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빛에 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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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빛에 속는다
  • 남해타임즈
  • 승인 2023.02.17 09:35
  • 호수 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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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국의 시대공감

 6·25 전쟁 이후 부산을 방문한 미국의 사업가는 다음 날 아침 놀라고 말았다. 분명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으며 곧이어 발발한 전쟁으로 피폐하다고 알고 있었는데 지난밤 도착한 부산항을 들어서며 그의 눈에 보인 야경은 뉴욕보다도 화려했고 고층건물이 끝없이 나열돼 있었기에 입을 다물 수 없는 지경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침이 밝아오고 차를 타고 이동하며 보이는 전경에 다시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지난밤 그렇게 화려하게 보였던 불야성은 산을 뒤덮은 판자촌이었기 때문이다. 거리를 가득 채운 인파가 한 끼 식사를 구하려는 피난민이란 사실도 놀라웠다.
 필자도 처음 부산으로 이사했을 때 밤에 멀리서 보면 30층쯤으로 보이는 판자촌에 살았다. 건물만 블록과 슬레이트로 개량되고 좁은 골목은 시멘트로 포장되었을 뿐 지난날과 별반 다를 것 없는 곳이었다. 
 동네 어른들이 우스갯소리를 하며 들려준 그때의 미국인 얘기가 지금도 간혹 생각나는 건 내 삶 속의 판단들이 그날의 그처럼 보이는 것에 잘 속기 때문이리라. 좋은 대학을 나온 이를 만나면 인품 또한 훌륭할 것이라 믿었다가 실망하기를 거듭하고 돈이 많거나 지위가 높으면 당연히 타인에게 너그러울 것으로 생각했다가 아님에 당황하지만 그래도 매번 기대하고 있으니 말이다.
 홍콩의 야경을 백만 불짜리라 해 구경하러 가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홍콩인들마저도 부산의 야경을 구경 온다고 한다. 전쟁 후 판자촌이 만들어낸 착시의 야경을 우리는 현실의 야경으로 바꾸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자고 나면 학식과 돈 그리고 지위를 가진 이들의 인품도 겉보기만큼 훌륭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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