므로 너무 비판적 시각으로 접근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서열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학 재학생 이상의 청년 대다수가 대기업 취업을 꿈꾸고 `공시족`의 대열에 합류하는 획일적 현상을 더 이상 방치하면 안 된다. 소수의 인기학과, 소수의 인기직종으로의 쏠림 현상에는 과열 경쟁과 `줄 세우기`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이를 사전에 방지하려면 중·고등 과정에서 학생 개인의 적성과 소질을 고려한 맞춤형 진로·진학지도가 필요하다. 직업 간 차별을 철폐하고 특정 직업에 대한 선입견도 개선해야 한다.  
 전공, 직업, 삶에서 다양화를 꾀해야 한다. 예컨대 유럽에서는 가업을 물려받는 일이 드물지 않다. 포도농사건 고기잡이건 어려서부터 부모와 조부모 곁에서 쭉 지켜본 터라 친숙하고 능숙한 데다 선대의 직업을 상속하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또한 아파트와 단독주택, 현대식 주택과 한옥, 도시와 농산어촌에 고루 나뉘어 살면 애초부터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시골의 편안함과 도시의 편리함 가운데 자연의 푸근함이나 넉넉함에 더 끌린다면 시골생활의 불편을 수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협력과 상생이 이루어져야 한다. 사물에는 늘 양면성이 있다. 좋기만 한 것도 나쁘기만 한 것도 없건만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단순 비교하며 반목질시한다. 각 분야별 능력이 탁월한 전문가를 중심으로 구성원들이 힘을 합칠 때 상승효과가 발휘된다. 그런데 우리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고, 잘 나가는 사람은 기어이 끌어내려서 하향 평준화시켜야 속이 후련하다. 국민의 품격이 국가의 품격을 만들고 국가의 경쟁력을 향상시킨다.
 우리가 어쩌다 자살률 1위, 저출산율 1위 국가가 되었는가. 가족이 불행한 가정, 학생이 불행한 교육, 직원이 불행한 기업, 국민이 불행한 국가는 존재 의미가 퇴색된다. 기껏 달궈진 K-드림의 열풍을 허상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의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이 `행복 선진국`이 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렇더라도 `대한민국`호의 항해 방향만 올바르다면 속도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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