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목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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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목숨
  • 남해타임즈
  • 승인 2023.04.06 17:38
  • 호수 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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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국의 시대공감

 어린 시절 보았던 영화 속 늙은 도인은 밥을 먹다가 웽웽거리는 파리를 젓가락으로 잡아버리는 신기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나는 젓가락은 커녕 손으로도 잡기 힘든 이유가 생각보다 빠르기도 하거니와 조그마한 움직임에도 미리 피해버리는 습성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조그만 몸으로 자신을 지킬 침이나 이가 없이 자신보다 덩치가 큰 짐승이나 인간의 주위에서 살아가며 몸으로 배운 파리의 생존 방법인 것 같다. 
 여름철 끊임없이 흔드는 소의 꼬리를 피하며 잠시의 빈틈만 생기면 엉덩이에 앉아 먹이를 섭취하는 모습은 보는 이마저도 질리기에 충분하다. 지금이야 마트나 시장에서 모든 음식 재료를 다듬어 판매할 뿐만 아니라 필요만 만큼 소포장된 것을 살 수 있지만, 지난날 우리 어머니 세대만해도 닭도 직접 잡아 장만하고 생선도 다듬어야만 음식으로 조리할 수 있었다. 만약 그 시절처럼 생선을 다듬고 닭을 직접 잡아야 한다면 요즘의 우리는 차라리 안 먹는 것을 선택할지도 모른다. 이처럼 직업 때문이 아니라면 무언가를 죽이는 것을 모두 꺼리며 살아가는 현실이지만, 누구나 아무 부담 없이 때려잡고는 오히려 흐뭇해하는 것이 있다면 파리와 모기의 목숨일 것이다.
 세상 가장 천한 죽음을 파리 목숨이라 칭하는데 간혹 어이없고 허무한 상황에 놓인 이들의 운명을 말할 때 사용되곤 한다.
 전쟁이나 일제 치하에서의 파리 목숨이란 표현은 실제 사람의 목숨이 누군가에 의해 무참하게 희생될 때의 뜻이었다. 지금은 서민들이 직장에서 해고되거나 불이익을 당할 때 쓰이곤 한다. 
 우리는 입장과 위치에 따라 언제든 파리 목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시대가 평안하여 파리 목숨이란 표현이 더 줄어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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