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년 이어온 줄당기기 정월 대보름달 아래 마을 평안 비는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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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년 이어온 줄당기기 정월 대보름달 아래 마을 평안 비는 축제
  • 김수연 기자
  • 승인 2023.02.23 17:15
  • 호수 8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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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탐구생활 6 | 설천면 덕신마을
올 정월 대보름날(지난 2월 5일)에 치른 덕신줄당기기 행사. 과거 규모에 비해 약식으로 치러졌지만 마을주민과 출향 향우, 타지역 사람들까지 300명 넘게 참여했다.
올 정월 대보름날(지난 2월 5일)에 치른 덕신줄당기기 행사. 과거 규모에 비해 약식으로 치러졌지만 마을주민과 출향 향우, 타지역 사람들까지 300명 넘게 참여했다.

 설천면 덕신마을은 매년 정월 대보름날 마을 사람 전체가 참여하는 300년 전통의 `덕신줄당기기`(`덕신줄끗기`라고도 한다)로 유명하다. 정월 대보름에 치를 줄당기기 행사를 준비하는 데만 열흘이 넘게 걸리기도 한다.
 음력 정월 초사흘부터 윗마을(동편)과 아랫마을(서편) 풍물패가 집집마다 방문해 안녕과 풍농풍어를 비는 안택놀이를 하면, 각 집에서는 준비한 돈과 쌀(한 되 정도)을 내놓는다. 이걸 모아 줄당기기 준비에 사용하는데, 쌀로는 술을 담그고 돈으로는 행사에 필요한 물품과 안주를 마련한다. 정월 초엿새부터는 풍물패를 앞세워 가가호호 볏짚 모으기를 시작하고 정월 초여드레경부터 모은 볏짚으로 줄을 만든다. 동편은 숫용의 용두를, 서편은 암용의 용두를 만든다. 이렇게 만든 줄의 길이는 50미터 정도로 두 줄을 합하면 100미터가 넘는다.
 덕신 줄당기기를 하기 전부터 지내는 의례와 제사가 많다. 먼저 동편 사방신(밥무덤) 2곳(용강, 남치)과 서편 사방신 2곳(노량, 감암)에서 제관과 줄꾼이 줄을 메고 풍물패의 지신밟기 굿에 맞추어 사방신제를 지낸다. 또 마을 당산나무 앞에서 당산제를 지내고 마을의 안녕과 가족, 개인의 소원을 빈다. 
 당산제를 마치는 풍물에 맞춰 줄을 어르면서 당산나무에서 조산(다물락)으로 이동해 조산제를 지낸다. 이동하면서 선소리꾼이 `어~ 동편 꼬신내야 어~ 서편 문내야` 하고 선창하면 줄꾼들이 `우여우여 어 동편 꼬신내야~ 우여우여 어 서편 문내야~`하고 따라 부른다. 여기서 꼬신내는 고소하다. 즉 힘이 넘친다는 뜻이고 문내는 생선 썩은내마냥 힘이 약하다는 뜻이다. 마을길이 구불구불해 줄을 메고 이동하는 모습이 용이 용트림하는 형상처럼 보인다고 한다. 
 조산제를 끝으로 줄당기기를 하는데 일제히 풍물에 맞춰 함성을 지르면서 영기와 농기를 넘어뜨리는 신호에 따라 줄당기기를 시작한다. 줄을 중앙에서 20미터 이상 끌고가야 승패가 결정되므로 여간해서 승부를 가리기가 어려웠고, 결국 밤이 되어서 사람이 줄어들면 승부가 결정되곤 했다고 한다. 이기고 지는 것보다는 흥이 중요하다. 
 줄당기기가 끝나면 밝아오는 보름달을 보며 모든 사람이 어울려 대동놀이를 즐기고 마을에서 준비한 술과 음식을 먹으면서 올 한해도 풍년과 마을의 번영, 개인의 소원 성취를 빌었다고 한다. 

용두를 힘차게 들어올려 나르는 줄꾼들.
용두를 힘차게 들어올려 나르는 줄꾼들.

볏짚 약한 통일벼 보급에 위기 겪기도
 덕신마을에 토속신앙과 어우러진 전통놀이가 지금까지도 전해 내려오는 것은 마을의 지형과 주민들이 농사를 주업으로 해온 것과 관련이 깊다. 김태갑(84) 덕신줄당기기보존회장의 말에 따르면, 남쪽의 녹두산을 주산으로 큰골산, 구두산, 산성산, 조시봉이 병풍처럼 마을을 두르고 있는데, 마을의 형상이 학 두 마리가 서로 품고 있는 형상이라 학이 날아가지 못하도록 마을 소유의 들판 한가운데에 고려시대 때 조산 다물락(일명 여의주)을 쌓아 묶어두었다고 전해온다. 이 다물락이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 역할을 해왔다고. "그 옛날 돌도 귀하고 땅도 귀할 때 그 너른 땅에 다물락을 만들었다고 해요."

김태갑(오른쪽) 덕신줄당기기보존회 회장과 박용식 덕신이장.
김태갑(오른쪽) 덕신줄당기기보존회 회장과 박용식 덕신이장.

 또 만조 때 바닷물이 들판 일부까지 밀고 들어와 큰 못이 만들어졌고 이 못에 용이 놀아야 액을 몰아내고 마을의 안녕과 장수, 풍년이 든다는 믿음에 따라 300년 전부터 줄당기기를 해왔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민속신앙과 놀이 문화가 어우러진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이 전통은 시대와 생활상이 변하고 젊은이들이 마을을 떠나면서 1964년경에 명맥이 끊기는 듯했다. 박용식(70) 이장은 "결정적인 계기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벼가 재래종에서 통일벼로 바뀌면서 볏짚이 짧고 약해서 못하게 됐어요. 이제는 다시 품종을 바꿔서 가능해졌지요"라고 설명한다. 
 1994년 한 서울향우가 볏짚 줄을 재현한 줄을 보내주면서 다시 명맥을 이어오다가 2001년 남해군과 문화원이 돕고 주민들이 합심해 경남도 민속예술축제에 대대적으로 참가하면서 본격적으로 전통을 되살렸다. 이때 참여한 인원이 360여 명이고 동원된 차량만 10대가 넘었다고 한다. 이 무렵 마을 주민을 중심으로 한 덕신줄당기기보존회도 결성됐다. "이때 140미터 되는 줄이 들어갈 실내체육관이 없어 한쪽 70미터만 들어갔어요. 반쪽 줄로만 재연해 많이 아쉬웠지요." 박용식 이장의 말이다.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하는 조산 다물락(일명 여의주).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하는 조산 다물락(일명 여의주).

동제·당산제·방사제…, 보존해야 할 전통
 지금은 마을에 사람이 없어 언제까지 이 전통을 유지해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그나마 올해 대보름에는 출향민 향우도 오고 설천면 다른 마을에서도 와서 300명 넘게 모였다고 한다. "향우들을 초대하니 엄청 좋아해요. 그들이 기부도 하고 줄도 메고 같이 들어줬어요." 
 이제는 모두가 도와주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형편이다. 박용식 이장은 "이제 줄끗기는 우리 마을만의 것이 아니에요. 설천면이든 군이든 나서서 함께 해줘야 해요. 우리 마을사람들은 앞에서 지도만 해줄 수 있어요. 원래 규모가 엄청나게 커서 이제는 농악대만 구성하려 해도 인원이 모자라요"라고 말한다. 
 덕신 마을 주민은 현재 118가구에 주민등록상으로는 185명, 실제로는 154명이 살고 있다. 65세 이하 주민은 22명, 65세 이상이 85명이고 80세 이상 어르신이 14명이나 된다. 마을의 동수 어르신은 96세 정현창 어르신과 박용식 이장의 모친인 101세 이인필 어르신이다. 덕신마을은 이렇게 장수마을이기도 하다. 박 이장은 그 이유로 "산 좋고 물 좋아 농토가 풍족하진 않아도 패거리나 다툼이 없고 힘든 일을 덜해서"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도로가 잘 닦이고 돈 잘 버는 사업을 유치하는 것보다는 전통을 잘 보존하고 유지하는 게 마을을 살리는 길이라고 말한다. 60~70대 주민들 역시 이 전통을 지속해나가자고 한단다.  
 박 이장은 그동안 보존해온 줄당기기 관련 기록물을 모두 내놓고 보여줬다. 보존회 문서, 줄당기기 행사일지, 줄당기기 설명서, 물품 보존회원 명부, 물품 기탁자 명부, 정산서류, 행사 팸플릿, 사진과 2001년 줄끗기 재연 영상 기록물 등이다. "우리 이후에는 이 자료와 기록물들이 다 소실될지 모릅니다. 너무 소중하고 귀한 전통이어서 잘 보존해야 해요."
 덕신마을처럼 옛 전통을 지켜가는 마을도 드물다. 음력 시월 보름에 동제를 지내고 당산제, 4군데 밥무덤에 방사제도 지낸다. 옛날처럼 잘하지는 못해도 꿋꿋이 지켜가고 있다.  

기록물
기록물
자료사진과 영상.
자료사진과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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