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다운 봄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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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다운 봄을 기다리며
  • 남해타임즈
  • 승인 2023.03.03 15:21
  • 호수 8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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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이현숙 칼럼니스트
이  현  숙칼럼니스트
이 현 숙
칼럼니스트

 봄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인 입춘이 지났다. 그러나 아직 냉기를 머금은 바깥공기로 인해 몸이 자주 움츠러들어서인지 완연한 봄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듯하다. 한편으로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 청춘들의 속사정을 대변하는 게 아닌가 싶다. 
 청춘의 시기를 사계절에 비유하면 봄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청년들에게서 뭇 생명이 약동하는 봄날의 활기찬 기운을 느낄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청년의 대다수가 자신의 기량을 펼칠 기회는 고사하고 사회 초년생으로서의 설렘이나 긴장감을 맛볼 기회조차 박탈당한 채 집단 무기력증을 앓는 중이다. 미래의 좌표를 설정하지 못하고 현실 속 미로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모습이 안쓰러울 따름이다. 
 냉혹한 현실이 고스란히 투영된 통계 자료를 보면 안타까움은 배가된다. 코로나19가 유행하는 동안 우울증 환자가 급증했고 그중 20대 청년층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를 이어가는 한국의 자살률 통계에서도 청년층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다.  

 근년 들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족`과 `빚투(빚내서 투자)족` 탄생의 배경에는 각자도생의 길로 내몰린 청년들의 고뇌가 깔려 있다. 특히 부동산 가격이 치솟자 은행 대출을 받아 아파트 한 채를 어렵게 장만한 터에, 갑작스러운 고금리 정책에 따른 이자 부담 상승으로 시름이 한층 깊어졌다. 설상가상 미래를 대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연금 정책마저 미덥지 않다. 연금 고갈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더 많이 내고 더 늦게 받는 것 외에 이렇다 할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정황을 종합해 볼 때 소수의 기득권층이 누리는 물질적 풍요란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내야만 하는 청년들로서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이들을 맥빠지게 만드는 것은 부의 불균형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진짜 비극은 청년들이 닮고 싶은 `큰 바위 얼굴`이 없다는 것이다. 허구한 날 이전투구에나 매달리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로부터 과연 무엇을 보고 배우겠는가.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관행을 일삼는 일부 기성세대를 향해 거부감을 드러낸다 해서 이들만 나무랄 수 있을까.
 지금 청년들이 체감하는 현실은 지름길도 샛길도 우회로도 꽉꽉 막히고 출구나 퇴로마저 깜깜한, 한마디로 오리무중이다. 오죽하면 `삼포, 오포, 칠포(연애, 결혼, 출산, 경력, 내 집, 인간관계, 취미)`로도 모자라 `N포`까지 등장했으랴. 짐작건대, 나름 최선을 다하고도 높디높은 현실의 벽에 수없이 좌절하면서 막다른 절망감에 이르렀을 것이다. 누구라도 같은 입장에 처하면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충동이 일고, 뭔가 다시 새롭게 시작하려 해도 겁부터 나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N포`는 결코 최선의 방책도 최후의 방책도 아니다. 실수나 실패보다 더욱 경계해야 할 대상은 포기이기 때문이다. 행여 시행착오가 따르더라도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실행에 옮기는 것이 청년 정신이자 청년의 특권이다. 인간의 행불행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생각을 바꾸면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에 대한 판단 기준도 달라진다. 비관적으로 사고하지 않는 한 비관적인 상황은 없다. 다만 성공을 목적으로 하는 삶보다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할 때 삶의 만족도가 향상되리라 믿는다. 
 그리고 흔히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말하는데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부유하면 부유한 대로 건강하면 건강한 대로의 괴로움이 있다. 물론 나만 비껴가는 행운이나 나만 쫓아다니는 불운도 없다. 한 사람의 진면목은 종종 고난 속에서 빛을 발하기도 한다. 누구도 지나간 시간과 과오를 되돌리지 못한다. 하지만 누구나 지금 다시 새 출발할 수는 있다. 
 `청년이 국가의 미래요 희망`이라고 백날 이야기해봤자 실질적인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청년을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이들이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 마련이다. 또한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마음 편히 자녀를 낳아 기를 수 있도록 사회적 여건이 조성되어야 한다.
 봄답지 않은 봄이 지나면 샛바람 불고 아지랑이 거물거리는 진짜 봄이 온다. 그리고 어느 누구의 인생이나 햇살 가득한 봄날은 있다. 그런데 그때를 겪어 본 사람으로서 한마디 보태자면 바로 이것이다. 그게 그리 길지만은 않더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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