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신중한데 정부는 조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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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신중한데 정부는 조급했다
  • 남해타임즈
  • 승인 2023.04.03 14:34
  • 호수 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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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이현숙 칼럼니스트 
 
이  현  숙칼럼니스트
이 현 숙
칼럼니스트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배상금 지급 방식이 `제3자 변제`로 공식화되었다. 원안대로 실행될 경우 국내 기업은 배상금 지급을 위한 재원을 마련해야 하고, 일본 정부와 기업은 배상금 변제 의무를 포함한 사법적·도의적 책임에서 면책될 것이다. 
 과연 이 같은 해법이 한·일 간 뼈아픈 과거사의 청산, 더 나아가 공동 번영을 견인하는 단초가 될지는 미지수다. 어쩌면 양국의 누적된 갈등을 타결할 해법은 의외로 단순하고 명쾌할 수도 있다.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일본의 철저한 반성과 진심어린 사과를 선결 조건으로 인식하고 있다. 결코 막무가내로 일본과의 우호 친선을 반대하거나 `한일관계의 정상화와 미래지향적 발전`을 표방하는 정부의 입장에 반론을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우려를 뒷받침하듯, 이번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총리는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음을 확인했다`라고만 언급하고 직접적인 사과는 배제했다. 더불어 황당한 일은 우리 정부 역시 `일본의 사죄를 받는 게 능사는 아니다`라며 호기로운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높아진 국력과 또 국익에 걸맞은 주도적이고 대승적인 결단`이라는 해명에도 불구하고 상반된 평가가 나오는 이유를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성급한 외교만큼이나 유감스러운 것은 자국민 피해자를 대하는 자세나 인식이다. `재단으로부터 배상 상당액이 원고들에게 지급되면 더 이상의 논란은 가라앉지 않을까`는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온 발언이다. 설령 외교적 수사였다 하더라도 비상식적이고 비도덕적이다. 돈이면 다 된다는 식의 발상으로 인간의 존엄을 함부로 무너뜨려서야 되겠는가. 정부의 대응 가운데 `판결금에 지연 이자를 지급하겠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배상금 조성을 자국 기업에 일임하면서 마치 본인의 사재라도 털 듯하다.
 피해자들은 어린 나이에 타국에서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 해방이 되어 귀국했다. 이후 일본 법정에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지만 최종 패소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2012년 한국에서 다시 소송을 제기하여 2018년 대법원의 승소 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법과 원칙을 그토록 강조하는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있어 목숨만큼이나 소중한 판결을 번복함으로써 개인의 권리 침해, 사법부의 권위 훼손이라는 비판을 자초했다.
 생존하는 피해자 3인은 모두 90대 중후반으로 여생이 그리 길지 않다. 이분들은 전범국과 전범 기업의 용기 있는 사과와 배상을 바란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말과 행동으로써 진심을 다해 사죄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런데 정부가 서둘러 상대측에 덜컥 면죄부를 안겨 주었다. 피해 당사자는 제쳐놓고 누가 누구를 용서하고 화해한다고 북새를 부리는가. 그 암울한 시대 그 간난고초를 짐작조차 못하면서 어찌 감히 피해자의 고통에 대해 알은체하는가. 
 일전 공개된 국무회의에서도 `일본은 이미 수십 차례에 걸쳐 우리에게 과거사 문제에 대해 반성과 사과를 표한 바 있다`는 대국민 담화 형식의 설득 발언이 이어졌다. 고노 담화(1993년), 무라야마 담화(1995), 나오토 담화(2010)를 포함한 몇 차례가 기억의 대부분인 국민들로서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지만 관련 자료를 취합한 추출일 테니 어김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수십 차례나 사과하고도 피해자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 데는 `사과의 진정성`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1970년 빌리 브란트 당시 서독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희생자 위령탑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하던 장면은 지금껏 전 세계인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굴욕 외교`인가 아니면 `통 큰 외교`인가. 관점에 따라 평가는 엇갈릴 듯하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개인이건 국가건 겸손을 넘어선 저자세로 대등한 관계를 정립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어느 쪽을 지지하든 `오므라이스 외교` 같은 낮잡은 표현은 자제하되 소녀상 존립, 위안부 합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배출,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독도 영유권 등 첩첩한 현안 처리에는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물론 정부의 몰이해와 국민의 무관심 속에서 손상된 피해자들의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일이 우선 과제임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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