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물에 물고기가 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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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물에 물고기가 살듯
  • 남해타임즈
  • 승인 2023.03.10 10:10
  • 호수 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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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국의 시대공감

 소년은 수양버들이 길게 늘어선 냇가를 정말 좋아했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만들어주신 버들피리를 불며 집까지 업혀 온 그날의 따스함이 가슴 깊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봄날 물오른 수양버들을 바라보며 여름을 기다렸고 방학 때면 아침만 먹고 나면 한걸음에 냇가로 달려와 멱을 감고 피리를 잡으며 놀았다. 형들은 보 아래 깊은 곳에서 수영을 했지만 아직 수영을 배우지 못한 소년은 얕은 물가에서만 놀았다.
 몇 해가 지나 수영에 자신이 생긴 소년은 형들의 놀이터인 보 아래보다 깊은 곳에 도전했다. 내려다보니 맑은 물의 바닥은 훤히 보였기 때문에 그리 깊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물에 들어가자 발이 닿지 않아 당황했다.
 세월이 흐르고 성장해 놀러 간 바다에서 아무리 맑은 물도 수심이 깊어지면 바닥이 보이지 않음을 깨달은 것. 성묘를 위해 찾아간 고향의 냇가가 오염돼 바닥이 보이지 않자 얕은 물도 탁해지면 깊이를 알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와 비슷하게, 인간도 순박하고 거짓이 없으며 모든 것이 상대에게 읽힐지라도 내공이 쌓인 상태라면 그 깊이를 쉽사리 가늠하기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바닥을 보이지 않으려 물의 깊이를 키우려는 노력보다는 물을 더럽혀 버리는 선택을 마다하지 않는다.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내가 가진 탁한 내면의 물을 정화시킬 수 있어야 하고, 바닥이 보일 만큼 맑은 물을 가꿀 수 있어야 한다.
 맑은 물에 많은 물고기가 살듯 나의 물이 타인들을 품을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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